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 /연합뉴스

금융위원회가 국정기획위원회에 동남투자은행 설립 대안으로 한국산업은행 본점 부산 이전을 제안하려다 철회했다. 정책 실효성을 고려해 여러 대안을 준비했으나 최종 보고 직전 이를 뺀 것이다. 산은 부산 이전에 대해 이재명 대통령과 여당의 의견이 회의적인 만큼 정책 제안 방향을 선회한 것으로 풀이된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는 이날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국정기획위 업무 보고를 진행하며 동남투자은행 설립, 산업은행 부산 이전, 산은 조직 재편 등의 내용을 제외한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 금융위는 국정기획위 보고를 준비하며 이재명 대통령의 지역 공약 중 하나인 지역 금융 공급 계획안을 마련했다. 애초에 금융위는 동남투자은행 신설과 산은 부산 이전, 산은 지역 본부 자금 공급 기능 강화 등을 병행 검토하겠다는 내용을 보고서에 담았다. 아울러 산은, 지방은행, 첨단산업전략기금과 차별화된 동남투자은행의 역할 검토가 필요하다는 신중한 의견을 내비쳤다. 그런데 이날 최종 보고에는 해당 내용이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위는 이 대통령과 여당의 정책 코드에 맞추기 위해 관련 내용을 막판에 제외한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이던 지난 5월 부산을 방문해 산은 부산 이전은 사실상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후 6월 1일 직접 페이스북에 산은 부산 이전 대안으로 동남투자은행 설립을 약속했다. 지난 12일엔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동남투자은행 설립 법안을 발의했다. 현 정권이 동남투자은행을 중점 공약으로 여기는 가운데, 자칫 문제 제기처럼 비칠 수 있는 의견을 모두 배제한 것이다. 더군다나 산은 부산 이전이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공약이었던 만큼, 새 정부 업무 보고에 이를 관철하기 부담스러웠을 것으로 풀이된다.

조승래 국정기획위원회 대변인이 19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출입기자들에게 업무보고 내용 등을 브리핑 하고 있다. 조 대변인은 전날 정부 부처 업무 보고에 대해 “매우 실망이다”며 “공약에 대한 분석이 없고 어느 부처는 공약을 빙자해 부처가 하고 싶은 일을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뉴스1

국정기획위도 최근 정부 부처에 정권 코드에 맞춘 공약 이행을 강조하고 있다. 조승래 국정기획위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 중 전날 진행된 업무 보고 내용에 대해 “매우 실망이다”라며 “공약에 대한 분석이 없고 어느 부처는 공약을 빙자해 부처가 하고 싶은 일을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이 대통령의 공약에 맞는 정책을 마련할 것을 우회적으로 주문한 셈이다.

금융위가 막판까지 산은 카드를 고민했던 이유는 정책 효율성 때문이다. 동남투자은행 설립 공약은 부산에 정책금융기관을 세워 부울경(부산·울산·경남) 맞춤형 금융 지원을 빠른 속도로 집행하겠다는 취지에서 나왔다. 문제는 동남투자은행이 기존 정책금융기관과 비슷한 기능을 수행하는 데 그치면 정책 효율성이 낮아질 수 있다는 점이다. 금융위도 이를 의식해 산은 부산 이전 및 산은 지역 본부 강화 등의 대안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동남투자은행에 대한 의견은 엇갈린다. 이상원 동아대 금융학과 교수는 “동남투자은행은 이미 관련 법 발의안이 마련된 만큼,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선택할 수 있는 빠른 조치다”라고 말했다. 반면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까지 나온 구상안으로 봤을 때 동남투자은행은 옥상옥(屋上屋)에 그칠 우려가 크다”라며 “기존 정책금융기관과 정체성이 겹치는데 정책 수행 효율성을 낮출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