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증권가/뉴스1

국내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이 1년간 40% 커지는 비약적인 성장세를 보였으나, 자산운용업계에서는 여전히 아쉽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상품을 더 내놓을 수 있었다는 뜻에서다. ETF의 목줄을 쥔 한국거래소가 인력 부족으로 상장 개수를 제한해 놨고 이 탓에 운용사가 더 많은 상품을 상장하려고 해도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ETF는 운용사의 손에서 탄생해 한국거래소의 심사를 거쳐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이다.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전경

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대형사인 삼성자산운용과 미래에셋자산운용은 매달 2~3개, 중소형사들은 1~2개의 ETF를 상장해 왔다. 규정은 아니지만 그 이상을 상장하겠다고 하면 한국거래소가 다음 달로 심사를 넘기는 암묵적인 룰이 있어서다.

이렇다 보니 삼성자산운용과 미래에셋자산운용에서 상장한 ETF의 개수는 각 24개로 동일했다. 이 역시 우연의 일치라기보단 한 회사가 출시하면 다른 회사도 출시하는 양사의 경쟁 문화와 한국거래소의 ‘조절 심사’ 영향이 합쳐진 결과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상대적으로 인력이 많아 상품 개발에 힘을 줄 수 있는 운용사 입장에선 이같은 조절 심사가 장애물로 작용한다. 특히 지난해처럼 ETF 열풍이 불 때는 더 그렇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예전 같았으면 지난해는 상장을 2배는 더 많이 했을 것”이라며 “투자자의 수요가 받쳐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상장 제한이 있는 탓에 기껏 준비한 테마 ETF 출시를 놓치는 경우도 있다. 다른 급한 상품부터 상장을 시키느라 일부 테마는 우선 순위에서 밀려날 때가 있어서다. 이때 타사에서 먼저 관련 ETF가 나오면 기껏 다 구조를 짜놓고서도 상품을 출시하지 못하기도 한다. ETF는 ‘누가 먼저 출시하느냐’가 투자자의 자금을 더 많이 끌어오는 싸움이기 때문이다.

실제 A운용사는 양자컴퓨팅 ETF를 준비했다가 키움투자자산운용에서 비슷한 상품이 나오면서 계획을 보류했다. 덕분에 키움투자자산운용의 미국양자컴퓨팅 ETF는 상장한 첫날 5분 만에 75억원 규모가 전부 팔렸다. 시장 점유율 2%대인 키움투자자산운용으로서는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이 관계자는 “(ETF가 상장할 때 초기에 매수해 개인 투자자에게 물량을 풀어 이익을 챙기는) 증권사 입장에서는 대형사가 상장을 못시키니 중소형사에 유동성공급자(LP)로 들어간다”면서 “(한국거래소의 상장 제한으로) 중소형사에 유리한 시장이 됐다”고 지적했다.

최근 운용사의 거의 유일한 먹거리로 ETF가 떠오르면서 회사 간 경쟁이 치열해지자 한국거래소가 조절 심사를 더 강화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과거 같았으면 시리즈 ETF를 1개의 상품으로 카운트했는데 요즘엔 3개든 4개든 개별로 취급한다는 얘기다.

가령 한 운용사가 미국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500을 기초지수로 정방향 1배로 추종하는 ETF와 2배인 레버리지 ETF, 역방향인 인버스 ETF를 동시에 상장하겠다고 하면, 과거엔 한국거래소가 이들 ETF를 시리즈라며 1개로 취급했는데 이제는 3개로 여긴다는 것이다.

한 달에 4개고, 5개고 출시할 능력이 있는 운용사를 한국거래소가 눌러놓고 있는 실정이다. 이 탓에 전체 ETF 시장에서 삼성자산운용과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점유율은 연초 77.23%에서 연말 74.49%로 밀렸다.

과점 체제를 해소하기 위해 거래당국이 직접적으로 나서는 게 맞냐는 비판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학계 관계자는 “ETF 시장에선 브랜드(운용사)도 중요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게 상품의 경쟁력”이라며 “상장 개수의 제한이 (과점을 막는데) 효과적인지 의문”이라고 했다.

이에 한국거래소는 운용사별로 상장 개수에 제한이 있는 것은 아니라며 상장의 적격성을 심사하는 내부 인력을 고려해 심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은 5명이다.

2022년 ETF의 상장을 전담하는 팀이 꾸려져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지만, 당시보다도 시장이 2배 이상 커져 자산운용업계에선 볼멘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국거래소 측은 “내부에서 (상장 심사 과정을) 처리할 수 있는 한도가 있다”며 “여기에 맞춰 적정하게 (운용사별로) 배분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