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 수급자 600만명 돌파가 사진 찍으면서 웃을 일인가요? 출산율 바닥에 연금 받을 사람이 늘어나는데, 오히려 두려워해야죠.” “젊은 사람들이 내는 돈으로 돌려막기하고 있는 건데, 기념 촬영까지 하면서 축하해야 하나요?”
지난 23일 연금공단의 국민연금 수급자 600만명 발표에 젊은층 민심이 들끓었다. 이날 연금공단은 “1988년 국민연금 도입 후 34년 만에 수급자 수가 600만명을 돌파했다”고 자축했다.
연금을 지급하는 공단 입장에선 당연히 홍보해야 할 일이었지만, 젊은층은 강제로 거둬간 국민연금이 빠른 시일 내에 고갈될 수 있다며 불안해 했다. 연금 수급자 수가 단 25개월 만에 100만명이나 늘었기 때문이다. 300만명에서 400만명으로 늘어나는 데는 56개월, 400만명에서 500만명이 되는 데는 42개월이 걸렸는데, 주기가 굉장히 빨라졌다.
연금 전문가 A씨는 “물이 빠지지 않으면 저수지에 물이 계속 차는 것처럼, 출생아 수가 가장 많았던 71년생(102만명)이 연금을 받을 때까지 수급자 수는 매년 늘어날 것”이라며 “적게 내고 많이 받도록 설계된 현행 제도를 고치지 않으면 미래 세대의 부담은 더욱 커진다”고 말했다.
젊은 세대는 수급자 600만명 돌파 기념 사진 속의 ‘경축 현수막’을 ‘연금 고갈 빨간불’이라고 읽는다. 30대 직장인 이모씨는 “돈은 내지 않고 죽을 때까지 연금을 받게 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는 건데 이게 축하할 일이냐”면서 “기성 세대는 연금 잔치를 벌이는데, 개혁은 젊은 사람들 보험료 인상으로 해결하려고 한다”고 분노했다.
91년생 최모씨는 “지금까지 낸 돈을 돌려달라는 소리는 안 할 테니 앞으로 국민연금을 안 내게만 해 달라”면서 “합리적이고 지속가능하게 개혁되지 않는 한, 국민연금에 돈을 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의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2020년 815만명에서 2024년에 1000만명을 돌파한다. 전체 인구에서 고령인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2020년 15.7%에서 2050년 40.1%로 크게 늘어난다.
국민연금에 대한 젊은 세대의 불신이 최악으로 치닫은 지금, 연금 개혁을 국정 과제로 삼은 윤석열 정부는 앞으로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윤 대통령은 지난 16일 국회 첫 시정연설에서 “지속 가능한 복지제도를 구현하고 빈틈없는 사회 안전망을 제공하려면 연금 개혁이 필요하다”면서 “정부와 국회가 초당적으로 협력해야만 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시기적으로 지금이 연금 개혁에 나설 수 있는 ‘골든타임’이라고 입을 모은다. 다음 달 지방선거가 끝나면 내후년 4월(국회의원 총선)까지 전국 단위 선거가 없기 때문이다. 5년마다 실시되는 국민연금 건강검진(재정계산)도 2023년에 예정돼 있는데, 기금 소진 시기가 이전보다 훨씬 빨라졌다는 결과가 나오면 연금 개혁의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연금 전문가 A씨는 “연금은 워낙 이해 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다 보니 그 어떤 정부도 감히 손을 대지 못했던 것”이라며 “온 국민이 관심 갖는 이슈이기 때문에 쉽진 않겠지만 연금 고갈 충격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는 길을 서둘러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에겐 일본이라는 수정구슬이 있다. 일본 역시 우리와 똑같이 노·소(老少) 갈등을 겪었다. 연금을 낼 젊은 사람은 갈수록 주는데, 연금을 받아갈 노인 세대는 빠르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오래 미뤄뒀던 연금개혁 숙제는 지난 2004년 고이즈미(小泉) 정권이 해냈다. 연금재정이 곧 파산할 것이라는 절박감이 세대 화합의 기폭제가 됐다. 고령층은 “구멍난 재정을 보면서 권리만을 외칠 수는 없었다”며 양보했고, 젊은층은 “부담은 늘겠지만, 연금 개혁으로 우리도 받을 수 있다”며 안심했다.
일본 연금 개혁의 기본 골격은 ‘더 내고 덜 받는’ 것이었다. 극심한 진통 끝에 연금 개혁을 하긴 했지만, 예상보다 훨씬 빠른 고령화·저출산 때문에 일본은 아직도 제도를 손질하고 있다.
이웃나라 일본의 연금 개혁에서 우리는 무엇을 엿볼 수 있을까. 작년 말 일본 후생노동성 연금국이 펴낸 자료를 토대로, 고령화 한국 사회가 겪게 될 일들을 정리해 봤다(2편으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