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주식이 저평가되는 이유 중 하나는 주요 기업 지배구조 악화에 따른 할인율입니다. 특히 중복상장,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발생하는 지배주주의 사익 추구 등이 큰 영향을 미칩니다. 그런 의미에서 상법 개정은 지배주주의 사익 추구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해 상충을 막는 시도입니다.”

이상헌 iM증권 리서치센터 부장은 이달 1일 서울 여의도 iM증권 본사에서 조선비즈와 만나 상법 개정의 가치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이 부장은 대우증권, 코리안리 등을 거쳐 iM증권에서 오랜 기간 기업 지배구조를 분석해 온 자본시장 전문가다.

이상헌 iM증권 리서치센터 부장이 7월 1일 조선비즈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 부장은 상법 개정안에 대해 지배주주와 일반주주 사이의 이해상충을 줄이고 기업 지배구조를 정상화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고 평가했다./이병철 기자

상법 개정안은 더불어민주당이 지난해 주주 충실의무를 확대하고, 전자 주주총회를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아 당론으로 추진해 왔다. 올해 초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으나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던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거부권을 행사하며 폐기된 바 있다. 민주당은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다시 상법 개정안 처리 의지를 보이고 있다. 지난 2일 법사위에서 감사위원을 선임할 때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합산해 3%까지만 인정하는 ‘3%룰’을 포함한 안을 통과시켰다. 민주당은 3일 국회 본회의에서 상법 개정안을 최종 통과시키겠다고 했다.

상법 개정 기대감에 국내 주식시장은 들썩이고 있다. 그간 투자자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던 대기업 지주사 주가가 급등하고 있다. 이사의 충실 의무가 ‘회사’에서 ‘회사와 주주’로 확대되면 기업이 상법 개정 이후 배당을 늘리거나 자사주를 매입·소각해 주가를 부양하는 등 주주 친화 정책을 강화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나온다.

그러나 이 부장은 “상법 개정이 배당 확대, 자사주 소각 등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는 오해”라며 “상법 개정안의 핵심 포인트는 지배주주와 일반주주 사이의 이해 상충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국내 주식시장의 문제 중 하나로 지배구조 악화를 꼽았다. 지배주주는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쉽게 장악할 수 있는데, 사외이사와 감사의 견제 기능은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지배주주가 지분을 저렴하게 매입하거나 제3자 유상증자를 통해 우호 지분을 늘리는 등 사익을 추구하더라도 이를 막을 방법이 사실상 전무하다. 가령 분할 상장처럼 기존 주주의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도 지배주주의 뜻에 따라 손쉽게 이뤄지는 편이다.

이 부장은 “1998년 IMF 사태 이후 국내 산업계에서 지배주주의 독단적인 의사 결정에 대한 문제가 제기됐고, IMF의 권고로 2000년 상법 개정이 이뤄졌다”며 “자산 규모 2조원 이상 기업은 이사 절반을 사외이사로 채워야 한다는 내용 등이 담겼으나, 현재는 사외이사도 사실상 거수기로 전락하면서 실효성을 잃었다”고 했다.

이 같은 상황이 국내 주식시장 저평가로 이어졌다는 게 이 부장의 진단이다. 그는 “기업 지배구조가 악화하면서 지주사들이 투자자 관심 밖으로 멀어졌고, 그 결과 지주사 주가순자산비율(PBR)은 1배를 넘을 수 없게 됐다”며 “거래에서 소외되고 분할 상장이 이어지면서 지주사 주가는 오랜 시간 정체했다”고 말했다.

상법 개정안의 핵심 내용 중 하나는 이사의 충실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는 것이다. 이 부장은 이사의 충실 대상을 주주로 확대하면 국내 기업에서 발생하는 지배구조 악화를 더 잘 감시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 부장은 “다른 나라 법도 대부분 이사의 충실 대상을 기업으로 설정했으나, 법적 판단은 주주 이익을 고려해 이뤄진다”며 “상법 개정이 이뤄지면 국내에서도 지배주주와 일반주주 사이의 이해상충 관계에서 법적 다툼이 증가하고, 법원은 주주 이익을 기반으로 판결을 내리는 사례가 늘어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투자자의 인식 전환이 이뤄질 가능성에 대해서도 이 부장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지배 주주의 사익 추구 문제가 공론화되면 자연스레 일반주주의 감시도 강화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가령 분할 상장처럼 기존 주주 이익을 침해할 소지가 있는 결정에 대해 이 부장은 “개정된 상법에 위배되는 행위”라면서 “주주 목소리를 규합하는 사례가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이 부장은 “상법은 연성규범적인 면이 있어 법적인 강제성보다는 사람들의 인식 전환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측면이 크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