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 상장사 피코그램이 상장 3년여 만에 자금 유동성 우려가 불거졌다. 정수기 필터 업체인 피코그램은 2년 전 화장품 사업까지 뛰어들었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운영자금 확보를 위해 발행한 전환사채(CB) 풋옵션(조기상환청구권) 행사도 이어지며 추가 자금 조달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회사 측은 남은 CB에 대해 오는 4월 풋옵션 청구가 들어오더라도 내부자금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올해부터는 지난해 시작한 음식물 쓰레기 처리기 판매 사업에 집중하며 실적 회복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1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피코그램은 이달 4일 1회차 CB 투자자들로부터 풋옵션 청구를 받고 120억원을 상환했다. 피코그램은 운영·시설자금 확보를 이유로 지난 2023년 8월 200억원 규모의 1회차 CB를 발행했다.
당시 총 7곳의 증권사와 운용사가 이를 인수했는데, 그중 일부 기업이 지난달 1차 풋옵션 청구 기간이 되자마자 행사한 것이다. 이번 상환액은 전체 발행액의 58% 수준이다. 65억원을 인수했던 라이프자산운용도 풋옵션을 행사한 기업 중 하나다. 가치투자 하우스로 유명한 라이프자산운용은 투자사 중 가장 많은 CB를 사들였다.
2021년 11월 상장한 피코그램은 정수기 렌탈 시장 호황과 해외 진출 등의 기대감에 상장 1년 만에 주가가 170% 급등했다. 세슘 정화용 필터를 개발한 점이 주목받아 원전 관련 테마주로 묶인 영향도 컸다. 하지만 이후 주가는 하락세를 탔다. 이달 7일(2500원) 기준 상장 후 고점(2만1450원) 대비 90% 가까이 빠졌다. 최근 1년 동안 44% 하락했다.
1회차 CB의 전환가액은 5110원으로, 남은 84억원어치 CB도 오는 4월 청구될 가능성이 크다. 회사는 남은 CB에 대해 풋옵션 청구가 들어오면 5월 4일까지 자금을 마련해야 한다.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이 작년 3분기 기준 114억원에 불과해 이번 CB 상환액을 빼면 남는 게 없어 추가 자금 확보가 필수적이다. 일각에서는 CB나 유상증자 발행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이에 대해 피코그램 관계자는 “추가 CB 발행 등은 향후 고려해야 할 사안으로, 지금 당장 회사를 운영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며 “당사 증권계좌 등 다른 곳에도 자금이 있어 나머지 CB 상환금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피코그램은 지난 2023년 뷰티·헬스케어 기업 아이젤 지분 12.7%를 30억원에 사들이며 본격적으로 사업 확장에 나섰다. 작년 9월엔 음식물 처리기 시장에도 뛰어들었다. 하지만 실적은 2022년 영업이익 35억원에서 2023년 15억원으로 반토막이 났다. 지난해 3분기에는 분기 영업이익이 2500만원까지 떨어지며 11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냈다.
증권가에서는 올해 음식물 처리기 판매 확대가 실적 회복에 관건이라고 분석했다. 김태현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LG전자와 삼성전자 등 대기업도 (음식물 처리기) 시장 진출을 계획 중이라 경쟁 강도는 더 높아질 것”이라며 “올해 관련 매출 예상치는 10억~15억원으로, 당분간 시장 안착을 위한 마케팅 등 비용 증가는 불가피할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개인 투자자들은 CB 풋옵션 청구가 향후 주가 상승 여력이 없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 아니냐며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일부 투자자들은 남은 CB까지 회수되면 ‘동전주(1주당 1000원 미만인 종목)’로 추락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NH투자증권 나무앱에 따르면 피코그램 손실투자자 비중은 99.35%로, 평균 수익률도 마이너스(-) 58.83%에 달한다.
회사 관계자는 “작년 3분기 영업이익은 4분기로 밀린 주문들이 나오면서 줄어들었을 뿐 연간 기준으로는 전년 대비 큰 문제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 주력 사업인 음식물 처리기의 경우 상반기 중 미국 아마존에 자체 브랜드로 판매가 가능할 예정이고, 해외 고객사와 제조사개발생산(ODM) 및 주문자위탁생산(OEM) 방식으로 판매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