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영국 BBC뉴스는 ‘왜 일본은 저출산 국가가 됐나(Why does Japan have so few children)’란 제목의 뉴스를 유튜브에 올렸다. 2분 45초 밖에 되지 않는 짧은 영상인데도 단 2주 만에 조회수가 100만뷰를 돌파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폴란드, 나이지리아 등 지구촌 곳곳에서 올린 시청 소감 댓글은 4000개가 넘었다.

BBC뉴스는 일본에서 맞벌이 부부가 늘고 있지만, 일과 양육을 양립하기 어렵다는 생각에 여성들이 출산을 포기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일본은 미국보다 경제 활동을 하는 여성이 훨씬 많지만, 일본 남성의 가사노동 시간은 하루 41분으로, 미국 남성(166분)에 비해 크게 낮다는 점도 저출산 원인으로 꼽혔다(한국 남성의 가사노동 시간은 하루 49분으로, 일본과 막상막하다).

지난해 한국 합계출산율은 0.81명. ‘인구재앙’이 현실화됐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사망자가 출생아보다 많아 인구가 자연 감소한다는 ‘데드크로스’ 현상은 2년째 이어지는 중이다./그래픽=이연주 조선디자인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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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인 일론 머스크도 최근 일본의 인구 감소 현상을 언급했다. 그는 지난 8일 트위터에 “일본은 출생률이 사망률을 넘는 변화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결국 존재하지 못할 것(eventually cease to exist)”이라고 경고했다. 이른바 일본 소멸론이다. 그는 지난해 일본 인구가 1억2550만2000명으로, 전년보다 64만4000명 줄었다는 통계를 인용했다.

평소 저출산과 인구 감소 문제에 관심이 많은 머스크 CEO는 “일본 소멸은 세계에 있어서 매우 큰 손실”이라며 일본의 급격한 인구 감소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하지만 일각에서 ‘경솔하고 부적절한 글’이라는 논란이 일자 해당 트윗을 삭제했다.

지난 8일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자신의 트위터에서 "당연한 일을 얘기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출생률이 사망률을 웃도는 변화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일본은 어차피 존재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트위터

◊한국·대만·싱가폴보다는 높은 일본 출산율

일본이 저출산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한 때는 지난 1990년이었다. 1989년의 출산율이 1.57명으로 전쟁 이후 최저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일본 언론들은 이를 ‘1.57 쇼크’라고 부른다. 1.57 쇼크 이후 위기감에 휩싸인 일본 정부는 우리보다 훨씬 앞선 지난 1995년 첫 저출산 대책(엔젤플랜)을 내놓았다.

전세계가 주목하는 일본의 인구 절벽 문제. 그런데 사실 일본의 저출산 상황은 한국, 싱가폴, 대만, 홍콩, 마카오 등 다른 아시아 주요국과 비교하면 아주 심각한 것은 아니다. 영국 잡지 이코노미스트는 최신호(19일)에서 일본 출산율이 오히려 다른 아시아 주요국에 비해 높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코노미스트는 “2020년 기준 일본 출산율은 1.3명으로, 역사상 최저 수준이지만 그래도 다른 아시아 주요국과 비교하면 높은 편”이라며 “홍콩, 마카오, 싱가폴, 한국, 대만 등의 출산율은 0.8~1.1명에 그쳤다”고 분석했다. 잡지는 “중국 출산율은 1.3명으로 일본과 같았지만, 중국 출생아수가 2020년 1200만명에서 지난해 1060만명으로 11% 줄었기 때문에 뒤집힐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같은 기간 일본 출생아 수는 3% 감소에 그쳤다.

아시아 주요국의 1990년과 2020년 출산율을 비교한 그래픽. 한국 출산율은 0.84명으로, 전세계 최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유일한 출산율 0명대 국가로, 다른 국가와의 차이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이코노미스트

이코노미스트는 아기 낳기를 꺼려하는(baby-averse) 아시아 나라들이 3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고 분석했다. 첫 번째는 혼외 출산에 대한 거부감이다. 한국의 경우 미혼 여성 출산 비중은 2% 안팎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가장 낮다. 중국 역시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 아이를 낳으면, 각종 정부 혜택에서 제외되어 불리하다. 반면 부유한 서구 국가에선 결혼과 출산이 분리되어 있어서 미혼 여성 출산 비율이 30~60%에 달한다.

두 번째는 치열한 입시 경쟁과 과도한 사교육비다. 일본에선 아이가 15살이 되었을 때 중요한 시험을 치르게 되는 반면, 중국 상하이나 싱가폴은 아이가 초등학생일 때부터 시험 준비를 해야 해서 가계 교육비 부담이 장기간 이어진다.

전례없는 수준이다. 지난해 출생아 수는 1970년 관련 통계 작성 이래 가장 적은 26만500명이었다. 1970년 101만명에 비해 약 4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그래픽=이연주 조선디자인랩 기자

◊이코노미스트 “출산 기피는 집값 때문”

마지막은 치솟은 집값. 이코노미스트는 집값이 젊은 부부의 출산을 가로막는 가장 큰 요인이라고 지적했다(The cost of housing may be the biggest factor). 미국에는 집값이 1만달러 오르면 유주택자의 출산율이 5% 오르는 반면, 무주택자의 출산율은 2.4% 하락한다는 내용의 연구도 있다.

전세계 최저 출산율(0.81명)인 한국은 어떨까. 작년 연말 기준 서울의 ‘연소득 대비 주택 가격 비율(PIR)’이 소득과 주택 가격이 중간 수준인 3분위를 기준으로 했을 때 19였다. PIR은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서 내집 마련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PIR이 19라는 것은, 중산층이 19년 동안 월급을 모아야 중간 집을 마련할 수 있다는 의미다. 2017년 말엔 11.5였는데 크게 올랐다. 서울 출산율이 0.63명으로, 전국 17개 시도 중에서 가장 낮은 것도 납득이 간다. 한편, 일본의 PIR은 7.5 수준으로 OECD 국가 중 최저 수준이었다.

이코노미스트는 “일본은 다른 나라에 비해 주택 재건축이 상대적으로 쉬워서 도쿄 지역의 주택 공급은 인구보다 더 빠른 속도로 증가한다”면서 “일본 목조 주택은 22년 정도 지나면 세무 당국이 가치를 0원으로 간주하므로 집주인들은 구축을 헐고 새 집을 짓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경제학자들 사이에선 아직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도심 인기 지역에서의 주택 공급이 집값 상승을 상당 부분 억제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잡지는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