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경영권을 놓고 최윤범 회장 측과 경쟁 중인 MBK파트너스와 영풍이 집중투표제 방식으로 이사를 선임하는 최 회장 측 의안을 금지해 달라며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냈다(☞MBK-영풍, 최윤범에 주총 의안상정금지 가처분 신청 검토 중). 집중투표제를 도입하는 의안 자체엔 문제가 없으나, 이 의안이 가결된다는 전제하에 상정한 이사 선임안은 위법의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MBK-영풍은 다음달 23일 열리는 임시 주주총회에서 집중투표제 방식으로 이사를 선임하는 제2·3호 의안의 상정을 금지하는 가처분 신청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제기했다고 30일 밝혔다.
앞서 고려아연은 지난 23일 임시주총 의안을 확정짓고 주총소집결의를 정정 공시했다. 최 회장 측 계열사인 유미개발은 집중투표제 도입을 위한 정관 변경안을 제1-1호 의안으로 상정했다. 고려아연은 현재 다른 대부분의 기업처럼 정관에 의해 집중투표제를 배제하고 있는데, 이를 변경해 집중투표제가 가능하도록 만들겠다는 것이다. 집중투표제는 이사를 선임할 때 주식 1주에 대해 선임하고자 하는 이사의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하는 투표 방식이다. 다수의 이사 후보가 있을 경우 주어진 의결권을 한명 또는 여러 명의 후보에게 집중 또는 분배해 투표할 수 있다. 단순투표 방식으로 이사를 선임할 경우 과반의 주식을 소유한 대주주의 의사에 따라 모든 이사가 선임되지만, 집중투표 방식을 이용하면 소수주주도 의결권을 집중해 이들이 추천한 이사를 선임함으로써 모든 이사가 대주주의 뜻대로 선임되는 걸 막을 수 있다.
MBK-영풍이 문제 삼는 의안은 1-1호 의안 통과를 전제로 한 이사 선임안이다. MBK파트너스 관계자는 “최 회장 측은 집중투표제 도입을 조건으로 해당 임시주총에서 바로 연이어 집중투표 방식으로 이사진을 선임하려 한다”며 “이에 대해 자본시장은 물론 법조계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임시주총까지 얼마 남지 않은 관계로, 집중투표제 방식의 이사 선임안을 상정하지 못하게 하는 가처분을 신청했다”고 덧붙였다.
MBK-영풍은 최 회장 측이 집중투표 방식의 이사 선임안을 올린 것이 상법을 위배했다고 주장한다. 상법 제382조의2 제1항과 제542조의7 제2항에는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회사에 대하여 집중투표의 방법으로 이사를 선임할 것을 청구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MBK파트너스 관계자는 “최 회장 측 집중투표 청구는 주주가 집중투표를 청구할 시점에 ‘정관에 집중투표제를 배제하는 규정이 없을 것’을 명시적으로 요구하는 상법의 문언에 정면으로 반한다”고 말했다. 즉, 유미개발이 집중투표 방식의 이사 선임을 청구한 지난 10일 기준으로 고려아연 정관이 집중투표제를 허용하고 있었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아 위법하다는 얘기다.
MBK파트너스 측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사이트에 10년 간 올라온 집중투표제 관련 주총 공시 자료를 검토한 결과, 집중투표제를 도입하는 정관 변경의 건을 목적으로 하는 주총에서 그 정관 변경을 전제로 이사선임안을 상정한 사례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MBK파트너스는 집중투표 방식의 이사 선임안 상정이 MBK-영풍의 임시주총 소집 청구권을 침해한다고도 주장했다. MBK-영풍은 이번에 단순투표 방식의 이사 선임안을 상정했으나, 최 회장 측이 집중투표를 전제로 한 이사 선임안을 올리는 바람에 원래 의도했던 주총의 목적과 의의가 변질됐다는 것이다. 이는 최대주주로서 MBK-영풍이 가진 소집 청구권을 침해하는 행위라는 게 골자다.
집중투표 방식의 이사 선임안이 주주평등의 원칙을 위배한다는 것도 MBK-영풍의 가처분 신청 사유다. MBK파트너스 관계자는 “만약 집중투표제 도입 안건이 올라온다는 사실을 일반 소수주주들이 알았다면, 이들도 원하는 후보를 이사회에 입성시키려는 시도를 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최 회장 측이 임시주총 주주제안 마감 직전 기습적으로 집중투표제 관련 주주제안을 했으며, 이 같은 정보를 일반 주주들은 접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이번 임시주총에서 집중투표가 도입된다면, 유미개발과 최 회장 측에서만 집중투표 청구로 인한 과실을 독점할 수 있다”면서 “집중투표제가 도입될 것을 몰랐던 MBK-영풍과 다른 주주들은 모두 집중투표제에 따른 이사후보 추천권과 의결권을 행사할기회를 박탈당한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