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당국이 은행을 소집해 ‘대출 쏠림’이 없도록 가계대출 규제를 점검할 것을 당부했다. 어수선한 정권 교체기 속 ‘영업 드라이브’에 나섰던 일부 은행은 대출 문턱을 다시 높일 것으로 보인다.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 당국은 이날 오후 3시 18개 은행 가계대출 담당 부행장을 소집해 비공개 긴급 가계대출 점검 회의를 열었다. 다음 달 3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시행을 앞두고 막차 수요가 몰린 데다, 부동산·주식 시장 상승 기대감이 커지며 가계대출이 가파르게 늘고 있어서다.
전 금융권 가계대출은 올해 1월(-9000억원) 전월 대비 감소 후 2월(4조2000억원), 3월(7000억원), 4월(5조3000억원), 5월(6조원) 증가세를 기록 중이다. 이달에도 가계대출이 5조원 이상 늘어날 전망이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에선 지난 13일까지 가계대출이 2조7000억원가량 급증했다.
금융 당국은 회의에서 은행별 올해 상반기 가계대출 현황을 보고받고, 무리한 주택담보대출 자제, 가계대출 증가 목표치 준수 등을 당부했다. 회의 참석자는 “금융 당국 측이 가계대출 쏠림이 없도록 잘 관리해 달라고 당부했다”며 “또 다주택자 대출을 자제하고 은행별로 가계대출 규제를 점검할 것을 주문했다”고 말했다.
금융 당국은 일부 은행의 과도한 가계대출 취급을 문제로 지적했다. 농협은행과 SC제일은행에선 지난달에만 가계대출이 2조원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일부 은행으로의 대출 쏠림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 경우 지난해 하반기처럼 ‘대출 중단’이 발생할 수 있다”며 “이로 인한 실수요자 피해가 없도록 가계대출 관리 강화를 주문했다”고 했다. 은행은 매년 금융 당국으로부터 연간 가계대출 총량 관리 목표치를 부여받는데, 상반기 대출이 과도하게 나갈 경우 하반기엔 대출을 늘리기 어려워 중단이 불가피하다.
이달 들어 대출 규제를 완화하던 은행들은 다시 대출 문턱을 높일 전망이다. 앞서 신한은행은 이달 초 주담대 최장 만기를 30년에서 40년으로 연장했다. 대출 만기가 늘면 은행에서 빌릴 수 있는 대출 한도가 늘게 된다. 하나은행은 비대면 주담대 한도를 기존 5억원에서 10억원으로 두 배 늘렸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대출 규제를 다시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금융 당국은 가계대출이 급증한 은행에 대해선 현장 점검에 나서겠다고 했다. 이후에도 증가세가 잡히지 않을 경우엔 추가 대응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 안팎에선 정부가 고액 주택에 대한 주담대를 전면 금지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문재인 정부 땐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 내 15억원이 넘는 아파트에 대한 주담대를 금지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현재 정부 여당 일각에선 정권 초기 강력한 대출 규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며 “금융 당국은 그럴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으나, 규제의 강도가 높아질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