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이 이렇게 좋은데도 현대차 주가는 안 가는데, 도요타는 계속 달려 신고가를 찍네요.”(현대차 주주 박모씨) “도요타 주식으로 40% 수익 났는데 돈 좀 더 보태서 크라운 살 겁니다.”(도요타 주주 이모씨)
한일(韓日) 양국의 간판 자동차 주식을 둘러싸고 투자자들 간에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현대차 주주들은 “공장이 풀가동 중이고 역대급 호실적을 올리고 있는데 주가만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고 아우성이다. 현대차 주가는 지난 1년간 7% 하락하면서 역주행했다. 같은 기간 코스피 상승률(3.6%)에도 못 미치는 부진한 성적이다.
반면 도요타는 최근 1년간 주가가 29% 오르면서 초고속 질주하고 있다. 특히 이달 들어 연일 사상 최고가를 갈아 치우고 있어 상승세가 두드러진다. 지난 12일에도 2657엔으로 장을 마치면서 1949년 상장 이후 역사적 최고가를 찍었다. 주가가 끊임없이 오르자, 애널리스트들은 도요타 목표 주가를 거의 매주 상향 조정하고 있다(8월 2550엔→9월 2750엔).
도요타 주주들은 “바쿠에끼(爆益)가 왔다”면서 환호하고 있다. 바쿠에끼는 한자로 ‘폭익’인데, ‘폭발적인 이익 증가세’를 나타내는 주식 용어다. 도요타는 연초에 올해 영업이익 목표로 3조엔(약 29조원)을 제시했다. 3조엔은 일본 기업 역사상 최초일 정도로 이미 충분히 엄청난 숫자인데, 이달 기준 애널리스트들의 올해 도요타 영업이익 예상치는 4조엔을 넘는다. 참고로 현대차 올해 영업이익 예상치는 15조원(역대 최대)이다.
프라이콤리서치의 마츠오노리히사(松尾範久) 대표는 “도요타는 높은 기술력과 영업력에 탄탄한 재무까지 갖췄고, 지속적인 성장에 대한 주주들의 믿음도 높다”면서 “지난 6월 꿈의 기술이라는 전고체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EV)를 2027년에 출시하겠다고 밝히면서 주가가 한층 탄력을 받은 모습”이라고 말했다.
✅수퍼 엔저가 축복인 日 도요타
일본 도요타의 PER(주가수익비율·높을수록 고평가)는 15배인데, 한국 현대차 PER는 4.3배다. 왜 도요타는 현대차보다 3배나 더 비싸게 거래되는 걸까. 한일 자동차 회사 주가의 엇갈린 행보에 대해 전문가들은 다양한 분석을 내놓고 있다.
송선재 하나증권 연구원은 “도요타는 국내외에서 하이브리드 판매가 호조이고 미국 시장 점유율 회복 기대감도 높은 반면, 현대차는 이익 피크아웃(정점 후 하락 전환)과 전기차 점유율 정체에 대한 우려가 높다”고 말했다.
박소연 신영증권 이사는 “현대차는 미국에서 일반 소비자보다는 렌트카 등 플릿(Fleet·영업 차량) 위주로 수요가 늘면서 판매가 늘었다”면서 “역대급 엔저에 힘입은 도요타는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면서 판매가 급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은영 삼성증권 연구원은 “하이브리드가 전기차를 대체하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하면, 도요타 주가 상승은 엔저와 생산 회복이 겹치며 수익성이 개선된 것이 큰 이유로 보인다”고 말했다. 임 연구원에 따르면, 도요타 주가는 엔·달러 환율와 매우 높은 상관관계를 갖는다. 도요타는 전체 판매의 15%를 차지하는 렉서스를 일본에서 100% 생산·수출하기 때문에 환율에 민감하다. 임 연구원은 “엔저 현상이 지속된다면 도요타 실적은 호조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일본 현지에서는 도요타아키오(豊田章男) 전임 사장의 뒤를 이어 올해 새로 취임한 사토코지(佐藤恒治) 사장의 주주친화 경영에 대한 기대가 크다. 전임 사장과 달리, 사토 사장은 지난 5월 도요타 실적 설명회장에 직접 참석하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유동 주식이 30% 정도에 불과하다는 점도 도요타 주가가 견조하게 유지될 요소로 꼽힌다. 도요타 지분 구조를 보면, 일본 보험사·은행 등 금융회사가 34%를 보유하고 있고 자사주 비중이 20.3%에 달한다. 지난 2015년만 해도 자사주 비중은 8% 정도였지만 올해 20.3%까지 빠르게 늘었다. 야마와증권의 시다켄타로(志田憲太郎) 연구원은 “엔고 위험은 원가 절감과 가격 인상, 판매대수 증가 등으로 상쇄할 수 있을 것”이라며 “올해 도요타는 1010만대를 생산할 계획이며, 매출과 이익 모두 예상보다 크게 증가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한편, 여의도 증권가에선 ‘극심한 저평가’ 상태인 한국 자동차주가 투자 기회라고 보는 시각도 늘어나고 있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실적 피크아웃(정점 통과) 우려는 과도하다는 것이다. 신한자산운용은 다음 달 국내 자동차 대장주인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 등 3개 종목에 집중 투자하는 ‘SOL 자동차 TOP3+ ETF’를 출시한다. 현대·기아차가 지난해 글로벌 자동차 점유율 기준 도요타, 폭스바겐에 이어 3위에 오르는 등 글로벌 경쟁력이 높아져 추세적인 성장세에 진입했다는 판단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