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증시 종가가 표시되고 있다. 이날 코스피 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22.15포인트(0.90%) 하락한 2441.85를, 코스닥 지수는 6.21포인트(0.92%) 하락한 670.94로 장을 마쳤다. /뉴스1

비상계엄 선포·해제 사태로 4~5일 국내 주식시장의 밸류업(기업 가치 제고) 대표 종목인 은행주, 항공주, 수출주 등이 큰 폭으로 하락했다. 윤석열 정부가 올 초부터 추진하던 밸류업 정책의 동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전망에 더해서, 정치적 불확실성도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트럼프 정책 리스크, 경기 침체 우려까지 겹치고 있다.

개별 종목뿐 아니라 지난 9월 발표한 밸류업 지수, 그리고 이 지수를 바탕으로 지난달 상장한 밸류업 관련 상장지수펀드(ETF)들도 줄줄이 하락세다.

전문가들은 “밸류업 추진 동력 자체가 이번 정치적 혼란으로 사라지는 것 아니냐”고 깊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그래픽=김하경

◇밸류업 정책 수혜 금융주 폭락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5일 KB금융은 10.06%, 신한지주는 5.50%, 우리금융지주는 3.77%, 하나금융지주는 3.25% 하락하며 장을 마쳤다. 계엄 사태 직후부터 따지면 KB금융은 15.22%, 신한지주가 11.7% 하락했다. 올해 국내 증시가 어려운 가운데도 주주환원 여력이 높다는 이유로 밸류업 정책을 동력으로 업종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상승세를 보였던 금융주가 줄줄이 하락한 것이다.

김도하 한화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금융주의 연이은 주가 급락은 비상계엄 이후 정치적 불확실성이 확대된 것과 밸류업 정책 이행에 대한 불안감에 기인한 것으로 해석한다”며 “전향적인 자본정책의 이행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주가 하락의 원인”이라고 했다.

밸류업 대장주였던 현대차, 기아도 이날 각각 2.15%, 4.18% 하락했다. 트럼프 당선으로 관세 우려가 커진 가운데 비상계엄 사태까지 겹쳤다.

달러당 1410원대 고환율로 항공주도 좋지 않다. 이날 한진칼 주가는 6.63%, 아시아나는 2.01%, 대한항공은 0.81% 하락했다. 안도현 하나증권 연구원은 “당분간 1400원대 고환율이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며 “고환율은 아웃바운드(한국인의 해외여행) 여행 수요를 위축시킨다”고 했다. 안 연구원은 “달러 가치 절상은 항공사 비용 증가를 야기한다”며 “항공사 영업비용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유류비가 달러화에 연동되는 가운데 항공기 리스료·정비비 등 전반적인 비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래픽=김하경

◇밸류업 ETF도 마이너스...골드만삭스 “불확실성, 이어질 듯”

밸류업 대표 종목들이 타격을 받다 보니, 지난 9월 30일 992.13으로 시작한 밸류업 지수도 5일 971.51로 마감해 이 기간 2.08% 하락했다.

지난달 4일 일제히 상장한 밸류업 상장지수펀드(ETF)도 수익이 나지 않는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국내 증시에 상장한 12개 밸류업 ETF는 5일 일제히 하락했다.

트러스톤자산운용의 ‘TRUSTON 코리아밸류업액티브’와 타임폴리오자산운용의 ‘TIMEFOLIO 코리아밸류업액티브’의 경우는 이날 하루에만 각각 1.90%, 1.05% 하락했다. 12개 밸류업 ETF는 이날 기준으로 수익률 모두 마이너스(-)를 기록 중이다.

특히 올해 초 밸류업에 대한 기대감으로 국내 증시로 진입했던 외국인들이 밸류업 정책에 대한 실망감으로 썰물처럼 빠져 나간 것이 영향을 줬다.

5일 유안타증권에 따르면, 외국인 투자자들은 작년 11월부터 올해 7월까지 31조8000억원어치의 국내 주식을 순매수(매수가 매도보다 많은 것)했고, 올해 8월부터 10월까지 14조3000억원을 순매도했다. 최근 3개월 동안 이전 9개월간 순매수 규모의 약 45%를 순매도한 것이다. 이날도 외국인 투자자들은 약 3400억원 순매도했다. 반도체 경기에 대한 우려에 더해 비상계엄 사태에 이은 탄핵 정국 등 정치적 불확실성이 커지는 데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김대준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정치, 경제적 불확실성이 중장기적으로 흐르면 국가신용등급에 불리한 영향을 미치기에 코스피가 약세 압력에 노출될 수 있다”며 “한국주식을 보는 해외 투자자의 시각도 변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골드만삭스는 “한국의 잠재적인 실적 하방 리스크와 정책 불확실성을 고려할 때 당분간 변동성 높은 거래 환경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한다”며 “잠재적 탄핵 표결까지 높은 수준의 변동성이 계속될 가능성이 있으며, 국내 정책 불확실성 등이 시장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그래픽=김하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