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백형선

퇴직 후 자영업을 시작한 황모(47)씨는 최근 실물 경기를 온몸으로 체감 중이다. 물가가 올라 각종 비용은 늘어나는데, 소비는 줄어 매출이 살아날 조짐이 보이지 않아서다. 노후 자금도 걱정이다. 은퇴 자산을 준비하기 위해 주로 채권형과 주식형 ETF(상장지수펀드)에 투자하고 있지만 기대만큼 수익률이 나오지 않아 답답하다. 이런 상황에서 황씨는 더 높은 수익률을 낼 수 있다는 사모펀드를 한 금융회사에서 추천받았다. 그러나 사모펀드는 부자들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이 있고, 잘 알지 못하는 내용이라 불안하다.

◇사모펀드가 공모펀드보다 많아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2024년 9월 말 기준 우리나라 펀드의 순자산 총액은 1091조원이다. 공개적으로 운영하는 ‘공모펀드’의 순자산이 432조원으로 40%를 차지하고, 사적으로 모집된 ‘사모펀드’가 659조원으로 60%에 달한다. 공모펀드는 불특정 다수의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자금을 모으고, 그 자금을 전문가(펀드 매니저)가 운영하는 펀드다. 소액 투자가 가능하고 분산 투자가 이뤄진다. 또, 투자자 보호를 위해 집중 투자를 금지하고 공시 의무 등의 운용 규제가 적용된다.

반면 사모펀드는 소수의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비공개적으로 자금을 모집한다. 일반적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비상장 기업, 부동산, 원자재, 선물옵션 등에 투자하고, 기업을 인수해 경영에 참여하기도 한다. 투자 대상이 자유롭다는 게 특징이며, 고위험 고수익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

2007년까지만 해도 공모펀드가 전체의 70%쯤 차지했고, 사모펀드는 30%에 불과했다. 이후 사모펀드 비중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면서 2016년부터는 사모펀드가 공모펀드를 앞질렀고, 국내 펀드 시장의 주류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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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투자 확대로 성장

사모펀드가 급속한 성장을 한 이유로는 기관 투자가들의 대체 투자 확대와 금융권 PB(프라이빗뱅커)센터를 중심으로 한 자산가들의 투자 자금 유입이 꼽힌다. 국민연금은 올해 6월 말 기준 1147조원을 운용 중인데, 기금 포트폴리오는 기관 투자가와 자산가 포트폴리오의 벤치마크로 주목받는다. 국민연금의 투자처는 자산별로는 주식 47.1%, 채권 36.5%, 대체 자산 투자 16.2%, 기타 0.2% 등이다. 특히 이 중 대체 자산 투자 비율은 2020년 10.9%에서 꾸준히 상승 중이다. 6월 기준 대체 자산 중 사모펀드가 42.7%를 차지하는 점을 감안하면, 국민연금 전체 자산 중 사모펀드 비율이 6.8%에 달하는 셈이다. 사모펀드가 속한 대체 자산의 수익률이 상위권을 차지하면서 투자 비중도 자연스럽게 증가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모펀드는 2004년 말 국내 자본시장에 처음으로 도입됐다. 이전에는 운용 목적에 따라 전문투자형과 경영참여형 사모펀드로 분류했으나, 2021년 10월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투자자에 따라 일반 사모펀드와 기관전용 사모펀드로 구분된다.

◇부자들의 전유물?

사모펀드는 일반인들의 접근이 쉽지 않은 데다, 최소 투자 금액이 높아 부자들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영국의 금융정보 업체 캠든웰스가 발표한 사모펀드 투자리포트(2023년)에 따르면, 초고액 자산가들의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사모펀드가 차지하는 비율은 20%로 나타나 주식(26%), 실물자산(22%) 등과 비슷했다.

일반 투자자들이 사모펀드에 투자하려면 최소 투자 금액이 3억원 이상이어야 한다. 그러나 개인 전문 투자자는 최소 투자 금액 제한이 없다. 일정 요건을 갖추고 금융투자회사에 심사를 의뢰하면, 심사 후 개인이 전문 투자자 자격을 부여받을 수 있다. 효력은 지정일로부터 2년이다.

개인 전문 투자자가 되기 위해서 꼭 갖춰야 하는 조건은 최근 5년 중 1년 이상 금융 투자 상품 잔고를 유지하고 월말 평균 잔고가 5000만원 이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 투자 상품은 국내 회사채, 기업어음, 국내외 주식, 파생결합증권(ELS, DLS, ETF 등), 국내외 펀드, 금 적립계좌 등을 가리킨다. 예수금, 퇴직연금, 연금저축, IRP(개인형퇴직연금) 등은 인정되지 않는다. 이 외에도 소득(본인 연소득 1억원 이상, 혹은 부부합산 1억5000만원), 전문가(해당 분야 1년 이상 종사자), 자산(부부합산 순자산 가액 5억원) 등 세 가지 선택 조건 중 한 가지가 충족돼야 한다.

일반 투자자들이 소액으로 사모펀드에 투자하는 방안도 존재한다. 사모펀드에 투자하는 재간접 펀드에 투자하는 것이다. 펀드 자산의 50% 이상을 사모펀드에 투자하는 재간접 펀드를 통해 소액으로 사모펀드에 간접 투자할 수 있다.

◇투자 위험 꼼꼼히 따져 봐야

사모펀드는 고위험 고수익 상품으로 여겨진다. 다만 사모펀드라고 해서 무조건 높은 투자 수익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 투자에 따른 위험을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 사모펀드는 특정 자산에 집중 투자할 수 있는 만큼 해당 자산의 가격 변동에 따라 상당한 손실을 입을 수도 있다. 펀드의 주된 투자 대상과 투자 전략이 무엇인지 집합 투자 규약 등을 통해 꼼꼼히 확인해 보고, 그 내용을 이해한 후 투자를 결정해야 한다.

또 사모펀드는 유동성이 낮은 자산에 투자하는 경우 환매가 불가능하거나, 일정 주기로만 환매가 이뤄지는 등 환매에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다. 가입 후 일정 기간 이내에 환매할 경우 높은 환매 수수료를 부담하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유의해야 한다. 이 외에도 사모펀드는 공모펀드와 달리 보수가 정형화되어 있지 않아 성과 보수를 포함한 다양한 방식의 보수를 부담하게 될 수도 있다. 이에 따라 실제 실현 이익은 기대에 미치지 못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보수 구조를 미리 살펴봐야 한다. 자산운용회사와 판매회사가 제도권 금융회사인지는 ‘금융소비자 정보포털’의 ‘제도권 금융회사 조회’ 메뉴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