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김하경

미국 물가가 쉽사리 잡히지 않으면서 기준금리 인하 시점이 자꾸 후퇴하고 있지만, 국내 개미들의 미국 장기채 투자 열기는 계속되고 있다. 결국은 금리 인하가 시간문제일 것으로 보고 채권 투자에 뛰어드는 것이다. 금리가 하락하면 반대로 채권 가격은 상승해 이자 수익은 물론 매매 차익까지 거둘 수 있다.

미 장기채에 투자하는 대표 상품인 한국투자신탁운용의 ‘ACE미국30년국채액티브(H)’ ETF(상장지수펀드)는 순자산 9084억원으로 상장 1년 만에 ‘1조원’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매월 분배금을 지급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부각되며 흥행에 성공했다. 올 들어서만 개인들이 1530억원어치를 순매수해 ETF 인기 순위 5위에 올랐다. 엔비디아 등 AI(인공지능) 반도체 테마 못지않은 채권의 인기를 보여준 것이다.

지금까지는 ‘고금리 막차’를 타려는 채권 개미들이 별로 재미를 못 봤다. 최근 미 국채 금리가 예상을 깨고 다시 오르면서 채권값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금리가 정점을 기록할 올 상반기에 채권 투자가 유효한 전략이라고 추천한다. 자산운용사들의 신상품 출시로 투자 선택지도 다양해지고 있다.

그래픽=김하경

◇미 장기채 투자하는 ETF 속속 출시

채권 개미들은 연초 이후 ‘TIGER미국채30년스트립액티브(합성H)’ ETF를 800억원어치 순매수했다. 상장 후 9개월여 만에 순자산이 3500억원을 넘어섰다.

채권은 잔존 만기가 길수록 가격 변동이 커지는데, 이 상품은 국내에 상장된 미 국채 ETF 가운데 듀레이션(남은 만기)이 28년으로 가장 길다. 다른 미 장기채 ETF보다 50%가량 더 긴 수준이다. 이에 금리 하락기에 높은 변동성을 즐기며 고수익을 거두려는 투자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일본이 조만간 17년 만의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끝낼 것이란 기대감에 엔화로 미국 장기채에 투자하는 ETF로도 돈이 몰리고 있다. 미국 국채 가격 상승과 엔화 강세에 따른 환차익을 동시에 노리는 것이다. 작년 말 상장된 ‘KB STAR 미국채30년엔화노출(합성H)’ ETF의 순자산은 벌써 1600억원에 육박한다. 이 상품이 인기를 끌자 지난 12일엔 한국투자신탁운용에서도 비슷한 상품인 ‘ACE미국30년국채엔화노출액티브(H)’ ETF를 상장했다.

작년 일학개미(일본에 투자하는 개인 투자자)들이 가장 많이 순매수한 종목은 일본 증시에 상장된 미국 장기채 ETF인 ‘아이셰어즈 20년 이상 미국 장기채 엔화 헤지’ ETF였다. 그런데 이제는 국내에서도 동일한 전략을 구사할 수 있는 상품들이 나온 것이다. 원화로 투자하기 때문에 일본에 상장된 ETF를 사고팔 때 드는 1%가량의 환전 수수료를 아낄 수 있고, 연금계좌에서 투자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ACE미국30년국채엔화노출액티브(H)’ ETF는 월 분배금도 지급한다.

◇아직은 마이너스 수익률, 앞으로는?

한발 앞서 미 국채에 투자한 개미들은 아직까지는 손실을 보고 있다. 작년 말 연 3.7%대까지 떨어졌던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가 연 4.308% 수준으로 올랐기 때문이다. 20년물, 30년물도 비슷한 추이다. 채권 가격은 금리와 반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TIGER미국채30년스트립액티브(합성H)’ ETF의 연초 이후 수익률은 -11%, ‘KB STAR미국채30년엔화노출(합성H)’ ETF는 -9.7%, ‘ACE미국30년국채액티브(H)’ ETF는 -7%를 기록 중이다.

예상보다 강했던 지난달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와 생산자물가지수(PPI)로 인해 상반기 금리 인하 기대가 약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18일 미국 기준금리 예측 모델인 시카고상품거래소의 페드워치툴에 따르면 오는 6월 금리 인하를 시작할 확률은 58.5%로 낮아진 반면, 7월 인하 확률은 76.9%에 달한다.

조용구 신영증권 연구원은 “단기적으로 10년물 미 채권 금리가 연 4.5%까지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하반기 금리 인하 자체를 의심할 필요는 없다. 냉철하게 고금리 확보 기회를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임재균 KB증권 연구원은 “오는 19~20일 미 연준의 FOMC(연방공개시장위원회)에서 올해 금리 인하 횟수가 줄어들 것으로 예측된다면 금리 변동성이 높아질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