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세 부담 때문에 기업이 제대로 운영될 수 없다. 기업이 영속성을 갖고 잘 운영돼야 근로자 고용 안정도 보장된다”(윤석열 대통령, 작년 말 기업인간담회에서)

윤석열 정부가 추진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속·증여 감세 정책에 시장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민간 중심의 경제 성장을 내건 윤 정부는 납세자의 세금 부담을 적정 수준으로 조정해 현실화하겠다는 방침이다.

윤 정부의 초대 경제 사령탑인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국제적으로 높은 세 부담과 세대 간 자본 이전을 통한 소비 여력 확충, 물가 상승률을 고려해 상속세 적정화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면서 상속세 개편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추 부총리는 국회의원 시절에도 상속·증여세 관련 입법 활동을 활발히 펼쳤다.

세무 전문가들은 지난 1996년 상속세법 개정 이후 26년째 그대로인 상속세 공제 한도(10억원)부터 현실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현재 상속세(일괄공제)는 배우자 공제 5억원을 포함해 10억원 초과분에 대해 과세되고 있다. 또 자녀 1인당 5000만원까지인 증여세 면세 한도도 8년째 그대로인데(2014년 3000만원→5000만원), 이를 1억원으로 상향 조정하는 정책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020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별세 이후 한국의 상속세율이 과도하다는 국민 여론이 높아졌다. 경제 규모가 커졌지만 상속세 과세 기준은 26년째 그대로여서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수년간 자산 상승으로 상속세 신고자도 늘고 있다./그래픽=권혜인 조선디자인랩 기자

물가 상승에 맞춰 상속세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은 오래 전부터 끊임없이 나왔다. 하지만 ‘부자들 편만 든다’는 비난을 들을까 두려웠던 역대 정부는 모른 척 해왔다.

어쩌면 정부가 일부러 손질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정부가 과표 조정을 미루면서 상속세는 자연 증세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26년 전만 해도 상속세 과표 기준인 10억원은 중산층은 넘볼 수 없는 거액이었다. 당시 국세청이 거액 자산가를 대상으로 특별 세무조사를 했는데, 기준 금액이 10억원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올해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 가격이 13억원에 육박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납세자 부담이 굉장히 커졌다고 볼 수 있다.

1996년 8월 2일 조선일보 종합 1면. 당시 재정경제원은 1950년 제정 이후 처음으로 상속세법을 손질했다. 배우자와 자녀가 함께 상속받을 때 상속재산총액 10억원까지는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이다./조선DB

자산가들의 세금으로만 생각해 왔던 상속세는 이제는 보통 사람들에게도 해당되는 세금이 되어가고 있다. 지금 당장은 상속세 과세 대상이 아니라고 해도 상속이 수십년 뒤에 일어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현재 보유하고 있는 자산 가치가 커지면서 상속세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

‘상속세=소수 부유층 세금’이라는 공식은 이미 깨지고 있다. 17일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 2020년 기준 상속세 신고자 수는 처음으로 1만명을 돌파했고, 전체 사망자 내에서의 비중(3.78%)도 역대 최대치를 찍었다. 2020년 기준 상속세 세수는 4조2300억원으로, 5년 전(2조2600억)에 비해 2배 가까이 늘었다.

서울에 사는 60대 은퇴생활자 A씨는 “26년 전 상속세 면세 기준이 아직까지 그대로라니, 당시 3억원 하던 집이 지금 25억원이 됐는데 말이 되느냐”면서 “집 하나 갖고 살면서도 온갖 세금에 시달렸는데 죽어서까지 세금 때문에 괴롭힘을 당해야 하느냐”고 말했다.

우리나라 상속세와 관련한 논란은 여러가지가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세율이다. 작년 10월 나온 국회입법조사처 보고서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 상속세율이 제일 높은 곳은 일본(55%)이고, 우리나라는 그 다음으로 높은 50%다.

하지만 세무 전문가들은 한국의 상속세가 일본보다 더 가혹하다고 입을 모은다. 일본은 다양한 생전 증여 제도를 마련해 두고 있어 사실상 인별 상속세 부담은 낮다는 것이다<아래표 참고>.

17일 일본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 2020년 기준 일본의 사망자 수는 137만명이었다. 이 중 상속세 과세 대상이 된 사람은 약 12만명으로, 사망자 11명 중 1명꼴이었다. 1인당 평균 상속세액은 약 1737만엔(약 1억7306만원)이었다.

한국은 어떨까? 지난 2020년 기준 사망자 수는 30만4900명이었다. 이 중에서 상속세 과세 대상이 된 사람은 1만181명이었다. 비율로 따지면 3.3% 정도다. 전체 상속세액은 4조2300억으로, 1인당 평균 상속세액은 약 4억원이었다.

대형 증권사 세무팀장 A씨는 “상속세 명목세율(법정세율)은 일본이 55%로 한국(50%)보다 더 높아 세계 최고이지만 실질적인 세금 납부 세율을 뜻하는 실효세율은 한국이 더 높다”면서 “일본은 각종 공제가 한국보다 많아서 명목세율과 실효세율 간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2020년 기준 상속세 공제 한도가 1158만달러(약 148억원)다. 한도는 물가 상승률에 따라 조정되며 2021년부터는 1170만달러까지 높아졌다. 수퍼리치가 아니면 상속세가 거의 없는 셈이나 마찬가지다./그래픽=이연주 조선디자인랩 기자

작년 말 정부 자료에 따르면, 2020년 한국의 총 조세에서 상속·증여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2.8%를 기록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치(2019년, 0.4%)보다 7배 많다. 증가 속도도 빠르다. 2019년엔 비중이 2.2%였는데 1년 만에 0.6%포인트 늘었다. 상속세가 아예 없는 나라도 적지 않다. OECD 37개 회원국 중에 상속세가 비과세인 곳은 호주, 스웨덴, 오스트리아 등 15개국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