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시 부진이 계속되면서 투자자들이 금리형 ETF(상장지수펀드)에 몰리고 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과 미국 국채 금리발(發) 충격 등으로 불확실성이 커진 증시를 피해 잠시 자금을 파킹해 두려는 용도로 금리형 ETF에 눈을 돌리는 것이다. 최근 3개월 새 순자산이 가장 많이 증가한 ETF는 연 3.8%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를 추종하는 삼성자산운용의 KODEX CD금리 액티브로, 이 기간 무려 3조원이 늘었다.

이런 금리형 ETF에 조(兆) 단위 뭉칫돈이 몰리면서 국내 ETF 시장에도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지난달 14일 미래에셋운용의 TIGER CD금리투자 ETF는 코스피 우량 종목 200개에 투자하는 주식형 ETF인 KODEX200을 제치고 국내 ETF 시장 순자산 1위에 올랐다. KODEX200은 우리나라에 ETF 시장이 열린 2002년부터 지난 21년간 1위 자리를 고수해온 절대 강자인데 증시 약세가 길어지자 관심이 시들해진 것이다.

역전 이후 격차는 급격하게 벌어지고 있다. 지난달 중순 1800억원 정도였던 TIGER CD금리투자 ETF와 KODEX200 ETF의 순자산 규모 차는 현재 1조원으로 확대됐다. 은행 파킹통장처럼 매일 수익을 얻을 수 있는 데다 언제든 현금화하기 쉽다는 것이 장점으로 꼽힌다.

그래픽=이지원

◇고금리에 채권형 ETF도 인기

금리형 ETF의 부상으로 지수형·주식형이 대세였던 ETF 시장이 보다 다양해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재 국내 ETF 순자산 톱5 가운데 3개가 금리형이다. 금리형과 함께 투자자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채권형 ETF다. 이달 신규 상장된 ETF의 절반이 국내 우량 회사채, 미국 국채 등에 투자하는 채권형 상품이었다.

향후 금리가 내리면 채권 가격이 오르기 때문에 고금리 시기에 채권을 사두면 유리하다는 점에서 시장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하이투자증권 박윤철 연구원은 “주식과 채권 모두 가격 압박을 받고 있음에도 주식보다는 채권형 ETF로 자금이 쏠리고 있고 이미 순자산 규모는 채권형·금리형 상품이 상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예컨대 삼성자산운용이 지난달 12일 상장한 만기매칭형 은행채 ETF(KODEX 24-12은행채 액티브 ETF)는 29 영업일 만에 역대 최단 기간으로 순자산 1조원을 돌파했다. 이 ETF는 신용등급이 높은 8개 은행 채권에 분산 투자하는데, 최근 금리 상승 분위기에 힘입어 2024년 12월 만기 시 수익률이 연 4.14% 수준으로 높아지자 개인과 기관 투자자들의 수요가 몰렸다. 위험도가 낮은 국내 우량 채권에 투자하는 ETF 출시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한국 주식시장 매력 잃나

금융투자업계에선 금리형·채권형 ETF가 대세로 자리 잡는 상황을 기대 반, 걱정 반으로 보고 있다. ETF 시장의 구성이 다양해진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국내 주식시장의 입지가 좁아지는 것을 경계하는 전문가도 적지 않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미국이나 일본 등 대부분 나라는 자국의 대표 주가지수 ETF가 1위인데 한국은 특이하게 금리형 상품이 1위”라며 “그만큼 투자자들이 국내 주식시장에 별다른 관심을 못 느끼게 된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런 현상의 배경엔 국내 주식시장에 대한 불신이 자리 잡고 있다. 지난 4월 ‘라덕연 주가조작 사태’에 이어 최근 시세조종에 연루돼 매매거래가 정지됐던 영풍제지 사태까지, 끊임없이 터지는 불공정 거래 사건들은 투자자들의 불신을 키우고 있다.

연금자산이 국내가 아닌 미국으로 쏠리고 있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지난 9월 기준, 미래에셋증권 연금 고객들이 가장 많이 보유(평가금액 기준)하고 있는 톱5 ETF 중 1~3위는 모두 미국 나스닥과 S&P500, 테크 기업에 투자하는 미국 관련 상품이었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가용자금이 적은 젊은 세대 입장에선 코스피200에 투자하는 것이 결코 대안이 되지 못한다는 뜻”이라며 “국내 주식은 비과세 장점 등이 있는 만큼, 투자 매력을 살릴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