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유지하고 싶은데, 국민연금을 3년 앞당겨 받으면 어떨까요?”(은퇴 생활자 A씨)
오는 9월 건강보험료 피부양자 자격 강화를 앞두고, 국민연금 수령액을 줄이기 위해 일부러 조기 노령연금을 선택하겠다는 은퇴자들이 생겨나고 있다. 조기 노령연금이란, 국민연금을 정상 시점보다 최대 5년 앞당겨 받는 것을 말한다. 일찍 받으면 연금액이 연 6%씩, 최대 30% 감액된다. 연금액이 줄기 때문에 조기 노령연금은 주로 생활이 어려운 은퇴자들이 선택했지만, 최근엔 건강보험 피부양자 탈락을 피하기 위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고령화 속도가 빠른 나라가 연금 재정을 탄탄하게 유지하려면, 국민들이 연금을 최대한 늦게 받아야 유리하다. 일본 정부가 연금 수령 시기를 올해 만 75세까지 늘리고, 한국 정부가 연기연금 신청 횟수 제한을 폐지한 것도 같은 취지다. 하지만 새로 바뀌는 건보료 정책이 연금 정책과 호응하지 못하면서 한국에선 연금 수령을 연기하는 게 아니라 일찍 앞당길수록 유리해지는 역설적인 상황이 나타날 조짐이다.
은퇴 생활자인 A씨는 오는 2025년 예정돼 있는 국민연금 수령을 3년 앞당겨서 당장 올해부터 수령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정부가 오는 9월부터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대폭 강화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올 하반기에 건강보험 제도가 바뀌면 연간 소득이 2000만원을 넘는 사람은 건강보험 피부양자에서 탈락된다(현재 기준은 3400만원). 국민연금도 소득에 포함되기 때문에 A씨처럼 1년에 2000만원 넘게 국민연금을 받으면, 피부양자 자격을 유지하지 못하게 된다.
더구나 피부양자에서 탈락해 지역 가입자가 된 연금 생활자의 경우, 연금액이 많다면 건보료 부담은 한층 무거워질 수 있다. 지역 가입자의 건보료를 매길 때 반영하는 국민연금의 소득인정 비율이 하반기부터는 현행 30%에서 50%로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연금의 소득인정 비율이 30%에서 50%로 높아지긴 하지만, 개편 이후 연금소득에 일정 비율만큼 보험료를 부과하는 정률제가 실시되기 때문에 대다수 연금 수급자의 건보료 부담은 늘어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A씨는 “지금은 딸 직장보험의 피부양자로 얹혀 있는데, 2025년부터 국민연금을 받게 되면 1년에 2130만원으로 피부양자에서 탈락된다”면서 “하지만 연금을 올해로 앞당겨 받으면, 연금액이 깎이기 때문에 연 1840만원에 그쳐 피부양자 탈락을 피할 수 있다”고 말했다.
피부양자 탈락시 A씨가 내야할 건보료는 1년에 300만원 정도다. A씨는 ”국민연금 때문에 정부가 공짜로 주는 기초연금 대상도 되지 못하는데 (건보료까지 내야 한다면) 억울하다”면서 “노후에 연금만 갖고 살아가야 하는 은퇴자들에게 건보료 300만원은 가혹하다”고 말했다.
조기 노령연금은 정상 연금 대비 수령액이 줄기 때문에 ‘손해연금’이라고도 불린다. 1년 일찍 연금을 신청하면 정상 연금액에서 6%가 감액되어 94%를 받고, 최대 5년 일찍 신청하면 70%만 받게 된다. 12일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지난 2월 기준 조기 노령연금 누적 수급자는 71만4933명에 달한다. 전체 노령연금 수급자의 15% 정도다.
조기 노령연금은 연금액이 적어서 불리하다는 인식이 많지만, 개인 가치관에 따라서는 ‘손해연금’이 아닐 수도 있다. 가령 노년은 초반에 돈을 쓸 곳이 더 많기 때문에 조기 노령연금을 선택하는 것이 돈의 소비가치 측면에선 더 나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조기 노령연금을 경제적인 측면에서 따져보면 어떨까.
김은혜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정상 노령연금(65세 개시)을 연간 1000만원으로 가정하고 조기 노령연금(60세)과 비교해 보면, 76세가 손익분기점으로 정상 노령연금의 누적 연금 수령 금액이 훨씬 더 많아진다”면서 “고령화 추세를 고려하면 조기 노령연금은 시간이 흐를수록 정상 연금에 비해 더 불리해지므로, 정말 급한 경우가 아니라면 신중히 결정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