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ABL생명 인수합병(M&A) ‘계약금 몰취(沒取)’ 논란으로 홍역을 앓은 우리금융지주가 중국의 다자보험그룹에도 똑같은 내용의 계약 조건을 적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 금융 당국이 M&A를 반대하면 우리금융이 계약금 1500억원을 헌납하는 조건만 공개됐지만, 반대로 중국 당국의 M&A 불허 시 다자보험이 계약금을 돌려주고 위약금까지 지급하는 의무 조항을 계약에 포함한 것이다.
6일 조선비즈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해 우리금융과 다자보험은 동양·ABL생명 주식 매매 계약을 체결하면서 양국 정부 개입 시나리오 조항을 계약에 포함했다. 해당 조항엔 중국 당국의 M&A 불허 시 다자보험이 우리금융에 계약금 1500억원을 돌려줘야 한다는 의무가 담겼다. 또한 다자보험은 위약금도 추가로 지불해야 한다. 다자보험이 지급해야 할 위약금 액수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계약금과 동일한 수준인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 금융감독원은 우리금융에 적용되는 몰취 조항만 공개했다. 한국 금융 당국이 반대할 경우 다자보험이 계약금을 가져간다는 내용의 조항이다. 이 때문에 ‘우리금융이 불리한 계약을 맺어 국부 1500억원이 중국 기업에 넘어갈 수 있다’는 논란까지 불거졌다. 그러나 금융권 내에선 양사가 쌍방에 똑같이 계약금 및 위약금 몰취 의무를 매겼다면 어느 한쪽에 불리한 계약은 아니라는 의견이 나온다.
IB업계 관계자는 “양측이 똑같은 규모의 몰취 의무를 진다면 이는 평등한 계약이라고 볼 수 있다”며 “당국의 힘이 강한 중국 시장의 특성을 고려해 우리금융이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이런 조항을 넣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우리금융이 한국 금융 당국의 반대 상황에도 계약금을 온전히 지킬 방법을 마련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금감원은 우리금융 내 발생한 여러 내부통제 실패 사례를 적발했고 이를 경영실태평가에 반영할 방침이다. 금융지주회사 감독규정에 따르면 지주사는 경영실태평가 2등급 이상을 받아야 자회사 인수를 할 수 있다. 경영실태평가 전망이 흐린 데다 아직 금융 당국의 허락이 떨어지지 않은 만큼, 우리금융이 1500억원의 계약금을 잃을 가능성은 여전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직 금융 당국 수장은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은 과거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일 시절 증권사를 인수해 경영 성과를 낸 적 있어 이번에도 그룹 외연 확장에 집중하고 있다”며 “지주 경영실태평가가 3등급으로 나올 것이란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아 리스크 관리를 철저히 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