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사회의 변화를 비추는 거울 같은 역할을 한다. 돈이 어디로 흘렀는지 따라가 보면, 우리 사회가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 수 있다. 달라진 사회 구조와 가치관은 부(富)의 분포를 바꾸고, 경제의 중심축과 산업의 흐름까지 변화시킨다.

그렇다면 지난 10년 동안 대한민국 가정 경제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조선일보 [왕개미연구소]가 NH투자증권과 함께 지난 2014년과 2024년에 발표된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를 토대로 한국 가계의 자산과 소득 변화를 분석해 봤다.

가계금융복지조사는 전국 2만 가구를 대상으로 해마다 실시하는 설문 조사로, 한국 가계의 재정 상황을 가장 잘 보여준다.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이연주

1️⃣사업은 총성 없는 전장이었다

“장사하면 월급쟁이보다 더 많이 벌지 않을까? 100세 시대인데 가게 하나 잘되면 평생을 걱정 없이 먹고살 수 있을 텐데...”

사업의 가장 큰 장점은 소득 상한선이 없다는 것이다. 성공하기만 하면 월급쟁이 연봉을 훌쩍 뛰어넘을 수 있다. 하지만 매출이 들쭉날쭉하거나 적자가 나면 직장인보다 못할 수도 있다.

많은 직장인이 ‘내 가게’를 꿈꾸지만, 지난 10년간의 데이터를 보면 가게를 갖는 것이 반드시 경제적 안정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었다.

지난 10년 동안 근로소득은 3025만원에서 4637만원으로 53.2% 증가했다. 하지만 사업소득은 같은 기간 증가율이 9.7%에 그쳤다.

준비 없이 창업하면 경험 부족과 무한 경쟁으로 실패할 확률이 높아진다./그래픽=조선디자인랩 이민경

김진웅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 연구위원은 “임대료나 인건비 등 고정비가 상승했고, 어렵게 장사가 잘되는 입지를 만들면 곧바로 주변에 동종 업종이 들어서는 등 경쟁이 치열해졌다”면서 “사업소득 증가율이 낮은 현실은 중소상공인들이 처한 사업 환경이 얼마나 어려운지 간접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했다.

창업 전문가 이경태씨는 “장사를 하면 직장인보다 더 벌 수도 있지만, 남들과 똑같이 하거나 별다른 고민 없이 시작하면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철저히 준비해야 살아남아 성공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한국의 부동산 쏠림은 해외와 비교해도 유독 심한 편이다./그래픽=조선디자인랩 이민경

2️⃣순자산은 연평균 5%씩 늘었다

“서울 중상위권 대학 나와서 딸 하나 키우고 있는 결혼 10년 차 부부입니다. 둘 다 아껴 쓰고 절약하면서 사치와는 거리가 멀게 살고 있는데, 비슷하게 출발한 친구들은 골프니 해외여행이니 하며 풍족하게 즐기고 사는 것 같아요. 저희 부부도 재산을 더 늘렸어야 했을까요?”(40대 워킹맘 이모씨)

많은 사람이 자신의 재무 상황이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지 궁금해한다. 그렇다면 남들은 매년 자산을 얼마나 늘리고 있을까?

NH투자증권 분석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가계 순자산(자산에서 부채를 뺀 금액)은 2억7488만원에서 4억4894만원으로 63% 증가했다. 연평균 증가율로 따지면 약 5%다. 김진웅 연구위원은 “같은 기간 한국 경제성장률이 연평균 2.48%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가계 순자산 증가율은 그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수준으로 상당히 양호한 성과”라고 평가했다.

은퇴 이후에도 일터를 떠나지 않고 일하는 60대가 늘고 있다./그래픽=조선디자인랩 이민경

3️⃣놀면 뭐해... 60대에도 일한다

10년 전만 해도 50대와 60대의 소득 격차는 매우 컸다. 당시 50대의 경상소득은 5829만원이었지만, 60대는 2700만원으로 절반 수준으로 급감했다.

그러나 최근 50대와 60대의 소득 격차는 예전만큼 크지 않다. 50대의 평균 경상소득(일정하고 정기적인 소득)은 8891만원, 60대는 5512만원으로 38% 차이를 보인다. 60대의 경제 활동이 예전보다 활발해진 데다 은퇴 전에 준비한 국민연금, 정부가 지급하는 기초연금 등이 안정적인 소득원이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뇌와 신체의 노화를 늦추기 위해서도 집에 있지 말고 나가서 일하는 것이 좋다. 노인 정신의학 전문의인 와다 히데키(和田秀樹)씨는 “일본에는 고령자 취업률이 높은 지역일수록 평균 수명이 길어진다는 통계가 있다”면서 “고령자에게 일이란 노화를 늦추고 활기를 주는 고마운 존재”라고 말했다. 인지 기능과 근력을 유지하려면 꾸준히 몸을 움직여야 하며, 이 시기에 좋은 생활 습관을 들여둬야 80~90대까지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와다씨는 “젊을 때는 연봉과 성과가 중요하지만, 노후에는 돈을 벌거나 뛰어난 성과를 내는 것보다 경험과 지식을 사회에 환원하는 방향이 더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40대는 소득과 경력에서 정점을 찍는다./그래픽=조선디자인랩 이민경

4️⃣40대에 소득·지출 정점을 찍는다

맞벌이 가구가 일반적인 가정 형태로 자리 잡으면서 연령대별 가구 소득에도 변화가 생겼다. 10년 전만 해도 연령대별 가구 소득 1위는 50대(5829만원)였다. 40대는 5525만원으로 근소하게 적었다.

하지만 지금은 40대 가구 소득이 9083만원으로, 50대(8891만원)를 앞지르면서 소득 최고층에 올랐다.

40대는 모든 연령대 중 소득이 가장 많았지만 지출도 6094만원으로 가장 많았다. 박승영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40대 가구의 가장 큰 지출은 교육비”라면서 “소득이 높아질수록, 자산이 많아질수록 교육비를 많이 쓴다”고 말했다. 박 연구원에 따르면, 30대 가구는 지출의 8~13%를 교육비에 쓰지만, 40대 가구는 20~25%를 쓴다.

지난 10년 동안 식료품과 여행, 문화 등 여가 비용 지출이 많이 늘었다./그래픽=조선디자인랩 이민경

5️⃣부동산 애착, 더 강해졌다

대한민국 가정의 자산 지붕을 떠받치는 핵심 기둥은 예나 지금이나 부동산이었다. 전체 자산에서 차지하는 부동산 비율은 10년 전 67.6%에서 70.5%로 오히려 늘어났다. 부동산에 대한 애착이 더욱 강해진 것이다. 미국(28.5%), 일본(37%) 등 주요 선진국은 한국처럼 부동산 의존도가 높지 않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주식·펀드 등 금융 상품은 때로는 폭락해서 투자자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줬지만 부동산은 계속 우상향해서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면서 “부동산 불패 신화를 믿고 살았던 세대는 나이 들어도 부동산 위주로 포트폴리오를 짠다”고 말했다.

하지만 노년기의 소비 여유는 부동산이 아니라 ‘현금 흐름’에서 나온다. 한강변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어도 절반씩 잘라서 현금화하기는 어렵다. 부동산과 금융 자산은 적절한 균형을 맞춰 보유해야 질병, 상해, 부모 부양, 자녀 지원 등 현금이 필요한 시기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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