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챗GPT 달리3

활력을 잃은 경기가 채용시장에 한파를 불어넣고 있습니다. 여의도 증권가도 예외는 아닙니다. 대규모 신입사원 공개채용을 하던 풍경은 옛날이야기가 됐습니다. 지금은 소수 경력·인턴 채용 등을 통해 필요한 인력을 부서 단위로 충원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9월 12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에서 열린 한국투자증권 채용설명회에서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회장이 강연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투자증권 제공

2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내 10대 증권사(미래에셋증권·한국투자증권·NH투자증권·삼성증권·KB증권·하나증권·메리츠증권·신한투자증권·키움증권·대신증권) 가운데 올해 신입사원 공채를 진행한 곳은 단 6곳입니다.

상반기 NH투자증권과 KB증권이 공채 신입사원을 뽑았고, 하반기에는 한국투자증권·삼성증권·신한투자증권·키움증권이 공채를 했거나 현재 전형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반면 대신증권은 작년부터 2년째 공채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증권은 올해 10월 특성화고 특별채용만 했습니다. 미래에셋증권은 해외대 출신 공채만 했고, 별도로 기업금융(IB) 분야 신입직원을 뽑았습니다. 메리츠증권의 경우 현재 인력이 필요한 부서나 팀에 한해서만 신입·경력직 채용을 하고 있습니다.

범위를 중소형 증권사로 확장하면 공채에 나서지 않은 곳은 더 많아집니다. 교보증권과 한화투자증권은 지난해 하반기 IB, 법인영업 등 본사영업과 본사지원 분야에 대해 신입사원 공채를 실시했지만, 올해는 채용문을 열지 않았습니다. 교보증권은 현재 정보기술(IT) 부문에 대해서만 채용연계형 인턴 절차를 진행 중입니다. 교보증권은 여의도에서 가장 늦게까지 공채 문화가 남아 있던 곳인데요. 이제는 이런 이야기도 옛날 얘기가 됐습니다.

증권사들은 교육 비용을 아끼고 필요한 부서에 곧장 인력을 투입할 수 있는 경력·계약직 수시 채용을 선호합니다. 특히 경기 전망이 좋지 않고 영업지점도 줄이는 추세이기 때문입니다.

한 대형 증권사 관계자는 “한꺼번에 여러 인력을 채용해서 이들을 동시다발적으로 교육하는 건 기업 입장에서 굉장한 비용을 투자하는 것”이라며 “증권사를 비롯한 다수 기업이 공채를 줄이는 건 수지타산이 맞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증권사 이직 문화가 활발해진 영향도 있습니다. 공채를 실시하는 증권사를 포함해 대부분 증권사가 경력직을 수시 채용하는 방식으로 인재를 영입하고 있는데요. 공채로 채용됐을 때 부서 배치 등에서 우대해 주던 과거 문화가 사라지고 있고, 더 나은 조건의 회사로 이직하려는 직원이 늘어나면서 공채 필요성이 많이 줄었다는 겁니다.

10여년 전 공채로 입사했다는 중소형 증권사 관계자는 “2~3년 배운 뒤 더 많은 연봉을 주는 곳으로 이동하는 젊은 직원이 많다”면서 “조금 더 나은 대우나 인센티브를 주는 곳으로 망설임 없이 넘어가는 모습을 보면 아쉽기도 하다”고 했습니다.

여전히 대규모 공개채용 문화를 유지하고 있는 증권사도 있습니다. 바로 한국투자증권입니다. 채용 인원은 해마다 다르지만, 여의도에서는 매년 100명 안팎으로 가장 많은 신입사원을 영입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국투자증권의 경우 지주 차원에서 신입 공채를 중요시한다고 전해집니다.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회장이 2003년부터 매년 대학교 채용설명회에 직접 참석하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김 회장은 코로나19 팬데믹 당시에도 2년간 비대면으로 직접 채용설명회를 주도했습니다.

김 회장은 올해 9월 고려대에서 열린 채용설명회에 참석해 “한국 사회에서 고령화가 진행 중인 만큼 사람이 돈을 버는 제조업보다 돈이 돈을 버는 증권업의 중요성이 더욱 커질 것”이라며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도전하며 꿈을 키워나갈 사람을 찾는다”고 했습니다.

한국금융지주처럼 신규 채용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증권사가 등장하지 않는 이상, 대학생들을 위한 채용문이 과거처럼 넓어지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올해 증권사에 신입직원으로 입사한 김모(27)씨는 “요즘은 공채하는 증권사도 20명 내외로 뽑는 게 대부분”이라며 “증권업계 입성을 꿈꾸는 주변 학생들이 높아진 취업 문턱에 답답함을 호소하는 걸 자주 본다”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