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저축은행이 부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정리를 미루는 정황이 금융감독원의 검사에서 드러났다. 연체가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났음에도 부실 PF 사업장을 경·공매로 내놓지 않거나, 대출 원금보다 높은 값을 매겨 유찰되도록 하는 식이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은 지난달 24일 안국저축은행에 부실 PF 정리 업무 지연과 관련해 ‘경영유의’ 조치를 부과했다. 경영유의는 금감원 검사 결과 경영상 조치가 필요한 사항에 대해 개선을 요구하는 제재로, 통보 6개월 이내에 개선 결과를 보고해야 한다.
금감원 검사 결과 안국저축은행은 6개월 이상 연체된 PF 대출의 경우 3개월 단위로 공매해야 한다는 ‘부동산 PF 대출 취급 규정’을 준수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금감원은 제재 공시를 통해 “연체 기간이 6개월을 초과하거나 공매가 취소·중단된 이후 6개월이 지났음에도 공매 또는 재공매 등의 법적 절차에 착수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나마 공매로 내놓은 PF 사업장은 최저 입찰가를 대출 원금보다 높게 책정한 것으로 확인됐다. 최저 입찰자를 PF 사업장 감정평가액이나 부지 매입가격보다 높게 써낸 것인데, 결국 해당 사업장은 유찰을 거듭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또 차주(돈 빌린 사람)가 자율 협약(채권단과 기업 간 협의를 통한 자율 구조 조정) 조건을 미이행했음에도 대출 만기를 연장한 경우도 있었다.
금융 당국은 사업성이 낮은데도 연명하는 이른바 ‘좀비 사업장’을 제한하기 위해 무분별한 만기 연장 및 이자 유예를 제한하고 있다. 금감원은 “안국저축은행은 부실채권에 대한 상·매각 실적이 미흡해 목표 연체율을 달성하지 못하는 등 자산건전성이 지속적으로 악화할 우려가 있다”며 “대손충당금(떼일 것에 대비해 쌓는 돈) 적립을 강화하라”고 지시했다.
저축은행들이 금융 당국의 신속한 구조조정 지시에도 갖은 방법으로 PF 사업장 처분을 늦추는 것은 부동산 시장이 회복될 것이란 기대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금리 인하에 힘입어 부동산 경기가 반등하면 손실을 만회할 수 있는 만큼 싼값에 사업장을 처분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부실 정리 지연은 연체율 급증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은행의 ‘금융업권별 업종별 기업 대출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저축은행의 부동산업 대출 연체율은 15.95%로 전년 말 대비 8.8%포인트 올랐다. 2년 전과 비교해선 12배 상승했다.
금융 당국은 부실 PF 정리에 미온적인 저축은행에 대한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다. 금감원은 예금보험공사와 올해부터 소규모 저축은행도 PF 여신 프로세스 적정성 검사를 공동 진행하기로 했다. 그동안은 자산 규모 2조원 이상 저축은행 5~8곳만 이 검사를 받았지만, 이제는 규모와 상관없이 모든 저축은행을 검사한다. 금감원과 예보는 PF 대출 승인·심사·사후 관리 등 여신 취급 프로세스 전반과 내부통제를 점검, 위법·부당 행위가 발견되면 즉시 제재에 나설 예정이다.
금융 당국은 부실 저축은행 선별 작업도 진행 중이다. 일부 저축은행은 금융 당국의 적기시정조치 심사를 앞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적기시정조치란 금융회사의 건전성이 악화해 일정 기준에 미달할 경우 주식 소각이나 병합, 영업 정지 등을 하도록 금융 당국이 요구하는 조치다. 안국저축은행은 지난해 12월 적기시정조치 1단계인 ‘경영개선 권고’를 부과받았다. 이에 따라 6개월 내로 건전성 지표를 개선해야 한다. 안국저축은행의 연체율과 고정이하여신비율은 지난해 9월 말 기준 각각 19.4%, 24.8%로, 이는 업계 평균 대비 두 배 이상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