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0~1941년, 영국 본토가 나치 독일로부터 집중 공격을 받았다. 영국의 심장인 런던도 장장 8개월간 지속된 공습을 피해 갈 수 없었다. 그 당시 윈스턴 처칠 총리는 런던 사보이 호텔 내 피나포어(Pinafore) 레스토랑에서 정기적으로 사교 모임을 갖고 있었는데, 대피하라는 호텔 측 권유도 거부하고 모임을 지속했다고 한다. 이후 사보이 호텔은 전시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하고자 했던 처칠의 굳건한 의지를 상징하는 장소로 남았다.
사보이 호텔은 정치사·전쟁사뿐 아니라 자본시장의 역사에도 한 획을 그었다. 전후 1950년대 영국의 부동산 가치가 급등하자 적대적 M&A의 먹잇감이 된 것이다. 부동산 거물 찰스 클로어가 사보이호텔그룹을 인수하고 계열사인 버클리호텔을 상업용 오피스로 전환하려 하자, 사보이호텔 이사회는 묘수를 하나 냈다. 핵심 자산인 버클리호텔을 제3자에 매각한 뒤 50년간 임차해 사용하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사보이호텔그룹은 이 임대차 계약에 “버클리호텔을 오직 호텔 용도로만 운영해야 한다”는 조항을 넣었다. 자산의 핵심 가치를 잠가둬 인수 시도를 무의미하게 만들려는 전술이었다.
사보이호텔을 삼키려던 클로어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지만, 이 사건은 ‘현대적인’ 적대적 M&A의 시초로 기록되며 영국의 기업 관련 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 됐다.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사보이호텔 이사회가 주주들과의 협의 없이 버클리호텔을 매각한 게 합법이었는지 여부를 상공부가 직접 조사했고, 이후 M&A 분쟁을 해결하는 자율 규제 기관 ‘도시 인수합병 위원회(City Panel on Takeovers and Mergers)’가 만들어졌다.
◇ “28달러에 공개매수할게, 싫으면 정크본드 받아 가든가”
이처럼 적대적 M&A는 70년 넘는 역사를 가진 유서 깊은 M&A 방식이다. 사보이호텔 사건을 시작으로 1960년대 미국에서는 공개매수 형태의 적대적 M&A가 싹을 틔웠고, 1970년대에는 그 유명한 캐나다 인코(Inco)의 배터리 제조사 ESB 인수 사건이 일어났다. 인코의 회장이 주당 28달러를 제시하며 공격적 M&A를 시도하자 ESB 경영진이 강하게 반발했고, 유나이티드테크놀로지까지 경쟁자로 등장하면서 결국 인수가가 1억5700만달러에서 2억3400만달러로 급등한 사건이다.
영미권에서는 적대적 M&A의 역사가 깊은 만큼 공격 및 방어 방법, 전술이 체계화돼 있고 관련 법규 및 판례도 셀 수 없이 많다.
적대적 M&A 전술 중 오래된 것 중 하나는 ‘토요일 밤의 스페셜(Saturday Night Specials)’이다. 주말 동안 기습적으로 이뤄진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주말에 갑자기 공개매수를 제안해 회사의 경영진과 이사회가 대응할 시간을 주지 않는 방식이다. 토요일 밤 스페셜은 1970년대 미국에서 활용됐으나, 이후 공개매수 제안에 대한 응답 기간이 최소 20영업일로 연장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2단계 공개매수’ 전술은 처음에는 높은 가격으로 제한된 주식을 매수하고, 이후 더 낮은 가격으로 잔여 주식을 매수하는 방식이다. 주주들 입장에서는 1단계에서 주식을 고가에 팔지 않으면 2단계에서 헐값에 정리해야 하니 조기 매도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
2단계 공개매수는 1985년 미국 유노칼(현 쉐브론) 경영권 분쟁에서 쟁점으로 떠오르며 유명해졌다. 유노칼은 캘리포니아 유니언오일컴퍼니의 지주사였다. 당시 유노칼 지분 13%를 들고 있던 메사 페트롤리움은 다른 주주들이 보유한 지분 중 37%를 공개매수하겠다고 밝혔다. 1단계에서 주당 54달러에 공개매수하되, 이에 응하지 않는 주주에겐 현금 대신 54달러 상당의 정크본드를 대가로 지급하겠다는 것이었다.
이 같은 적대적 M&A 방식은 현재 미국 대부분의 지역에서 허용되지만 한국에서는 활용이 불가능하다. 우리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공개매수 주체는 가격과 수량, 기간 등을 명확히 공시해야 하며 공개매수 기간 중 가격을 올리는 등 조건을 변경할 수 있다. 가격을 내리는 건 허용되지 않는다.
