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김의균

외국계 투자은행인 모건스탠리가 SK하이닉스의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선행 매매했다는 의혹에 대해 금융감독원이 조사에 들어갔다. 앞서 지난 20일에는 한국거래소가 선행 매매 의혹에 대해 계좌 분석에 착수했다.

모건스탠리는 추석 연휴 이틀째인 지난 15일 ‘겨울이 곧 닥친다(winter looms)’는 보고서에서 하이닉스 목표주가를 26만원에서 12만원으로 낮추고 투자 의견을 ‘비중 확대’에서 ‘축소’로 변경했다. 보고서 발간 뒤 첫 거래일인 19일 하이닉스 주가는 6.1% 급락했다. 그런데 보고서 발간 이틀 전인 13일 모건스탠리 서울지점 창구를 통해 하이닉스 주식 101만1719주의 매도 주문이 체결돼 선행매매 의혹이 제기됐다. 이날 하이닉스 매도 물량의 20%가 모건스탠리 한 곳을 통해 거래됐을 정도로 흔치 않은 대량 매도가 이뤄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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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 ‘모건스탠리 수상한 거래’ 조사

2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감원은 모건스탠리의 자본시장법 위반 여부를 점검하기로 했다. 자본시장법은 증권사가 특정 종목의 조사분석자료(보고서)를 발표할 경우 그 내용이 사실상 확정된 때부터 공표 후 24시간이 경과하기 전까지 해당 정보를 이용한 투자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증권사 창구에서 단순하게 고객의 주문을 받아서 거래가 이뤄진 것은 불법이 아니지만, 고객에게 보고서 정보를 미리 알려줬다면 문제가 된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증권사들은 보통 큰손 고객들을 상대로 영업을 할 때 애널리스트들을 통해 투자 아이디어를 주고 그 대가로 주문을 받는다”며 “이례적으로 대규모 주문이 발생했다는 건 고객들에게 미공개 정보를 흘려주고, 자신들의 창구로 주문을 받았기 때문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금융 당국이 실제 위반 여부를 입증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모건스탠리 서울창구를 통해 주문을 하는 고객은 대부분 외국인 투자자들이고, 그들이 정보를 주고받았더라도 그 행위가 미국에서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결국 보고서와 관련된 애널리스트들과 SK하이닉스 주식을 매도한 투자자들의 휴대폰도 들여다보고, 압수수색도 해야 하는데 이건 미국 정부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외국계 증권사에서 매도 보고서가 나온 후 대량 주문이나 공매도가 이루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모건스탠리는 2021년에도 ‘반도체의 겨울이 온다’는 보고서를 내놓으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목표주가를 대폭 내렸고 이후 두 종목은 연일 하락세였다. 모건스탠리는 2017년 셀트리온과 삼성전자에 대한 목표 주가를 하향 조정해 두 종목의 주가가 약세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에도 미공개 정보 이용 의혹이 확인되지는 않았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한국에서 개인투자자들이 공매도를 악마시하는 이유가 이런 미공개 정보 이용 의혹들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대표는 “주가를 원하는 방향으로 만들기 위한 악의적 의도를 가진 외국계 리포트도 일부 있다고 본다”며 “국내 증시가 외국인 수급에 쉽게 흔들리는 허약한 체질이라 주가가 흔들리는 폭이 더 심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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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계는 ‘매도’ 10% 넘는데, 국내는 0%대

외국계 증권사들의 영향력 확대는 매수 의견 일색인 국내 증권사들의 리포트 관행이 자초한 측면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20일까지 국내 증권사 종목 보고서 1만3061건 중 ‘매도’ 의견은 단 3건(0.02%)에 불과했다. ‘매수’ 의견이 1만2149건(93%)으로 대다수를 차지했고, ‘보유’ 의견은 909건(6.96%)이었다.

반면 같은 기간 모건스탠리 서울지점은 매도가 15.2%였고, 골드만삭스 서울지점(16.8%), 메릴린치 서울지점(22.8%), JP모건 서울지점(12.7%), 노무라금융투자(14.3%) 등 외국계 증권사들의 매도 의견은 대부분 10%를 넘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내 증권사는 기업에서 수수료를 받고 수익을 내다 보니 기업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보고서를 내기가 어렵다”며 “외국계 리포트가 항상 맞거나 항상 틀리는 것은 아니지만, 매도 의견이 희소성이 있다 보니 시장의 관심이 더 많이 몰리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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