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문을 연 서울 도봉구 창동에 있는 국내 유일 사진 매체 특화 국립미술관인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평일 낮 도심에서 떨어진 신생 사진 미술관임에도, 이곳은 젊은 층으로 북적였습니다. 최근 군을 전역한 방탄소년단의 RM이 말년 휴가에 방문한 곳으로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방탄소년단의 전역으로 완전체 활동이 다가오면서 들썩이는 건 음악계뿐만이 아닙니다. 그동안 침체를 겪은 미술계도 설레고 있습니다. RM의 복귀는 미술계에 어떤 효과를 일으킬까요? 돈이 되는 여기 힙해 58번째 이야기입니다.
<1>외진 미술관도 살아난다
RM이 지난 7일 인스타그램에 올린 작품은 사진 미술관에 있는 이형록 작가의 1957년 작품 ‘소풍날’입니다. 이형록 작가는 한국전쟁 전후 도시의 풍경과 서민들의 삶을 리얼리즘 사진으로 담아내며 1950년대부터 작업을 꾸준히 이어온 작가입니다. 이후 동료들과 함께 신선회를 조직해 리얼리즘 사진의 흐름을 확산시켰습니다. 구두상 노점, 거리의 장면들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 사회적 현실을 직시하는 감수성을 드러냅니다. 이는 당시 살롱사진 중심의 흐름을 넘어서는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이런 1950~60년대 흑백 다큐 사진이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을 수 있는 작품이라고 보긴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 미술관에서 RM의 선택은 이 작품이었습니다. 이 전시를 기획한 손현정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학예사는 “RM은 널리 알려져 있지 않아도 예술성 높은 작품을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며 “자신의 취향에 맞는 작품을 보기 위해서라면 교외나 지방 등 외딴곳 미술관도 종종 방문한다”고 했습니다. 좋은 전시를 열어도 관객을 모으는 것에 종종 어려움을 겪는 외딴 박물관들이 RM 전역에 환호하는 이유입니다.
참고로 창동에 문을 연 사진미술관은 연면적 7048㎡(2132평), 지하 2층, 지상 4층 규모로 오로지 사진 전시와 필름 보존에 특화해 설계됐습니다. 개관전으로는 한국 예술사진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만든 정해창·임석제·이형록·조현두·박영숙의 작품을 조명하는 전시인 ‘광채(光彩): 시작의 순간들’ 등이 준비됐습니다.
1929년 한국인 최초로 사진 개인전을 연 정해창(1907~1967), 6·25 전쟁 후 도시의 삶과 건설 현장을 리얼리즘과 조형 실험으로 포착한 이형록(1917~2011), 해방 이후 노동자와 현실을 응시하며 한국 리얼리즘 사진의 미학을 정립한 임석제(1918~1996), 한국 모더니즘 추상 사진의 개척자로 평가받는 조현두(1918~2009), 1세대 여성주의 사진가이자 국내 최초 교내 사진 동아리인 숙명여대 사진 동아리 ‘숙미회(淑美會)’를 창립해 초대 회장을 지낸 박영숙(84) 작가의 1950~1960년대 초기작들을 볼 수 있습니다. 손현정 학예사는 “2015년 건립 계획이 확정된 이후 10년간 축적된 수집과 연구를 기반으로 기획한 첫 전시”라며 “다섯 작가는 1880년대 한국 사진이 시작한 이후 사진이 예술로 입지를 굳힐 수 있도록 독자적인 언어를 구축한 주인공들”이라고 말했습니다.
<2>침체된 국내 아트페어 시장 부활하나
최근 침체를 겪고 있는 미술시장과 아트페어도 ‘RM 효과’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기간 규모가 커진 아트페어는 최근 침체를 겪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RM이 군에 입대한 이후와 시기가 겹치기도 합니다.
RM이 입대 전 거의 매년 방문했던 아트부산은 올해 관람객 6만 명 수준으로 코로나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고, 참가 갤러리 수도 2023년 대비 줄었습니다. 그림 경매 시장도 불황이 심각해 올해 1분기 낙찰 총액이 5년 최저치 수준이며, 낙찰률 역시 46.7%로 코로나 정점 때(약 66%)에 비해 크게 낮아졌습니다. 미술시장 전체로도 지난 3년간 약 65% 축소되었다는 평가도 나오며, 아트페어 주요 실적 역시 큰 폭 감소 중입니다.
국내에 야심차게 진출한 프리즈도 최근 홍콩 아트 시장이 살아나면서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프리즈는 올해 ‘프리즈 하우스’를 오픈하며 더욱 공격적인 확장 정책을 편다는 분위기입니다. 2022년 프리즈 서울의 시작을 RM과 함께 화려하게 열었던 기억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는 9월 3~6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리는 ‘제4회 프리즈 아트페어’에서는 30여 개국에서 약 170개 갤러리 참여해 역대 최대 규모로 준비 중입니다.
또한 오는 9월에는 단순 전시를 넘어 연중 운영 문화공간 ‘프리즈 하우스 서울’ 개장을 추진 중입니다. 패트릭 리 프리즈 서울 디렉터는 “전 세계 주요 갤러리들과 함께 연중 전시 및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서울을 기반으로 한 국제 예술 교류의 새로운 거점으로 자리매김할 예정”이라며 “런던의 ‘No.9 코크 스트리트(No.9 Cork Street)’의 성공적인 모델을 바탕으로, 아시아에서 가장 활발한 문화 도시인 서울에서 국내외 미술계가 교류하는 문화 플랫폼으로 발전하기를 기대된다”고 말했습니다.
서울 약수동에 문을 열 프리즈 서울 건물은 1988년 한국 현대사의 전환점에서 지어진 주택으로, 당시의 건축적 정서를 간직한 채 리노베이션을 거쳐 새로운 모습으로 선보일 예정입니다. 건축 스튜디오 사무소 효자가 리노베이션 설계를 맡았으며, 아워레이보가 시공을 총괄합니다. 또한, 세지마 가즈요와 니시자와 류에가 이끄는 사나의 장소 특정적 설치 작품이 공개될 예정입니다.
프리즈 페어 총괄 디렉터 크리스텔 샤데는 “프리즈 하우스 서울은 한국에서 프리즈의 존재가 자연스럽게 확장되는 매우 흥미로운 진전”이라며 “서울은 이미 글로벌 미술 시장의 중심지로 부상했으며, 이 새로운 공간을 통해 우리가 도시의 생동감 넘치는 예술 커뮤니티와 보다 깊이 소통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