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주식으로 벌었던 돈, 연기처럼 다 사라졌네요.”(회사원 이모씨) “반도체 전망 좋다고 해서 매수 시작했는데, 제가 사니 급락하네요.”(주부 김모씨)
2일 미국발 리세션(경기 침체) 공포가 아시아 주요 반도체 주식들을 덮쳤다. 전날 미국 반도체 기업들로 구성된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가 7% 넘게 급락한 것이 하락의 도화선이 됐다. 경기 둔화 국면에서 기업들이 인공지능(AI)에 대한 투자를 많이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도 악재로 작용했다.
이날 한국 증시에선 반도체 투톱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하락세가 두드러졌다. 코스피 시가총액 1위인 삼성전자가 전날보다 4% 넘게 빠진 7만9600원에 마감해 한 달여 만에 ‘7만전자’로 되돌아갔다. 삼성전자 시가총액은 하루 만에 20조9000억원 가량 줄었다. 개인이 이날 5000억원 넘게 순매수하며 방어했지만, 외국인과 기관의 강한 매도세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SK하이닉스는 전날 대비 10.4% 내린 17만32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 2011년 8월 18일(-12.24%) 이후 최대 하락률이다. 하루 시가총액 감소분만 14조6300억원에 달한다. 그 동안 주가를 끌어 올렸던 외국인이 ‘팔자’로 돌아서 최근 열흘 동안 2조원 가까이 팔아 치웠다. SK하이닉스는 AI 열풍에 올라타면서 지난 달 주가가 24만원을 돌파하는 등 승승장구했지만, 수요 둔화·주가 고점 등 부정적인 의견이 나오면서 28% 넘게 흘러 내렸다. 이날 반도체 장비 기업인 한미반도체도 9.35% 떨어지는 등 국내 반도체 관련주들이 일제히 하락세를 보였다.
일본과 대만에서도 반도체 관련주에 ‘팔자’가 몰렸다. 반도체 장비 기업인 도쿄일렉트론이 이날 12% 하락했고, 레이저테크와 어드반테스트 역시 8%대 하락세를 보였다. 다이와증권의 호소이슈지(細井秀司)씨는 “미국 경제의 감속 우려에 향후 엔화 강세로 수출 기업들의 가격 경쟁력이 낮아져 실적이 감소할 것이란 불안감이 맞물리면서 패닉 매도 장세가 벌어졌다”고 말했다. 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인 대만의 TSMC도 이날 5.9% 하락하면서 대만 증시를 짓눌렀다.
허재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의 경기 침체 우려는 반도체 등 대미 수출주에 악재로, 하반기 수출 둔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면서 “경기나 기업 실적에 문제가 없다는 점이 확인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