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5년 1월 2일 14시 17분 조선비즈 머니무브(MM) 사이트에 표출됐습니다.
한국 사모펀드(PEF) 시장이 탄생한 지 20년이 됐다. 2004년 12월 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 개정으로 PEF가 도입된 이래, 몇차례의 개정을 거쳐 오늘날의 사모펀드가 자리 잡게 됐다.
그동안 우리 사모펀드 시장은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2023년 말 기준으로 국내 기관전용 사모펀드 운용자산(AUM) 합은 136조원에 달했다. 지난 10년간 연 평균 12%씩 늘어났다. 투자가 이뤄지지 않고 쌓여있는 자금만 37조5000억원에 달한다.
중요한 전환점을 맞은 지난해, 사모펀드 업계는 ‘1세대’ 베테랑인 임유철 H&Q코리아 대표를 제8대 협의회장으로 맞았다. 임 신임 PEF운용사협의회장은 작년 11월 1일부로 임기를 시작했다. 1월 1일 자로 딱 두 달이 됐다.
지난달 26일, 서울 중구 조선비즈 본사에서 임 회장을 만났다. 취임한 지 두 달 만에 금융감독원 간담회 등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는 임 회장은 사모펀드 업계가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사안, 협의회가 당면한 과제 등에 대해 1시간 반 동안 다각도로 풀어냈다.
―작년 11월 1일 협의회장이 된 지 어느새 두 달이 지났다. 그동안 바쁜 일정을 소화하며 지낸 것으로 아는데.
“2005년 사모펀드들과 금융당국의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만들자는 목표로 협의회가 생겼고, 주요 운용사들이 집행부를 구성해 돌아가면서 1년 임기로 회장사를 맡고 있다. 협의회장의 주요 역할은 금융감독원이나 기획재정부 등이 간담회를 열 때 참석해 업계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이다. 정부·당국과 업계 사이의 소통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달 12일 금감원에서 12개 사모펀드 운용사 대표들을 초청해 간담회를 했는데, 어떤 얘기가 오갔는지 궁금하다.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이슈, 오스템임플란트의 자진 상장폐지, DB하이텍과 KCGI의 갈등, 남양유업 법정공방 등 주로 상장사들과 관련된 사례들을 다뤘고, 의무 공개매수 도입의 현실성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또 업계 관계자들이 그간 하고 싶었던 말을 많이 하는 자리가 됐다. 그동안 열렸던 간담회들과 비교할 때 업계 관계자들이 솔직한 심정을 가장 많이 얘기했던 것 같다. 흔히들 사모펀드가 단기 바이아웃에만 치중하며 ‘먹튀(먹고 튄다는 뜻의 속어)’한다고 생각하지 않나. 그러나 사모펀드는 적어도 5~7년간 회사를 경영하면서 밸류업하는 데 집중한다. 결국 금융당국의 ‘밸류업 프로그램’의 취지를 가장 잘 따라가는 게 우리 사모펀드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복현 금감원장이 지난달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을 겨냥해 “금융자본의 산업자본 지배에 대한 부작용을 고민해 봐야 한다”고 말한 이후, 이른바 ‘신(新) 금산분리’ 개념이 주목 받고 있는데.
“감독당국과 정부가 우려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이해한다. 하지만 조금 더 지켜보면 기우일 뿐이라는 걸 알게 되리라 생각한다. 사모펀드가 기업을 인수해 경영하는 기간은 길어야 10년이다. 한정된 기간 동안 기업가치를 높여서 다시 경영권을 가져갈 새 주인을 찾아주는 게 사모펀드의 본질적 역할이다. 때문에 ‘금융이 산업을 지배’하게 될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매우 낮다.
또 사모펀드는 펀드 출자자(LP)들과의 계약과 정관이 있기 때문에 업계에서 우려할 만한 딜을 하는 게 불가능하다. 고려아연의 경우는 2대주주가 경영권을 갖고 있는 상황에 사모펀드(MBK파트너스)가 최대주주와 손잡은 예외적인 케이스지, ‘적대적 M&A’로 분류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은 지난해 국내 M&A 업계에서 가장 큰 이슈 아니었나. 이 사건을 어떻게 이해하는 게 맞는지.
“사회에서 기업의 거버넌스를 바라보는 시각은 과거와 비교해 확실히 달라진 것 같다. 고려아연 사건은 거버넌스를 둘러싼 갈등 구도에서 사모펀드들의 역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생각한다.
다만 국내 사모펀드들이 본격적으로 적대적 M&A를 수행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본다. 특히 공공기관이 많이 출자한 펀드라면 더더욱 어렵다. 그건 해외도 마찬가지다. 해외에서도 적대적 M&A를 주로 하는 행동주의 펀드는 바이아웃 펀드와 구별된다. 패밀리오피스 등 프라이빗한 자금이 들어간 펀드가 주로 적대적 M&A를 한다.”
