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이나 기다려 본전 와서 냉큼 팔았는데… 그 뒤로 신고가 알림이 뜰 때마다 속이 뒤집어집니다. 세상에, 다들 탈출하라던 그 국장이 이렇게 날아오를 줄이야...”(50대 회사원 이모 씨)

올해 코스피는 상반기 수익률 기준으로 1999년 이후 26년 만에 최고 기록을 세울 전망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 지수는 올해 들어 6월 27일까지 27.4% 상승했다. 이는 1999년(57%) 이후 가장 높은 상반기 수익률이며, 지난해 같은 기간 상승률(5.4%)의 5배를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다.

이건규 르네상스자산운용 대표는 “미국에는 혁신적인 기업이 많아 투자할 만하지만, 한국인 입장에선 국내 문화와 트렌드, 소비 심리를 잘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국내 증시 투자만의 강점이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조선DB

✅코스피 26년래 최고 성과... 여의도 신바람

‘큰돈은 시장이 벌어준다’는 증권가 속설처럼, 여의도에서 자금을 굴리는 자산운용사 대표들은 역대급 강세장에서 신바람이 났다.

이건규 르네상스자산운용 대표는 29일 본지 인터뷰에서 “지금 들어가도 되냐, 이미 늦은 건 아니냐, 왜 이렇게 자꾸 오르냐는 등 고객 문의가 쏟아지고 있다”면서 “증시 대기 자금인 투자자 예탁금도 빠르게 늘고 있고, 그동안 눌려 있던 투자 심리가 조금씩 살아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지난 2002년 운용 업계에 입성한 24년 차 베테랑 펀드매니저다. 2003년 VIP자산운용 창립 멤버로 17년 동안 줄곧 일하다가 지난 2019년 독립했다.

출범 당시 만들었던 다빈치1호 펀드는 누적 수익률이 209%에 육박한다. 연초 이후 수익률도 59%로, 같은 기간 코스피 상승률(27%)을 압도했다. 현재 운용 자금은 2380억원에 달한다.

뒤늦은 후회, 조심스러운 기대가 교차하는 지금의 한국 증시. 하반기에는 어떤 종목과 업종에 주목해야 할까. 이건규 대표에게 물었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정다운

✅해외 헤지펀드도 주목… “국장 복귀는 지능 순”

−올해 상반기 성과는 어땠나.

“개별주 투자하는 플레이어들이 수익 내기에 굉장히 좋은 시장이었다. 두산에너빌리티,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실리콘투, HD현대일렉트릭 등과 같이 글로벌 시장 확장 가능성이 높은 종목들에서 큰 수익을 거뒀다. 지금은 상법 개정 등 정부 정책 수혜를 기대하면서, 원자력 관련 수혜주와 저PBR(주가순자산비율이 낮은 종목) 중 자사주 비중이 높은 저평가주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외국인 매수세는 계속될까.

“5~6월 외국인 순매수가 이어지는 가운데, 최근 여의도에서는 해외 대형 헤지펀드 자금 3000억원이 한국 증시에 유입될 것이라는 소식도 전해졌다. 한국 시장은 작기 때문에 해외 투자자라고 해봤자 연기금 정도로 한정되어 있다. 유명 헤지펀드가 한국에 그 정도 금액을 한 번에 쏜다는 건 흔한 일이 아니다. 글로벌 큰손들이 한국 시장을 투자해볼 만한 곳이라고 판단했고, 최근 나타난 강세장이 단기적 흐름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는 신호로 봐야 한다.”

−지금 한국 증시 들어가기엔 안 늦었나.

“작년만 해도 한국 증시가 워낙 부진하다 보니 ‘국장 탈출은 지능 순’이라는 말이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국장 복귀는 지능 순’이라는 말이 나온다. 지금은 ‘주식회사 대한민국’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면서 신뢰를 얻어가는 초기 단계라고 보여진다. 아직 안 늦었고 추가적인 상승 여력이 있는 만큼 여전히 투자를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주식 투자 열기가 ‘코로나 불장’ 때처럼 뜨겁진 않다.

“유례없는 강세장이지만 소외감을 느끼는 개인 투자자가 의외로 많은 것 같다. 국민주(株)인 삼성전자 주가가 역대 최고가(9만6800원)에 크게 못 미치는 6만원대에 머물고 있는 데다, 2차전지 관련주에 물려서 본전은커녕 마이너스인 경우가 많아서일 것이다. 증시 주변 자금으로 불리는 투자자 예탁금이 69조원대까지 늘어나긴 했지만 지난 2021년 초강세장(77조원)보다는 아직 낮다. 앞으로 개인 자금이 추가적으로 들어올 여지가 높다고 본다.”

−어떤 종목을 골라야 하나.

“이제부터는 단순히 주가만 보고 판단할 게 아니라, 향후 업종 전망을 명확히 파악하고 투자해야 한다. 주가가 올랐더라도 매수할 만한 경우가 있고, 반대로 매도해야 할 상황도 있다. 조선, 방산, 원전, 전력기기, 화장품 등은 올해 주가가 많이 오르긴 했지만 실적이 계속 좋아질 것으로 보여 주가 상승세 역시 지속될 것으로 본다. 미래에셋증권·키움증권 등 증권주와 HD현대·SK, CJ 등 지주회사 주식들 역시 상법 개정 등 정책 변화 속에서 재평가 국면을 맞이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한유진

✅“원전 르네상스 기대… 오천피 가능하다”

−상반기에 잘 오른 주식이 계속 좋은 성과를 낸다는 뜻인가.

“원전 산업은 자칫 단순 테마주로 치부되기 쉽지만, ‘원전 르네상스’가 다시 열릴 가능성이 있다. 그동안 전 세계적으로 원전 관련 밸류체인이 크게 축소됐지만, 한국은 비교적 체계를 유지하며 살아남은 기업이 다수 존재한다. 인공지능(AI)이 대규모로 전력을 필요로 하는 상황에서 원전 밸류체인은 새로 구축해야 하고, 한국 기업들이 ‘가성비’ 높은 기술력과 공급 역량을 갖췄다는 점이 부각될 것이다. 향후 10년을 내다보면, 원전 산업은 ‘제2의 조선업’처럼 한국에 큰 기회가 될 수 있다. 얼마 전 두산에너빌리티가 코스피 시가총액 5위권까지 오른 것도 이 흐름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하반기 우려되는 변수는 없나.

“반도체와 자동차는 미국발 관세 이슈로 상반기에 선(先)주문이 많았을 가능성이 높다. 하반기에는 실적이 다소 둔화될 수 있어 주의 깊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 2차전지 관련 종목들은 중국발 공급 과잉과 글로벌 경쟁 심화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어, 단기간 내 반등은 쉽지 않아 보인다.”

−코스피가 5000까지 오르려면 시가총액이 큰 삼성전자가 올라야 하는데...

“삼성전자가 핵심인 건 맞지만, 최근 반도체 업황이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고, AI 기술이 빠르게 고도화되면서 주가 반등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단순 실적 외에도 파운드리 사업 분할 등 구조적인 변화에 대한 기대감이 모멘텀이 될 수 있다. 또 시총 2위인 SK하이닉스가 이미 200조원을 넘어선 만큼, 하이닉스가 이끄는 시장 상승 흐름에 삼성전자가 동참한다면 코스피 5000도 불가능한 얘기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