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이 공모주 수퍼 시즌이라길래 치킨 한 마리 사 먹으려고 참여했는데 오히려 돈만 뜯겼어요.”(40대 회사원 김모씨)
온 국민 용돈 벌이 수단으로 인기를 끌던 공모주 시장에 찬바람이 불면서 투자자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1분기(1~3월)만 해도 143%에 달했던 공모주 투자 수익률은 10월 기준 8.6%로 추락했다.
급기야 상장하자마자 하한가 목전까지 추락하는 새내기주까지 등장했다. 지난 1일 증시에 입성한 초등학교 방과 후 교구 업체 ‘에이럭스’는 공모가(1만6000원) 대비 -38.3% 하락한 9880원에 마감했다. 한국 공모주 역사상 상장 첫날 역대 최대 낙폭 기록이다.
공모주 전문가인 A운용사 대표는 “본업과 연관성이 낮은 유명 기업들을 비교 대상에 넣어 공모가가 부풀려지는 데다, 기업 성장성을 믿고 장기 보유하겠다는 주주 확약 비율도 낮다 보니 상장일에 ‘팔자’ 매물이 쏟아진다”면서 “거품 붕괴 조짐이 생길 땐 공모주 청약은 물론, 상장주 매매도 손실을 볼 수 있으니 신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가격 제한 폭 확대 후 ‘치킨투자단’ 등장
공모주 투자는 지난해 6월 상장 첫날 가격 제한 폭이 ‘따상(시초가가 공모가의 200%로 결정된 후 가격 제한 폭인 30%까지 올라 상한가 마감)’까지 가능했던 데서 공모가의 400%로 확대되면서 ‘국민 재테크’로 떠올랐다. 작년 말 상장 당일 400% 상승을 기록한 ‘따따블(공모가의 4배 상승)’ 종목이 등장하면서 공모주 열풍에 불이 붙었다. 조(兆) 단위 청약 금액이 몰리는 종목이 속출했다. 소액으로 참여 가능한 ‘균등배분제(청약증거금에 상관 없이 같은 수량을 나눠주는 방식)’ 혜택을 보려고 가족 계좌들까지 동원해서 “치킨 한 마리, 3만원만 벌겠다”는 ‘치킨 투자단’이 늘어났다. 개미들이 모든 공모주에 빠짐없이 참여할 수 있게 일정과 정보를 제공하고, 자동 투자 서비스까지 해주는 IT 플랫폼도 출시됐다.
개미 투자단이 공모주 시장에 몰리자, 돈 냄새 잘 맡는 증권사들이 놓칠 리 없다. 지난달 공모주 청약 건수는 17곳(스팩 제외)을 기록해 월별로 따져 연중 최고치를 찍었다.
◇가을 상장사 83%가 공모가 ‘상초’
하지만 10월을 ‘공모주 수퍼먼스’라며 고수익을 기대했던 투자자들은 예상치 못한 공모주 부진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새내기 종목들이 모조리 마이너스 행진 중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공모가가 회사 가치 대비 크게 부풀려지면서 시장에 왜곡이 생겼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10월 이후 신규 상장사 12곳 중 10곳의 공모가가 희망 공모가 최상단을 초과해 책정됐다. 업계에선 ‘상초(상단 초과)’ 기업이라고 부르는데, 작년 15% 수준이었던 상초 기업 비율은 올해 80%까지 늘었다.
투자자문사 대표 K씨는 “공모주가 돈이 된다는 소문이 나면서 새로 뛰어든 기관 투자자들이 현재 800곳이 넘는다”면서 “경쟁이 너무 치열해져서 물량을 더 확보하려면 수요 예측 단계에서 높은 가격을 써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기관만 배 불리는 뻥튀기 공모가
상장사들이 내세우는 희망 공모가 자체도 거품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증권사들은 동종 업계 상장사들의 주가와 비교해 희망 공모가 범위를 정한다. 이때 미래 추정 실적을 과도하게 낙관하거나, 고평가된 해외 유수 기업들의 주가와 비교하는 식으로 공모가를 상향 조정한다는 것이다.
가령 적자 기업인 ‘씨메스’는 시가총액 150조원인 일본 공장 자동화 설비업체인 키엔스와 세계 1위 산업 로봇 업체인 일본 화낙(시가총액 36조원)을 비교 기업으로 골랐다. 11월 상장 예정인 디지털 테마파크 업체 ‘닷밀’은 비교 기업에 헬로키티로 유명한 일본 산리오(시가총액 9조3000억원)를 넣었다. 증권사가 가져가는 기업공개(IPO) 보수는 공모가에 비례하기 때문에 공모가가 높아질수록 이득이다.
◇실적 부풀려 상장하면 美선 소송감
단타 목적으로 공모주 물량을 받은 기관 투자자들은 장기 보유 약속을 거의 하지 않고, 상장 당일에 가격이 높을 때 수익을 내고 유유히 빠져 나온다. 하지만 이런 배경을 전혀 모른 채 덜컥 매수한 개인들은 손실을 떠안은 채 장기 보유하게 되기 일쑤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지난 6월 미국 증시에 상장한 네이버웹툰은 주가가 4개월 만에 공모가 대비 반 토막 나면서 투자자들이 손해를 입자 집단소송 위기에 처해 있다”면서 “미국은 상장시 제출한 가이던스(예상 실적)를 의도적으로 부풀리거나 부정적 사실을 고의로 알리지 않으면 전문 로펌들이 주주들과 연대해 손해배상청구 소송에 들어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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