―의무공개매수 제도에 대한 논의는 어떻게 돼가고 있으며, 협의회의 공식 입장은 무엇인지.
“지난 국회 회기 때는 지분 50%와 1주까지는 모두 의무공개매수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는데, 최근 나온 안은 100%를 모두 사야 한다는 내용으로 바뀌었다. 또 최대주주 지분이 아닌 2대주주 지분만 사더라도 의무공개매수를 해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금융위에서는 ‘지분 25% 이상 보유한 최대주주 지분을 살 때’, ‘50% +1주만 사면 된다’는 방향으로 얘기하고 있었는데, 탄핵 정국 때문에 보류된 상태다. 협의회의 입장은 ‘50% +1주’다. 100%를 다 사야 한다면 M&A 시장 활성화에 지장이 생길 수 있다. 우리는 그런 방향으로 의견서를 냈고, 이는 전임자(전 협의회장인 라민상 프랙시스캐피탈 대표) 때도 고수했던 입장이다. 앞으로도 의견 개진을 계속해 나갈 계획이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출범이 국내 M&A 시장과 산업계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궁금하다.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금리, 환율, 관세 이슈가 투자 환경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조선업은 혜택을 볼 것이고 자동차 산업은 고비를 넘겨야 하며, 2차전지 업계는 더 고생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요인들이 각 운용사의 투자 포트폴리오들에 직간접적 영향을 미칠 것이고, 앞으로 투자를 결정하는 데 있어 중요한 고려 사항이 될 것이다. 다만 사모펀드는 단기 투자자가 아닌 장기 투자자다. 단기적 충격은 견딜 수 있다.”
―현재 우리 정국이 혼란해 외국계 출자자(LP)들이 한국에 투자하는 걸 미루는 경향이 있을 것 같은데.
“출자를 안 한다기보다는 조금 관망하자는 분위기는 있는 것 같다. 불확실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올해 하반기쯤 정치적 불확실성이 어느 정도 해소된다면, 외국계 자금의 국내 유입도 계속될 수밖에 없다. 특히 미국의 재무적투자자(FI)들은 중국에 대한 투자를 피하다 보니 우리나라와 일본, 인도를 제외하면 아시아에 마땅히 투자할 곳이 없는 게 사실이다.”
―지금 한국 사모펀드 업계가 당면한 또 다른 과제가 있다면.
“우리 사모펀드들이 몸집이 커지고 많이 성장해 왔기 때문에, 이제는 투자를 할 때 사회적 책임과 시선을 어느 정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단순히 상업적인 측면만 생각하긴 어렵다. 모든 이해관계자를 만족시킬 수는 없어도, 그들의 이해관계를 두루 고려할 필요가 있다.
두번째로는, 우리나라 경제 규모를 고려할 때 사모펀드 시장이 계속 커나갈 수 있을지 고민할 시기가 왔다. 지난 20년 동안은 빠른 속도로 성장해 왔지만, 앞으로도 매년 그렇게 커나가겠나? 그러긴 어렵다고 본다. 이젠 어느 정도 포화가 돼서 현상태를 유지하거나 조금씩 성장하는 데 그칠 가능성이 크다. 이미 국내 큰 LP들을 보면 국내보다는 해외 투자 비중을 더 늘리고 있다. 해외 시장이 훨씬 더 크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현실적으로 한국 시장에 투자하는 블라인드펀드 약정액이 1조5000억원을 넘어가기는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후발주자들이 시장에 새로 진입해 경쟁하기는 더 어려워졌다.”
―협의회가 대형사들의 입장만 대변한다는 일부 중소형 운용사들의 지적도 있다.
“일리 있는 얘기다. 실제로 의무공개매수 같은 문제는 대형사들만 주로 관심 갖는 이슈다. 지금 집행위원회가 대형 운용사들로만 이뤄져 있어서 소형사들의 의견을 듣기 위해 거버넌스를 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집행위에서 그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이미 화두를 던진 상태다. 예를 들어 펀드 사이즈가 일정 수준에 못 미치는 운용사들도 집행위 당연직을 맡아 목소리를 내도록 한다면 좋을 것이다.”
―20주년을 맞아 특별히 계획하고 있는 이벤트가 있는지.
“1월 초에 무엇을 하면 좋을지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다. 봉사활동을 하자는 의견, 모여서 크게 행사를 치르자는 의견도 있었다. 어쨌든 그냥 넘어가고 싶지는 않다. 그동안 금융당국이 서포트해 준 것에 대해 감사의 표시도 꼭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