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26년 만에 적자를 낸 위기 상황인데, 돈 먹는 하마인 야구단을 꼭 유지해야 하나요? 당장 해체해야 합니다.” “사우디 빈 살만 왕세자가 화나서 몽땅 처분하면, 주가 더 내리겠죠?”
게임업체 엔씨소프트가 지난 11일 장 마감 후 실적 발표를 하자, 온라인 종목 게시판에 성난 소액 주주들의 성토가 쏟아졌다.
엔씨소프트는 지난해 영업손실 1092억원으로 연간 적자를 기록했다. 연간 영업손실은 회사 창립 이듬해인 1998년 이후 26년 만이다. 매출(1조5781억원)도 전년 대비 11.3% 줄었고 순이익(941억원) 역시 56% 감소했다. 모바일 게임 성장 둔화에 더해 과금 구조에 대한 소비자 불만까지 커지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신통치 않은 실적 발표에 엔씨소프트는 지난 12일 주가가 3.5% 하락한 데 이어 13일에도 1.7% 하락해 17만1200원에 마감했다. 최근 1년 동안 주가 하락률은 15%에 달한다.
NH투자증권 데이터에 따르면, 엔씨소프트의 주주 100명 중 98명이 손실을 보고 있어 ‘국민실망주(株)’라는 오명까지 얻었다. 4년 전만 해도 주당 가격이 100만원을 넘어 ‘황제주(株)’라고 사랑받았는데, 지금은 정반대의 상황에 처했다. 더욱이 주가 반등의 촉매제가 될 실적 전망마저 어두워지면서, 투자자들의 실망감은 한층 커지고 있다.
✅증권가 “신작 성공 없이 상승 어려워”
여의도 증권가의 시선도 싸늘하다. 남효지 SK증권 연구원은 “작년에 엔씨소프트가 출시한 신규 게임들이 모두 흥행에 실패했다”면서 “아이온2와 LLL 등 신규 게임 출시를 준비 중이지만 아이온2 외에는 기대치가 높지 않다”고 말했다. 호시절에 매수한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주가 하방을 방어하고 있지만 신작 성공을 입증해 보이지 못한다면 추가 하락이 불가피하다고 남 연구원은 지적했다.
강석오 신한투자증권 연구원도 “올해 인력과 마케팅 효율화로 영업 비용 규모는 크게 줄어들지만 아이온2 이외의 신작들이 외형 성장에 기여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면서 “2026년 추정치 기준으로도 밸류에이션(가치 평가) 매력이 낮다”고 말했다.
✅주주들 “야구단부터 매각” 압박
기업이 스포츠 구단을 운영하는 것은 브랜드 이미지 제고와 팬덤 형성 등 여러 측면에서 도움이 된다. 하지만 실적이 악화된 상황에서는 주주들의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엔씨소프트는 프로야구단 엔씨다이노스에 연간 250억~300억원을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엔씨소프트의 장기 주주인 이모씨는 “권고 사직까지 하면서 회사가 허리띠를 졸라매는데 본업과 상관 없는 야구단 지원은 왜 계속하는 것이냐”면서 “회사 재정에 부담을 주는 야구단을 서둘러 매각해 체질 개선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야구단 운영과 관련한 주주들의 불만과 관련해 엔씨소프트 관계자는 “전사적인 비용 효율화의 일환으로 지난 2년간 야구단 지원 규모를 지속적으로 축소해 왔다”면서 “당장 매각하기보다는 비용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며 운영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유리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엔씨소프트는 박병무 사장 주도로 지난해 권고 사직 등으로 직원 수를 800명 줄이는 등 비용 효율화 목적의 조직 개편 작업을 진행 중이다.
✅판교 신사옥... ‘마천루의 저주’ 우려도
월가에는 ‘마천루의 저주(Skyscraper Curse)’라는 말이 있다. 기업이 신사옥을 짓는 것이 문제는 아니지만, 본업보다 호화로운 본사 건물에 집중하는 것은 자만과 경영 비효율의 신호일 수 있어 경계해야 한다는 의미다.
엔씨소프트는 지난 2021년 4월 판교 테크노밸리 중심에 위치한 금싸라기 땅을 매입했다. 당시만 해도 리니지 게임으로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던 전성기였기에 대형 사옥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하지만 본업이 흔들리게 된 지금은 1조원(땅값+공사비)이 넘는 비용을 걱정해야 할 상황에 처했다. 엔씨소프트는 건축 비용 확보를 위해 알토란 삼성동 옛 사옥 매각을 진행 중이다. 사옥 매각 대금(4000억원대 추정)은 판교 신사옥 건축비로 사용된다.
✅사우디 왕세자, 7400억 평가손 추정
엔씨소프트의 2대 주주는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PIF)를 통해 1조원을 투자한 빈 살만 왕세자다. PIF는 단순 투자 목적으로 지난 2022년 1~2월 두 차례에 걸쳐 엔씨소프트 주식 203만2411주(지분 9.26%)를 사들였다. 당시 엔씨소프트 주가는 53만~56만원 수준이었다. PIF의 매수 시점 주가로 계산해 보면, 현재 손실 규모는 약 7400억원 정도로 추정된다.
증권업계 관계자 A씨는 “사우디아라비아 실권자인 빈 살만 왕세자는 최근 미국 트럼프 대통령에게 6000억달러(약 862조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히는 등 큰손”이라면서 “왕세자의 자산 규모를 고려하면, 엔씨소프트 손실은 큰 금액이 아니어서 신경조차 쓰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참고로 김택진 최대 주주의 지분율은 12.13%다.
한편, 끝없는 주가 하락이 이어지면서 엔씨소프트는 시가총액은 물론, 최대 주주의 자산 가치까지 후발 주자에게 추격당하는 상황에 처했다.
지난해 상장한 게임업체 시프트업(대표작 스텔라 블레이드)이 대표적인 사례다. 현재 시프트업의 시가총액은 3조7509억원으로, 엔씨소프트(3조7585억원)를 턱밑까지 추격하고 있다. 시프트업 김형태 대표는 과거 엔씨소프트에서 아트디렉터(AD)로 근무했던 인물이다.
13일 한국CXO연구소에 따르면, 김형태 대표의 재산은 7일 기준 1조3755억원에 달한다. 반면 김택진 엔씨소프트 최대 주주의 주식 재산은 4507억원 수준이었다. 오일선 한국CXO연구소장은 “김형태 시프트업 대표이사 입장에서는 엔씨소프트를 나와 시프트업 회사를 차린 것이 부(富)의 대역전을 이뤄내는 전환점이 된 셈”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