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겨울이 곧 닥친다(Winter Looms)’ 보고서를 통해 SK하이닉스 목표 주가를 26만원에서 12만원으로 대폭 낮췄던 모건스탠리의 숀 킴 애널리스트가 한 달여 만에 전망 실패를 인정하고 목표 주가를 상향 조정했다. 비관적인 전망과는 반대로 하이닉스가 3분기(7~9월)에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린 데다 주가도 보고서 발표 이전보다 더 오르자 입장을 바꾼 것이다. 이 과정에서 국내 증권사들은 모건스탠리가 목표 주가를 올리면 따라 올리고, 내리면 따라 내리는 모습을 보여 “외국계 증권사에 휘둘린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자신만의 기준 없이 외국계 증권사 따라 의견이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바보들의 행진 같다’”는 비판도 나온다.

그래픽=김하경

◇모건스탠리 “단기적으로 우리가 틀렸다”

숀 킴은 24일 ‘3분기 실적, 컨센서스를 뒷받침하는 가이던스’ 보고서에서 “단기적으로 봤을 때 우리의 전망이 틀렸다”며 목표 주가를 12만원에서 13만원으로 올렸다. 그는 “하이닉스가 AI(인공지능) 메모리 분야에서 선방하고 있다. 이는 실적 전망에 좋은 징조”라며 “올해 영업이익은 D램과 HBM(고대역폭 메모리)의 매출 증가에 힘입어 강세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하지만 장기적인 전망은 여전히 부정적인 입장을 유지했다. 그는 “HBM 수요는 여전히 강세를 보이겠지만, 2025년 이후에는 성장률이 둔화될 가능성이 크다”며 “HBM 수익 성장에도 불구하고 전체 메모리 시장의 불확실성 때문에 목표 주가를 많이 올리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이어 “전통적인 메모리 시장(D램 및 낸드)의 가격 하락 압력에 따라 (앞으로) 목표 주가가 하향 조정될 수 있다”고도 했다.

모건스탠리가 입장을 바꾼 것은 하이닉스 주가가 보고서 전망과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기 때문이다. 숀 킴은 지난달 15일 보고서에서 하이닉스 투자 의견을 비율 확대(overweight)에서 비율 축소(underweight)로 두 단계 하향 조정하고 목표 주가를 확 낮췄다. 보고서 발표 직전 16만2800원이던 주가는 보고서 발표 이후 15만2800원까지 떨어졌지만 이후 오름세를 지속해 25일에는 20만1000원에 마감했다. 보고서 발표 전에 비해 주가가 23.5% 오른 것이다. 외국인 투자자들도 보고서 발표 후 며칠을 제외하고는 하이닉스 주식을 사들였다.

◇부실한 분석에 휘둘린 국내 증권사들

모건스탠리 전망이 빗나가자 반도체 업계와 여의도 증권가에서는 “모건스탠리가 제대로 된 분석을 하지 않은 채 시장에 존재감을 과시하기 위해 무리한 것 아니냐”는 의견이 제기됐다. 한 펀드매니저는 “하이닉스를 비판하려면 엔비디아도 함께 비판해야지, 엔비디아는 극찬하면서 하이닉스만 비판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했다. 모건스탠리는 엔비디아에 대해서는 ‘최상위 추천’을 유지 중이다. 하이닉스는 엔비디아에 HBM을 공급하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외국(홍콩)에 근무하는 외국계 애널리스트가 국내 반도체 업체의 상황에 대해 정확하게 알기 어렵다”고 했다. 애널리스트들은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최고경영자(CEO)부터 IR(투자설명) 담당 직원까지 수시로 만난다. 그러나 한국과 홍콩의 물리적인 거리 때문에 이런 스킨십이 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심을 잡아줘야 할 국내 증권사들은 오히려 모건스탠리에 휘둘렸다. 지난달 부정적인 보고서가 나온 후 국내 증권사들은 목표 주가를 줄줄이 하향 조정했다. 그러다가 하이닉스가 3분기 ‘어닝 서프라이즈(깜짝 실적)’를 기록하고 모건스탠리가 상향 보고서를 발행하자 국내 증권사들은 다시 목표 주가를 상향 조정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 “AI 발전에 가장 중요한 지역이 한국”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24일 “AI 산업 발전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이 한국”이라고 보도했다. 전 세계 AI 반도체를 독점 생산하고 있는 곳은 엔비디아지만, 핵심 부품인 HBM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기업은 한국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엔비디아의 새로운 AI 칩인 블랙웰은 올해 4분기 출시될 예정인데, 블랙웰에는 HBM3E 12단 제품이 대거 탑재된다. 시장조사 업체 트렌드포스는 “블랙웰 생산으로 5세대 HBM3E가 주도권을 잡아 HBM 평균 가격도 18% 상승할 것”이라며 “이는 수익성을 156% 증가시키는 수준”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