서학개미(해외 주식 개인 투자자)가 늘면서 미국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원·달러 환율)이 다시 1400원대에 진입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박수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22일 ‘와타나베 부인과 서학개미’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올해 하반기 원·달러 환율이 1340~1420원의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박 연구원은 “원·달러 환율은 1390원대에 안착하면서 어느새 1400원을 눈앞에 두고 있다”며 “추세 전환 신호가 없어 8월 중으로 1400원대로 복귀할 수 있다”고 했다.
환율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여러 가지이지만, 이른바 ‘투자수지 적자’가 핵심 요인으로 꼽혔다. 일본도 1990년대 버블 경제가 붕괴한 뒤 외환 자유화와 맞물려 엔 캐리 트레이드(싼 이자로 엔화를 빌려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국가·상품에 투자하는 방법)가 확대됐다. 엔 캐리 트레이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개인 투자자를 ‘와타나베 부인’이라고 불렀다.
일본의 경상수지 흑자에도 미국 달러화 대비 엔화 환율(엔·달러 환율)이 높아진 배경이다. 박 연구원은 “와타나베 부인이 엔·달러 환율을 좌우한 것은 아니지만, 국제결제은행(BIS)은 엔 캐리 트레이드가 달러 매수로 쏠림을 야기해 엔·달러 환율을 최소 5~10엔 이상 상승시켰다고 분석했다”고 전했다.
한국도 같은 상황이라는 게 박 연구원의 설명이다. 경상수지 흑자가 이어지지만, 국내 증시가 박스권에 갇힌 동안 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개인이 늘면서 투자수지 적자가 굳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기업들도 대외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환율 변동성에 대비해 외화예금을 쌓아두고 있다. 경상수지가 늘어도 달러 매도로 곧장 이어지지 않는 셈이다.
박 연구원은 “요약하면 개인의 해외 투자가 늘면서 투자수지 적자 구조가 정착된 가운데 기업들은 수출 대금(달러) 매도를 지연시키면서 경상수지의 환율 영향력이 약해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처럼 불확실성이 심한 시기에는 환율 방향성 베팅이 어렵기 때문에 수급 영향력이 커질 수밖에 없다”며 “미국에 대한 신뢰 훼손이 미국 투자 매력도 하락으로 이어지지 않는 한 원·달러 환율이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