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이 경영에서 환경(Environmental)·사회(Social)·지배구조(Governance)를 고려하지 않는 기업들을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제외하기로 한 이후 국내 기업들도 ‘ESG 경영’을 강조하고 나섰다. 하지만 정작 투자자들은 ESG 투자를 외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19일 기준 국내에 설정된 ESG 펀드는 주식형 54개, 채권형 20개 등 총 74개로 집계됐다. 지난 2021년 말 주식형 44개, 채권형 15개 등 59개였던 것과 비교하면 15개가 늘었다.

이같이 ESG 펀드 상품 수는 늘었지만, ESG 펀드에서는 돈이 빠져나갔다. 19일 기준 ESG 펀드 설정액은 3조330억원으로 1년 전보다 6013억원 줄었고, 2년 전보다는 무려 1조387억원 줄었다.

그래픽=양인성

◇수익률 부진에 ESG 펀드 외면

ESG 펀드가 투자자로부터 외면받는 가장 큰 이유는 수익률이다. 국내에 설정된 주식형 ESG 펀드의 연초 이후 수익률은 15.77%로 국내 주식형 펀드 전체 수익률 22.02%에 미치지 못했다. 같은 기간 채권형 ESG 펀드의 수익률(4.16%) 역시 회사채 펀드 전체 수익률(4.25%)을 밑돌았다.

투자자에게 “ESG 투자는 성공할 확률이 높다”는 확신을 심어주지 못한 것도 ESG 펀드에서 돈이 빠져나가는 이유 중 하나다. 미국의 금융 소프트웨어 기업 SS&C가 2015~2020년 사이 발표된 1000개 이상의 연구 논문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논문 중 58%가 ESG와 투자 성과 사이에 긍정적인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하지만 34%는 ESG와 투자 성과 사이에 큰 상관관계를 발견하지 못했거나 결과가 모호했다고 결론 내렸고, 8%는 부정적인 연관성이 있다고 결론 내렸다. 김윤정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같은 대상을 두고 기관별 평가 결과가 서로 다른 것은 투자자들에겐 위험으로 인식된다”고 말했다.

다른 투자 상품과 차별화하지 못했다는 것도 ESG 펀드의 매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실제로 이름에 ESG가 들어가는 12개 국내 주식형 상장지수펀드(ETF) 가운데 9개의 구성 종목 1위가 삼성전자였다. 삼성전자를 가장 많이 담은 ESG ETF 9개 중 8개는 전체 포트폴리오에서 삼성전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두 자릿수를 넘을 정도로 쏠림이 심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8월 기준 유가증권시장에서 삼성전자의 시가총액 비율은 우선주를 포함해 22.15%였다.

◇종목 선정 기준 모호한 ESG펀드

ESG 펀드가 무엇인지 모호하다는 점도 투자에 걸림돌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ESG가 화두가 되면서 각 사가 ESG 펀드를 내놓고 있지만, 어떤 기준으로 종목을 고르는지, 투자 전략은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밝힐 기준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금융 당국은 해외 주요국의 공시 규제 동향 등을 참고해 ESG 펀드의 공시 대상과 투자 전략, 운영 능력, 운용 실적 등에 대한 공시 기준을 마련해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다.

이런 가운데 국내 대표적인 행동주의 투자자인 강성부 대표가 이끄는 KCGI가 인수한 KCGI자산운용(옛 메리츠자산운용)이 20일 사명 변경 이후 첫 공모펀드로 ‘KCGI ESG 동반성장펀드’를 출시하면서 분위기가 바뀔지 시장의 관심이 집중된다. 이 펀드는 지배구조 문제 등으로 기업가치가 저평가됐지만, 지배구조 개선 시 초과수익을 올릴 수 있는 기업에 적극적으로 투자한다. 특히 투자 종목을 고를 때 단순히 시가총액 대비 순현금, 투자부동산 등 지표 중심의 접근보다는 구조적 비용 효율화나 현금 흐름 개선 가능 여부, 중장기 주주 환원 정책 개선 여부 등을 고려하겠다는 게 KCGI 자산운용의 설명이다. 이를 위해 우호적인 주주 제안부터 가처분 신청, 위임장 대결 등 공격적인 수단도 병행할 예정이다.

김병철 KCGI자산운용 대표는 “우리나라의 경우 기업 순이익 대비 배당, 자사주 매입 소각 비율인 주주 환원율이 미국, 일본, 대만 등 주요국보다 현저히 낮은 수준”이라면서 “기업에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고 관철해 투자 수익을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