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중소기업에 다니는 이모(27)씨는 최근 목돈 마련을 위해 청년도약계좌 가입을 알아보다가 포기했다. 월급 실수령액이 260만원 남짓인데 월세(60만원)와 통신비, 공과금, 교통비를 비롯해 학자금 대출을 갚는 데 매달 들어가는 돈을 빼면 60만~70만원도 남기기 어렵다. 적은 돈이라도 매달 넣는 것은 이씨에게 버거운 일이었다. 이씨는 “청년도약계좌는 빚 없고, 부모 지원을 어느 정도 받을 수 있는 청년들이나 쉽게 가입할 수 있는 상품이 아닌가 싶다”고 했다.

정부가 지난 6월 사회 초년생의 자산 형성을 돕기 위해 야심차게 출시한 ‘청년도약계좌’가 점점 청년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 인플레이션과 고금리, 경기 둔화 등으로 당장의 생활 유지가 시급한 청년들에겐 ‘그림의 떡’이란 지적도 나온다. 청년도약계좌는 19~34세인 청년이 5년간 꾸준히 적금을 부으면 정부 지원금(월 최대 2만4000원)과 이자 비과세 혜택을 합쳐 최대 5000만원가량(월 최대 납입액 70만원 기준)을 마련할 수 있게 해주는 정책금융상품이다. 전년에 소득이 있어야 하며 연소득 7500만원 이하, 가구 중위소득의 180% 이하인 청년만 가입할 수 있다.

그래픽=양진경

◇인기 시들해진 청년도약계좌

10일 더불어민주당 김성주 의원실이 금융위원회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8월 청년도약계좌 신청자는 15만8000명으로 처음 출시된 지난 6월 신청자(76만1000명)의 5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신청자는 지난 7월(44만명) 한 달 만에 32만1000명(42%) 감소하더니 8월에도 큰 폭으로 줄었다. 출시 2개월여 만에 가입 열기가 크게 식은 것이다.

청년도약계좌는 개인·가구별 소득, 연령 기준(2년 군복무 시 36세까지) 등을 모두 충족해야 하기 때문에 신청한다고 바로 가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금융위에 따르면 6~8월 가입 신청자(135만9000명) 중 은행으로부터 청년도약계좌에 가입할 수 있다는 안내를 받은 인원은 절반 정도(69만1000명)에 불과하다. 가입할 수 있다고 해서 전부 계좌를 개설한 것도 아니었다. 가입 가능 통보를 받은 10명 중 6명 정도(42만2000명)만 계좌를 만들었다. 즉 청년도약계좌 신청자 10명 중 3명 정도(31%)만 최종 가입을 완료한 것이다. 이는 금융 당국이 청년도약계좌를 출시하면서 예상한 가입 인원 300만명의 14%에 불과하다. 정부 지원금을 합쳐 최대 연 8%대의 높은 실질 이자를 앞세워 대대적으로 정책을 홍보한 것을 감안할 때 청년들의 호응도는 매우 낮은 편이란 말이 나온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출시 첫 달에는 문의가 빗발쳤으나 최근 들어서는 관심도가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팍팍한 생활에 여유 없는 청년들

청년도약계좌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진 배경으론 갈수록 팍팍해지는 청년들의 생활 여건이 꼽힌다. 경기 둔화 등으로 수입이 충분치 않은 청년들이 인플레이션과 고금리라는 이중고에 시달리면서 매달 여윳돈을 마련해 5년이라는 오랜 기간 저축을 한다는 게 사실상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대 가구주의 지난해 평균 부채 규모는 5014만3000원으로 전년(3550만1000원)보다 41.2%나 급증했다. 반면 같은 기간 평균 가처분 소득은 6.5% 늘어나는 데(3189만1000→3396만7000원) 그쳤다. 소득 수준이 정체된 가운데 고금리 속에 빚만 눈덩이처럼 불어나다 보니 ‘백기(白旗)’를 드는 청년도 빠르게 늘고 있다. 법원 개인회생 신청자 중 20대가 차지하는 비율은 2020년 10.7%에서 지난해 15.2%로 2년 만에 5%포인트가량 상승했다. 올해 상반기 20대 이하의 개인워크아웃 확정자도 4654명으로 지난해 상반기(3509명)보다 1145명(33%) 늘었다. 2018년 상반기 이후 5년 만에 최고치다.

전문가들은 청년들의 자산 형성을 도우려면 훨씬 더 세심하게 설계된 정책 상품을 내놓거나 근본적 해결책 마련에 힘써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민환 인하대 글로벌금융학과 교수는 “청년들을 위한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고, 큰 빚을 지지 않도록 사회적 안전망을 강화하는 데 정책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청년도약계좌

19~34세 청년이 월 70만원 내에서 5년간 꾸준히 적금을 부으면 정부 지원금(월 최대 2만4000원)과 이자 비과세 혜택을 합쳐 만기 때 최대 5000만원 안팎의 목돈을 마련할 수 있도록 설계된 정책금융상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