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정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를 해소하기 위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세부 내용을 공개했다. 그런데 이날 그간 밸류업 프로그램 발표 기대감으로 상승세를 탔던 자동차, 금융 등 ‘저PBR(주가순자산비율)’ 종목이 동반 하락했다. 정책이 당초 기대했던 강도에 못 미쳤다는 실망감이 반영됐다는 말이 나온다.
투자자들은 가격이 떨어진 지금이 저PBR주 매수 타이밍인지 궁금해하고 있다. 저PBR주는 PBR이 1배 미만으로 주가가 장부 가치보다 낮을 정도로 저평가된 주식들이다. 전문가들은 무작정 저PBR주를 찾기보다는 저PBR주 중에서도 실적이 잘 나오는 종목에 대해선 계속해서 관심을 두라고 조언하고 있다.
◇기대 꺾이자 하락한 저PBR주
이날 외국인과 기관들이 대거 ‘팔자(매도)’에 나서며 오전 한때 코스피는 1.4% 내린 2629.78까지 밀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외국인이 매수세로 돌아서며 코스피는 0.77% 하락한 2647.08로 거래를 마쳤다.
특히 자동차, 금융주의 하락 폭이 컸다. 현대차와 기아가 2.1%, 3.2%씩 하락했고, 하나금융지주(-5.9%), KB금융(-5%), 신한지주(-4.5%), 우리금융지주(-1.9%) 등이 일제히 하락 마감했다. 한화생명(-9.6%), 삼성생명(-3.6%) 등 보험주도 힘을 내지 못했다.
자동차, 금융주는 PBR이 1배 미만인 저PBR주이면서 지속적으로 이익을 내고 있는 우량주다. 그간 정부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통해 저PBR 개선을 압박하면 배당 확대나 자사주 매입·소각 같은 주주환원 확대에 나설 것으로 기대되며 최근 주가가 크게 올랐다. 지난달 17일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처음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언급한 후 23일까지 약 한 달간 현대차와 기아 주가는 31%, 32%씩 올랐다. 삼성생명과 하나금융지주는 53%, 42% 뛰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저PBR 종목에서 차익 실현 매물이 쏟아지자 당분간 주가 조정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발표된 밸류업 프로그램 내용이 시장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며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한 단기 (주가 상승) 모멘텀은 우선 일단락됐고 이제는 중장기적인 정책 방향으로 지켜봐야 할 시기”라고 했다.
한편에선 이럴 땐 저PBR주 중 우량주를 골라 담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정책 모멘텀이 장기적으로 유효하다는 이유다. 조준기 SK증권 연구원은 “저PBR주에 대해선 조정 발생 시 매수 관점을 지속적으로 견지해야 한다”며 “총선 전까지 정부의 강한 정책 드라이브가 계속될 가능성이 높으며, 기업가치 제고 정책이 실제 기업의 행동으로 연결됐을 때 주가가 강하게 반응했던 것을 일본 사례에서 확인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밸류업 숨은 수혜주는 중소형주”
그렇다면 어떤 종목을 고르는 게 좋을까. 단순히 PBR 숫자에만 의존해 투자 종목을 고르는 건 위험하다는 말이 나온다. 저평가된 명품 우량주를 고르려면 기업 수익성을 나타내는 지표인 ROE(자기자본이익률)와 PER(주가수익비율), ROA(총자산순이익률)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여의도 증권가에서 기업 탐방을 많이 다녀 ‘걸어다니는 리서치센터’란 별명이 붙은 김기백 한국투자신탁운용 중소가치팀장은 대형주에 비해 훨씬 저평가가 심했던 중소형주가 정책 수혜를 더 크게 받을 것으로 봤다. 그는 “대형주는 이미 주주환원율이 25~30%에 달하는 반면, 중소형주는 10%에 불과해 주주환원 확대 여력이 훨씬 크다”고 했다.
또 대기업에 비해 중견·중소기업의 오너 세대교체(승계)가 더딘 점도 투자 기회가 될 것이라고 했다. 김 팀장은 “지금까진 상속세 부담 때문에 창업주들이 배당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는데 앞으로 배당 확대 시 세제 혜택이 제공된다면 다들 적극적으로 동참할 것”이라며 “배당을 늘리면 기업을 승계받은 2세가 이를 상속세 납부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고, 자사주 소각을 통해 지분율을 높일 수도 있기 때문에 주주환원에 나설 유인이 굉장히 크다”고 했다. 앞으로 추가로 나올 밸류업 프로그램을 잘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