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대기업에서 퇴직한 김모(63)씨의 월소득은 국민연금 70만원에 예금 이자와 주식 배당금 150만원을 합쳐 220만원 정도다. 또 수도권에 5억원(과세표준 기준)짜리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다. 김씨는 작년 9월까지 딸의 직장가입 건강보험에 피부양자로 등록돼, 자신은 건강보험료를 내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그 이후 지역가입자로 전환돼 월 34만원이 넘는 건강보험공단 고지서를 받게 됐다.
작년 9월부터 건강보험료 부과 기준이 강화되면서, 올 들어 건강보험 피부양자에서 지역가입자로 전환된 사람들이 확 늘었다. 피부양자 인정 기준이 합산과세소득 연 3400만원 이하에서 연 2000만원 이하로 대폭 낮아졌기 때문이다. 이 소득엔 국민연금을 포함한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군인연금 수령액도 포함된다. 공적 연금을 포함해 월소득이 167만원만 넘으면 건강보험 피부양자에서 지역가입자로 전환되는 것이다.
이는 국민연금의 자발적 가입자(소득이 없지만 자발적으로 국민연금에 가입한 사람) 수를 줄이는 뜻밖의 결과를 부르기도 했다. 은퇴 후 건강보험 피부양자 소득 기준을 맞추려 국민연금을 해지하는 사람이 늘어난 것이다. 작년 말 국민연금 자발적 가입자 수는 86만6314명으로 1년 전(93만9752명)보다 약 8%나 줄었다. 은퇴족에게 부쩍 커진 건강보험료 부담을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까.
◇피부양자 자격 유지가 관건
은퇴 후 건보료를 절감하려면, 무엇보다 피부양자 자격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좋다. 이때 많은 사람이 소득 기준만을 고려하는데, 의외로 재산 기준 때문에 피부양자 자격을 잃는 경우도 많아 각별한 주의를 요한다.
재산세 과세표준액이 9억원을 초과할 경우 소득 여부에 관계없이 피부양자 자격을 잃게 된다. 재산세 과세표준액은 토지는 공시지가의 70%, 건축물은 시가표준액의 70%, 주택의 경우 공시지가의 60%(1주택자의 경우 45%)를 반영한다. 다주택자의 경우, 공시지가 약 15억원이면 피부양자 자격을 잃게 되는 셈이다. 또 재산세 과세표준액이 5억4000만원을 초과하면서 연 소득이 1000만원을 넘어도 피부양자 자격이 박탈된다. 공시지가 약 9억원의 부동산을 보유한 다주택자가 국민연금 수령액이 월 84만원만 넘어도 피부양자에서 탈락된다는 얘기다.
◇저축보험, 월 150만원까지 소득 산정 제외
그런데 피부양자 자격을 유지하려고 부동산 등 주요 자산을 무작정 매각하긴 쉽지 않다. 이 경우 소득을 줄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가장 많이 활용되는 것은 금융소득 중 비과세소득을 늘리는 것이다. 건보료 부과 대상 소득에서 비과세 소득은 제외되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보험사의 연금이나 저축성 상품에 5년 이상 납입하고 10년 이상 유지하는 월 납입식 상품은 인당 월 150만원까지 비과세 되는 상품이다. 한꺼번에 목돈을 맡길 때는 인당 1억원까지 가능하다. 비과세 한도가 없는 종신보험 등 보장성 상품에 가입해 경제 활동기에는 보장을 받고, 노후에는 중도 인출이나 연금 전환 등의 기능을 통해 생활비로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만약 증여를 계획하고 있다면, 임대료 등 소득이 발생하는 자산을 자녀에게 미리 증여하는 것도 방법이다.
◇임의계속가입자 신청하면 목돈 절약
은퇴를 앞둔 직장가입자라면, 건강보험공단에서 제공하는 ‘임의계속가입자’ 제도로 목돈을 아낄 수 있다. 1년 이상 근무 경력이 있는 직장가입자가 퇴사하면 지역가입자로 전환되는데, 이때 퇴직 전 납부하던 직장가입 보험료 수준으로 퇴직 후에도 최장 36개월까지 납부할 수 있는 제도다. 통상 지역가입자의 보험료보다 직장가입자의 보험료가 싸기 때문에 잘 활용하면 목돈을 아낄 수 있다.
예를 들어 공무원 퇴직 예정인 A씨의 월 소득이 약 400만원이고, 12억원짜리 아파트 한 채를 소유 중이라고 하자. A씨는 현재 월 16만원 정도 직장가입 보험료를 내고 있다. 만약 A씨가 은퇴 후 바로 지역가입자로 전환되면 공무원연금 월 250만원에 재산(아파트) 가액을 감안할 때 매월 약 37만원의 건강보험료를 내야 한다. 그러나 임의계속가입을 신청하면 현재 수준의 보험료가 유지돼 월 21만원을 절약할 수 있는 것이다. 36개월간 총 750만원가량을 아낄 수 있다.
임의계속가입자 제도는 특별한 서류 없이도 근처의 건강보험공단 지부를 찾아 신분증만 제시해도 신청 가능하다. 팩스나 우편으로도 가능하다. 지역가입자가 된 이후 최초로 받은 지역보험료 고지서의 납부기한으로부터 2개월 이내에 신청하면 된다.
올해 건강보험료율은 작년보다 1.49% 인상됐다. 최근 5년간 연평균 2.7%씩 올랐다. 국민연금보다 상대적으로 연금 수령액이 높은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군인연금 등 연금 수령자들의 부담이 점점 커질 것으로 보인다. 고소득으로 인해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받지 못하면, 받는 연금액에서 점점 더 많은 금액이 건강보험료로 나가게 되기 때문이다.
각 보험사에서 건강보험료를 감안한 공적연금과 개인연금의 포트폴리오 조정 전략에 대한 전문가 상담도 진행하고 있으니, 이를 활용해 보는 것도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