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지방자치단체의 ‘금고지기’를 노리며 누가 더 출연금을 많이 낼지를 두고 시중은행과 지방은행 간 ‘쩐의 전쟁’이 치열하다. 올해 7월 기준 지자체 금고 은행으로 선정된 은행들이 지자체에 협력사업비 명목의 출연금을 낸 자금이 6500억원에 달한다.

지자체 금고지기 은행은 지자체가 받는 정부 교부금, 지방세 세입 등을 예치받고 세출, 교부금 등 출납 업무를 한다. 금고 은행이 되면 지자체 예산 등을 예금으로 받을 수 있고 공무원을 신규 고객으로 유치하기 쉽다. 경쟁이 치열해지자 지자체에 막대한 출연금을 내고 그 자리를 따려는 것이다.

그래픽=이진영

최근엔 지역 시(市)금고까지 경쟁이 치열해졌다. 과거 시금고는 그 지역 지방은행이 맡는 게 관례였지만 시중은행들도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다만 최근의 ‘금고지기 경쟁’에선 지방은행들이 가까스로 시중은행들을 제치고 금고지기 자리를 지켰다. 부산은행은 부산시, 광주은행은 광주시 금고지기 자리를 지킨 것이다. 그러나 막대한 ‘출연금의 힘’을 앞세운 시중은행의 쇄도를 언제까지 지방은행이 버텨낼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막대한 출연금 전쟁

21일 국민의힘 강민국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국내 은행 지방자치단체 금고은행 선정 현황’에 따르면, 7월 말 기준 지자체 금고 은행으로 선정된 은행은 12곳이고, 이들이 지자체에 출연한 금액은 6487억원으로 집계됐다. 지자체는 2~4년 주기로 금고 은행을 선정하는데, 이때 출연금이 많을수록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따낼 수 있다.

특히 전체 은행 출연금 중 90.2%가 전국을 대상으로 하는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시중은행, 그리고 iM뱅크(옛 대구은행)와 농협에 집중됐다. 서울시 금고 은행인 신한은행이 2345억원(36.2%)으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농협(1965억원), 우리은행(606억원), KB국민은행(592억원), 부산은행(303억원) 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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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의 지자체 출연금 경쟁이 치열해지자 정부는 2019년 고객 돈을 출연금으로 과다하게 내는 데 브레이크를 걸기도 했다. 하지만 은행들의 과열 경쟁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기초 지자체 금고 절반, 시중은행이 운영

이미 출연금 ‘쩐의 전쟁’에서 시중은행이 지방은행들을 제친 모습이다. 부산, 광주, 전북, 전남, 경남, 제주 등 6개 지역 지자체 금고의 절반 이상은 시중은행이 운영하고 있다. 21일 국민의힘 이헌승 의원실이 행정안전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 1일 기준 부산 등 6개 지역 기초단체 주·부금고 155개 중 51.6%인 80개를 시중은행이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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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은행들은 전국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시중은행이 막대한 자본력을 앞세워 지역 금융까지 침범한다고 볼멘소리다. 하지만 일각에선 지방은행의 지역 기여도가 낮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지자체는 은행 출연금을 각종 지역 사업에 사용할 수 있어 지자체도 지역 연고보다 실리를 따진다는 얘기다.

◇지방은행들, 시중은행과 연합도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지방은행들은 시중은행이나 핀테크 기업 등 가리지 않고 손을 잡고 있다. 당장 금고지기 자리를 다시 탈환하지 못하더라도 디지털 노하우 등을 전수받아 지역에서 경쟁력을 더 높이겠다는 것이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은행은 A지방은행과 함께 ‘같이성장’을 위한 업무 협약을 추진하기로 했다. A은행이 신한은행의 디지털 노하우를 끌어다 쓸 수 있게 하고, 두 은행이 지역 신용보증재단 공동 출연을 통해 소상공인 지원, 취업 박람회 등 사업을 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지방 인구 감소와 내수 금융시장 축소로 인한 은행 간 불필요한 과당경쟁을 지양하고자 추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광주은행은 토스뱅크와 함께 은행권 최초로 공동 대출 상품을 출시하기도 했다. 한편 전북은행은 카카오뱅크와 함께 금융위원회에 공동 대출 혁신 금융 서비스 지정 신청을 준비하고 있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시중은행이 지역 기업들에 구석구석 대출해 주는 지방은행의 역할을 과연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금융 생태계 다양성을 위해서라도 지방은행 영역은 지켜줘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