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밤 10시 도쿄 니시신주쿠(西新宿)역에서 도보 3분 거리에 위치한 ‘초코잡(chocoZAP)’. 연중무휴로 24시간 운영되는 무인 헬스장이다. 늦은 시간인데도 정장이나 운동복 차림의 남녀 회원들이 스마트폰 QR코드를 찍으면서 끊임없이 들어왔다. 내부에는 러닝머신, 실내자전거, 벤치프레스, 골프네트 등 다양한 운동기구가 마련돼 있었다.

땀에 흠뻑 젖어 집으로 돌아가던 40대 남성 다나카씨는 “집에서 가깝기도 했지만 회비가 반값이어서 호기심에 시작해 봤다”면서 “평일엔 회사 근처에서, 주말엔 집 근처에서 운동하고, 출장 가서도 추가 비용 없이 이용할 수 있어 편리하다”고 말했다.

1년여 만에 업계 1위에 올라선 일본 초저가 무인 헬스장인 '초코잡'. 월 회비가 3만원 정도로 저렴하다./초코잡

요즘 일본 대도시 주요 입지에는 ‘초코잡’이라는 귀여운 간판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1대1 퍼스널트레이닝(PT)이 중심인 고가 헬스장 운영업체 리잡(RIZAP)그룹이 작년 7월 ‘초저가 헬스장’으로 선보인 뉴비즈니스다. 운동에 진심인 사람보다는 바쁜 생활 중에 큰 비용 들이지 않고 틈틈이 운동하면서 자기 관리를 하려는 사람들이 타깃이다.

초코잡은 잡지 닛케이트렌디(日経トレンディ)가 예상한 ‘2023년 히트 상품’ 1위로 뽑힐 만큼, 출범 초기부터 관심을 모았다. 틈새 시장을 파고드는 창업 아이디어는 적중했다. 지난해 7월 출범 이후 1년여 만인 지난 달에 회원수 80만명을 돌파하며 업계 1위에 올라선 것이다. 24시간형 대형 체인인 애니타임피트니스(78만명)와 여성 전용 운동시설인 커브스(77만명)를 모두 제쳤다. 이달 현재 도쿄, 오사카. 삿포로, 후쿠오카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지점 1000여곳이 있는데, 오는 2025년엔 2000개 지점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정다운

전통 강자들이 버티고 있는 치열한 시장에서 후발 주자가 단숨에 1위로 치고 나간 비결은 무엇일까? 크게 3가지 이유가 꼽힌다.

첫째, 가격 파괴. 초코잡은 세금 포함 3278엔(약 3만원)만 내면 전국 모든 지점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통상 일본의 헬스장 월 이용료가 7000엔~1만엔 수준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그야말로 초저가다. 샤워실, 사물함, 수건, 운동복 등 대형 헬스장들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몽땅 제외해서 가격 거품을 뺐다. 그래서인지 지갑이 가벼운 20~30대가 전체 회원의 53%에 달한다.

경제평론가 모리나가타쿠로(森永卓郎)씨는 “단시간 내에 운동 효과를 보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가볍게 몸만 풀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런 수요를 파고든 것”이라며 “한 달에 5번 간다고 하면 600엔 정도로 커피값 수준이라서 초보자 입장에선 심리적인 문턱도 낮다”고 말했다.

넥타이에 구두 차림도 상관없다. 운동하고 싶다면 아무 때나 가볍게 들를 수 있다./초코잡

둘째, 접근성이다. 초코잡은 마치 편의점처럼 지하철역이나 버스 정류장 등 유동 인구가 많은 입지에 위치해 있다. 운동화를 신을 필요도 없고, 양복과 구두, 심지어 청바지 차림으로 운동을 해도 괜찮다. 출퇴근하면서 혹은 마트에 가다가 가볍게 들러서 운동하면 되고, 여행이나 출장을 떠나서도 이용할 수 있다.

초코잡 회원 A씨는 머니포스트 인터뷰에서 “프로틴 음료를 마시면서 근육 운동을 하는 사람들 옆에서 운동하면 위압감을 느끼는데, 초코잡엔 (나와 같은) 운동 초심자들이 많아서 불편하지 않다”면서 “셀프 제모기 같은 미용기구도 있기 때문에 잘만 활용하면 가성비가 훌륭하다”고 말했다.

셋째, 비용 절감이다. 일할 사람이 부족한 일본에서 구인은 창업 성패를 가르는 중요한 변수다. 하지만 초코잡은 무인 헬스장이기 때문에 직원 고용에 골머리를 앓을 필요가 없다. 회원 가입부터 월 회비 납부, 체육관 출입 등 모든 과정은 스마트폰 앱에서 이뤄진다. 회비도 매달 내는 방식이기 때문에 입회와 탈회도 자유롭다. 1년 단위로 거액의 회비를 선입급하지 않기 때문에 노예 계약이나 헬스장 먹튀 불안은 없다.

한국에서 초코잡과 비슷한 초저가 무인 헬스장이 나오면 성공할 수 있을까? 샤워시설이 없으면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란 의견이 많다. /도쿄=이경은 기자

초코잡은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지만, 성장통도 앓고 있다. 초기 투자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회사 실적도 아직 적자다. 초코잡 운영업체인 리잡그룹의 올해 4~6월 실적을 보면, 매출은 387억엔으로 전년 동기 대비 크게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28억엔 가량 마이너스였다.

회원수 급증에 따른 후유증도 나타나는 추세다. “운동기구가 고장났는데 바로 수리를 해주지 않는다”, “저녁 6~9시 피크타임에 가면 운동기구 자리가 없다”, “기구 사용법을 잘 모르는 초보자들이 시끄럽게 운동을 한다”, “운동기구에 앉아서 스마트폰만 보는 등 매너가 나쁜 사람들이 많다”, “열쇠 달린 사물함이 없어서 귀중품 도난 우려가 있다” 등 이용자들의 불만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