◇ 고려아연 공개매수한 MBK, ‘토홀드’ 전략과 유사?
그 외에 ‘토홀드(Toehold)’, ‘베어허그(Bear hug)’, ‘던 레이드(Dawn Raid)’ 전술의 경우 국내에서도 허용되는 방식들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토홀드는 이번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서 MBK파트너스와 영풍이 사용했던 전략과 취지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토홀드는 공식적인 인수 제안 이전에 목표 기업의 지분 일부를 미리 확보하는 전략이다. 본래 공시 의무를 피하도록 지분 5% 미만을 먼저 확보하는 걸 의미한다. 전형적인 사례라고 볼 순 없지만 MBK파트너스의 경우 고려아연 주식 공개매수에 앞서 영풍과 주주간계약을 맺고 의결권 공동 행사에 합의했으며, 콜옵션까지 받아 영풍의 지분 절반을 인수하기로 했다. 이처럼 지분을 미리 손에 넣고 시작하면 경영권 확보에 유리한 입지를 다질 수 있다.
베어허그는 인수 주체가 대상 기업에 인수 제안을 직접 전달해, 이사회가 이를 주주들에게 공개하도록 압박하는 전략이다. 시장 가격보다 현저히 높은 가격에 인수하겠다고 제안하면 주주들 입장에선 거부할 이유가 없다는 점을 이용하는 것이다. 즉 “내 제안을 빨리 받아들이지 않으면 주주들에게 직접 가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함으로써 적대적 M&A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2006년 칼 아이칸과 워렌 리히텐슈타인이 KT&G 이사회에 서한을 보내 “주식을 주당 6만원에 사겠다”고 제안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던 레이드는 증시가 개장하자마자 주식을 대량 매입하는 전략이다. 기존 경영진에게 대응책을 마련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 과정에서 주가가 급등해 계획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비용이 들어갈 수 있다는 한계도 지닌다.
◇ 돈 많이 들고, 주가는 떨어지고… 적대적 M&A의 한계
다만 적대적 M&A는 치명적 약점을 가진다. 다케시 에비나 등의 2022년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적대적 M&A는 우호적 M&A와 비교할 때 법률 대응, 주주 설득 및 대상 기업 임직원들과의 충돌 해소 등에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는 단점을 지닌다. 추가 비용이 계획했던 것보다 많이 들어가면 적대적 M&A는 지연되거나 무산될 가능성이 크다.
시장의 불확실성이 클 때도 적대적 M&A의 비용은 높아진다. 불확실성이 클수록 합병 후 시너지 효과가 중요해지는데, 적대적 M&A의 경우 시너지를 내기까지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 대상 기업의 반발이 크며 인수 시도 과정에서 경쟁자가 등장해 가격을 추가로 올려야 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또 적대적 M&A시 대상 기업의 주가는 대폭 오르는 반면 인수 주체 회사의 주가는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는 연구도 있다. 마리나 마르티노바의 2008년 연구 결과에 따르면, 1960~1990년대 적대적 M&A를 주도한 기업들은 공시 시점 평균 초과수익이 마이너스(-) 5~-3%였다. 반면 이들이 인수한 기업들의 공시 시점 평균 초과수익률은 20~30%로 매우 높았다.
즉 적대적 M&A를 택하면 인수 주체 기업은 한동안 주가에 손해만 보고, 대상 기업만 이득을 보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동종 업계 내에서 인수 대상을 고를 경우엔 인수 주체 기업의 주가가 그나마 견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IT 기업이 적대적 M&A 형태로 선박 회사를 인수하는 것보다는 다른 IT 기업을 인수할 때 주가가 덜 떨어졌다는 얘기다. 볼트온(Bolt-on·동종 업체들을 인수해 시장 지배력을 높이는 것)을 통한 기업가치 제고를 기대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적대적 인수는 차입매수(LBO)를 통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인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대규모 부채를 동원하는 사례가 일반적이라는 것이다. 적대적 M&A가 늘 이성적인 판단에 근거해 이뤄지는 게 아니라는 점도 주의해야 한다. 랜달 모크, 안드레이 슐라이퍼 등은 1990년 연구에서 “적대적 M&A는 종종 인수 주체의 과도한 자신감(허영심)에 의해 추진된다”며 “이런 의사 결정은 목표 기업의 가치를 과대평가해 비효율적인 인수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