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기업에서 은퇴한 김모(61)씨는 평소 그림에 관심이 많은 미술품 애호가다. 김씨는 15년 전쯤 국내 현역 작가의 회화 작품을 2000만원에 샀는데, 이 작품의 예술적 가치가 최근 주목받아 시가가 1억2000만원으로 뛰었다. 자녀 결혼 자금 등으로 목돈이 필요한 그는 이 작품을 팔고 싶지만, 여기에 세금이 잔뜩 붙을까 걱정돼 경매 업체에 문의했다. 경매 업체의 답변은 뜻밖이었다. 업체는 “국내 생존 작가의 작품에는 소득세가 전혀 안 붙는다”고 알려왔다.
최근 은퇴족의 절세 수단으로 미술품 투자가 주목받고 있다. 미술품은 부동산과 달리 취득·보유세가 붙지 않고, 양도할 때도 세금이 아예 없거나 비교적 적게 붙는다는 장점이 있다. 미술품은 보유 중엔 집이나 사무실 장식으로 활용할 수 있어 심미적 가치를 누릴 수도 있다. 국내 미술 시장 규모도 점점 커진다. 코로나 시기 이전엔 5000억원 미만 수준이었지만 현재 1조원대로 급성장했다.
◇국내 생존 작가 미술품, 취득·보유·소득세 ‘3무(無)’
미술품은 다른 투자 대상과 비교해 양도할 때 소득세(기타소득세)가 가볍다. 우선 국내 작가 작품은 양도일 기준으로 작가가 생존해있다면 금액에 관계없이 무조건 면세된다. 사망한 국내 작가나 해외 작가 작품도 양도 가액이 6000만원 이상이어야 과세 대상이다. 5000만원 정도의 고가 미술품도 양도에 따른 소득세가 ‘제로(0)’라는 뜻이다.
양도 가액이 6000만원을 넘더라도 세금 부담이 크지 않다. 양도 가액 1억원까지는 90%를 ‘필요 경비’로 보는데, 이 필요 경비에 대해선 과세하지 않는다. 1억원 초과분에 대해서는 80%를 필요 경비로 본다. 단 보유 기간이 10년 이상이면 금액에 상관없이 필요 경비를 90%까지 인정한다. 게다가 미술품 양도에 따른 기타소득은 다른 소득과 합산되지 않는다. 즉 종합과세되지 않고 무조건 분리과세되기 때문에 고소득자일수록 유리하다.
앞서 예로 든 김씨는 그림이 국내 생존 작가 작품이기 때문에 1억2000만원의 양도 가액에 세금을 내지 않았다. 그런데 만약 이 그림이 외국 작가이거나 국내 사망 작가 작품이라 하더라도, 필요 경비(1억800만원)을 제외한 1200만원에 대해 세율 22%가 적용되기 때문에 세금은 약 264만원만 납부하면 되는 것이다. 만약 금액이 같은 부동산을 팔았다면(10년 보유 후 양도 차익 1억원, 다주택자 기준) 양도·지방소득세가 약 1400만원 붙는다. 미술품의 세금 부담이 5분의 1 수준인 것이다.
◇외국 작품도 조각품은 비과세
미술품 종류에 따라 면세가 되기도 한다. 현행법상 과세 대상은 ‘서화’와 ‘골동품’ 중 현행법에 열거된 종류에 한정된다. 서화 가운데선 회화, 데생, 파스텔, 판화·인쇄화, 석판화 등이 해당한다. 예를 들어 조각 작품이나 설치 미술품의 투자 수익은 과세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이다. 또 골동품은 제작 후 100년이 넘은 것만 과세 대상이다.
단 미술품을 자녀에게 상속하거나 증여할 때는 상속·증여세가 붙는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미술품을 생전에 증여받으면 10~50%를 증여세로 내야 하고, 부모 등의 사망으로 물려받을 때도 역시 10~50% 상속세가 부과된다.
통상 상속이나 증여할 때 시가(時價) 평가를 해야 하지만, 미술품은 시가 산정이 쉽지 않다. 따라서 ‘보충적 평가 방법’을 활용하는데, 이는 전문 분야별 전문가 2인 이상이 감정한 가액의 평균액을 뜻한다.
이때 납세자가 신고한 감정 가액에 대해 과세 관청에서 재감정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경우, 국세청장이 위촉한 전문가 3인 이상으로 구성된 감정평가심의회에 감정을 의뢰할 수 있다. 납세자의 신고 가액이 감정평가심의회에서 감정한 가액에 미달하면 그 감정 가액을 적용한다.
그러나 미술품이나 골동품은 상속, 증여 시 과세 사각지대에 놓이기 쉬운 측면도 있다. 등기·등록이 필요한 자산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거부터 일부 고액 자산가는 그림이나 골동품을 세금 회피 자산 이전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고가 미술품 부담스럽다면 ‘조각 투자’도 가능
비싼 미술품을 직접 사기 부담스럽다면, 일명 ‘조각 투자’라는 지분 투자를 할 수도 있다. 조각 투자를 전문적으로 하는 스타트업 플랫폼 업체를 통해 비교적 소액으로 쉽게 투자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유명 외국 작가의 5억원짜리 회화 작품에 대해 100만원(지분율 0.2%)어치만 투자할 수 있다. 이 경우 만약 현재 시가에 판다면 양도세는 부과될까. 양도 가액은 100만원에 불과하지만, 작품 자체가 6000만원 이상에 팔렸으므로 세금은 붙는다. 다만 필요 경비(90만원)을 제외한 10만원에 대해 22% 세율이 적용돼 2만2000원 정도를 낼 뿐이다.
일각에선 미술품 투자에 따른 각종 세금 혜택이 일부 고액 자산가에게 집중된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대다수 예술가의 생활 형편이 어렵고 국내 미술 시장이 아직 국제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현실을 고려할 때, 국내 예술 활동을 진작하려는 정책적 배려 차원에서 이해할 측면이 있다.
각종 전시회나 갤러리에 가보면 젊은 작가나 무명 작가들의 작품이 많이 판매되고 있다. 미술품에 투자하면 예술인의 생계에도 도움이 되고 집이나 사무실 장식에도 활용할 수 있다. 또한 혹시 나중에 그 작가가 유명해져 작품 가치가 오른다면, 가벼운 세금만 내고 투자 수익도 환원할 수 있어 ‘일석삼조(一石三鳥)’ 효과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