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들의 생산성 증가율이 2010년대 들어 0%대로 크게 떨어졌다는 한국은행의 분석이 나왔다.

26일 한은 경제연구원은 ‘혁신과 경제성장, 우리나라 기업의 혁신 활동 분석 및 평가’ 보고서를 내고 “기업의 생산성 증가율이 2001~2010년 연평균 6.1%에서 2011~2020년 0.5%로 크게 둔화됐다”고 했다. 생산성 증가율이 0%대라는 건 기업의 생산성이 거의 늘어나지 않고 제자리걸음을 했다는 뜻이다.

특히 한은은 미국에 특허를 출원할 정도로 혁신 실적이 우수한 기업을 혁신 기업으로 분류했는데, 이 혁신 기업들의 생산성 증가율도 2001~2010년 연평균 8.2%에서 2011~2020년 1.3%로 크게 줄었다.

한은은 우리나라 기업의 혁신 실적 양은 늘었지만, 질은 개선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한은에 따르면, 한국 기업의 R&D(연구개발) 지출 규모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4.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2위다. 미국 내 특허출원 건수도 세계 4위다. 혁신 활동 지표가 이처럼 양적으로는 개선됐지만, 기업의 생산성을 끌어올리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특히, 기업 규모별로 보면 대기업에서 이런 모습이 두드러졌다. 대기업의 경우 2011~2015년 우리나라 특허의 건당 피인용 건수(출원 후 5년 이내)는 1.4건이다. 미국(5건), 네덜란드(3.7건), 스위스(2.8건) 등과 비교해 낮은 수준이다.

특허 피인용 건수는 특허의 실질적인 영향력을 보여준다. 국내 기업이 미국에 출원한 특허 가운데 대기업이 기여한 비율은 95%에 달하지만, 특허 피인용 건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차이가 크게 없었다는 점도 한은은 짚었다.

혁신을 주도하는 대기업들이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제품 상용화를 위한 응용 연구에 집중하고, 기초 연구 비율을 줄인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기업의 총지출 대비 기초연구 투자 비율은 2001년 7%에서 2010년 14%까지 높아졌다가 2021년 11%로 줄어들었다.

중소기업의 경우 혁신 자금 조달이 쉽지 않은 데다, 잠재력을 갖춘 신생 기업의 진입이 감소하며 생산성이 둔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은 분석에 따르면, 중소기업 중 ‘내부 자금 부족’을 혁신 저해 요인으로 응답한 제조업 기업은 2007년 12.8%에서 2021년 77.6%로 늘었다.

한은은 “기업의 혁신이 생산성 제고로 이어지려면 기초 연구 강화, 벤처캐피털 기능 개선, 창업 도전을 격려하는 환경 조성 등을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