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평택항에서 자동차들이 수출 대기 중이다./연합뉴스

반도체와 전기차 등 전략 산업에 대해 국가가 투자보조금(보조금)을 받는 문턱을 낮춰야 한다는 국책 연구기관의 제언이 나왔다. 지급 요건을 완화해 지원 대상을 확대하자는 얘기다.

다국적기업의 투자 유치 경쟁에서 보조금이 미치는 영향이 큰데, 한국은 주요국에 비해 보조금에 인색하다는 게 그 이유다. 재정 부담에 대해선 일정 수준 이상으로 이익을 낸 기업을 대상으로 보조금 일부를 환수하면 된다는 대안도 함께 제시됐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9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전략적 투자보조금 정책이 다국적기업의 투자와 공급망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를 발표했다. 전략적 투자보조금이란 국가 전략 산업에 각국 정부가 지급하는 자금을 말한다.

예상준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보조금 정책은 진입 기업의 평균 생산성과 진입 확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해야 한다”고 했다. 기업이 특정 국가에 공장을 지을 때 초기 비용도 있지만, 이후 계속 들어가는 유지 비용도 있기 때문이다.

가령 국가가 다국적 기업을 유치하려고 고정 비용만 보조하다간 생산성이 낮은 회사가 들어올 수 있다. 반대로 초기 비용에 대해서만 지원한다면 질 낮은 기업이 유입될 여지가 크다. 예 연구위원은 “고정 비용(보조금)을 증가시키는 정책이 시행되면 생산성 높은 기업의 진입을 유도할 수 있다”고 했다.

현재 많은 국가가 전략적 투자보조금 정책을 시행 중이다. 2019년 이후 중국, 미국, 독일, 캐나다가 보조금 정책을 적극적으로 확대했다. 실제 중국은 독자적인 연구개발로 집적회로 장비 등과 관련해 시장에서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제한을 극복한 프로젝트에 대해 1억위안(약 200억원) 혹은 적격 투자 비용의 30%를 지원한다. 미국은 전기자동차의 생산을 촉진하기 위해 20억달러(약 3조원)의 보조금을 제공하겠다고도 했다.

한국도 이러한 추세에 맞춰 전략적 투자보조금을 늘려왔으나 주요국과 비교하면 미약하다. 설비 투자를 유도하기 위한 지원도 소극적이다. 예 연구위원은 “우리나라의 보조금 정책은 (글로벌) 전반적인 추이와 달리 해외시장에 대한 금융지원, 무역금융 등 국내 기업이 해외로 진출해 해외 시장을 확보하는 데 지원이 집중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내로의 설비 투자 확대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부연했다.

예 연구위원은 세액을 공제해 주는 정부의 지원 방식에 대해서도 평가 절하했다. 투자 후 손실을 보는 기업은 세액 공제의 혜택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예 연구위원은 “전략 산업에 대한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해 보조금 수급 요건을 확대해야 한다”면서 보조금 지원 확대에 따른 재정 부담에 대해선 “수급 요건을 확대하고 일정 수준의 초과 이익 발생 시 지급된 보조금을 일부 환수하는 방식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예 연구위원은 보조금 정책을 설계할 때 전략 산업별로 지원을 달리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양질의 투자를 유치할 수 있는 스크리닝 메커니즘을 산업별로 차등화해야 한다”며 “정책을 설계하는 시점에 민관 협력 채널을 활용해야 한다”고 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발생한 통상 전쟁과 관련해서도, 예 연구위원은 “우리나라에 투자한 기업의 리스크가 확대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국내 투자 기업에 대한 보조금을 늘려 미국의 통상 압박 피해에 대해 보전하는 방안을 적극 강구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는 “보조금 정책의 불확실성은 투자 수익 악화에 따라 신규 투자 유치에 어려움을 준다”며 보조금 정책의 투자 유치 효과를 고려해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