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인플레로 약세 흐름을 보이는 글로벌 증시에서 상대적으로 탄탄한 흐름을 보이는 증시가 있다. 바로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다.

25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의 타다울 지수(TASI)는 올 들어서만 19% 상승했다. 같은 기간 MSCI 글로벌 지수와 MSCI 이머징지수가 10% 가량 하락한 것과 비교하면 눈부시다.

고공행진한 원유 가격과 금리 상승이 사우디 증시를 밀어 올렸다. 사우디 증시는 은행 등 금융섹터 비중이 44%로 가장 높고, 그 다음은 소재(18.2%), 에너지(15.4%) 순이다.

알 라지 캐피탈은 증시 전망 보고서에서 “사우디 증시는 은행과 에너지주 비중이 높아서 인플레이션과 금리 상승이라는 이중고(double whammy)를 이겨내기에 매우 좋은 구조”라며 “펀드매니저 51명을 대상으로 한 자사 설문에서도 올해 사우디 증시가 다른 지역보다 좋은 성과를 낼 것으로 기대한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작년 말부터 연일 우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증시(타다울 지수). 상장종목 수는 211개 정도로 많지 않지만 전세계 시가총액 2위인 아람코가 상장돼 있다./블룸버그

사우디 증시에서 눈여겨 봐야 하는 상장사는 아람코(Aramco)다. 아람코는 지난 2019년 12월에 상장한 국영 석유기업으로, 지분 94%를 정부가 소유하고 있다. 올해 장중 46리얄까지 오르면서 상장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왕관의 보석(Crown jewel)’이라고 불리는 아람코는 사우디 왕실의 권좌를 유지하는 경제적 기반으로 여겨진다.

아람코는 2019년 상장 당시 공모가(32리얄)로만 계산해도 시가총액이 1조7000억달러(약 2112조원)에 달해, 당시 전세계 시총 1위 기업이었던 애플을 누르고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이듬해 코로나로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지면서 유가가 급락했고, 아람코 시총 순위도 뒤로 밀리며 체면을 구겼다.

그런데 올해는 상황이 정반대다. 아람코는 올해 시총이 2조2910억달러(2856조원)까지 불어나면서 세계 1위인 애플(2조6400억달러)을 바짝 뒤쫓고 있다(이날 기준 코스피 시총은 2090조원). 참고로 전세계 시총 3위는 마이크로소프트(MS), 4위 알파벳(구글), 5위는 아마존이다.

‘가만히 앉아 땅만 파는데 돈벼락’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아람코 실적도 엄청나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아람코는 작년 순이익이 1100억달러(약 138조5000억원)에 달했다. 코로나 대유행이 시작된 2020년 아람코의 순이익은 490억달러 수준이었는데, 124% 증가했다. 삼성전자 지난해 순이익(39조2000억원)의 3배가 넘는다. 아람코는 올해 배당금으로는 750억달러(약 93조5000억원)를 풀 계획이다(삼성전자 지난해 배당금은 9조7000억원).

증권업계 관계자는 “아람코는 상장 당시 전국민의 4분의 1인 500만명이 공모에 참여해 ‘국민주’ 반열에 올랐는데, 상장 당시에 했던 약속대로 5년간 750억 달러 규모의 배당을 유지하고 있다”면서 “아람코 주주인 사우디 국민들은 주가 상승과 고배당이라는 1석2조 효과를 누리는 셈”이라고 말했다.

아람코는 지난해 순이익 규모는 약 137조원으로, 삼성전자(51조6000억원)보다 두 배 이상 많다. 사진은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의 송유관./로이터

모건스탠리는 사우디 증시 관련 보고서에서 “유가 급등으로 사우디 정부의 재정 상황이 매우 좋아지는데,인플레 상황에서 국민들이 잘 버텨낼 수 있도록 각종 재정 지원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런 정부 정책은 사우디 증시 호조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현재 한국에서는 사우디 증시에 직접 투자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미국 증시에 상장되어 있는 사우디 아라비아 관련 상장지수펀드(ETF)에 투자하는 것이 대안이다. iShares MSCI Saudi Arabia ETF(티커명 KSA)와 Franklin FTSE Saudi Arabia ETF(티커명 FLSA) 등이 대표적이다. KSA가 FLSA보다는 거래가 활발한데, 지난 18일 51.06달러까지 오르면서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트위터의 주요 주주이자 장기 투자자라고 밝힌 사우디아라비아의 알왈리드 빈 탈랄 왕자. 중동 지역의 최고 부호인 그는 머스크의 트위터 인수 제안에 반대했다.

올해 글로벌 증시 곳곳에서는 오일머니의 목소리와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최근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트위터 인수 의사를 밝혔을 때도 사우디 주주가 바로 반격에 나섰다.

트위터 지분 4.4%를 보유하고 있는 사우디 아라비아의 알왈리드 빈 탈랄 왕자는 지난 14일 트위터에 “머스크가 제안한 인수 가격 54.2달러는 트위터의 본질적인 가치에 미치지 않는다”며 머스크 제안에 반대 의사를 밝혔다.

사우디의 실질적인 통치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그가 회장으로 있는 국부펀드인 PIF는 왕세자가 주도하는 여러 대형 국책 사업의 돈줄 역할을 한다./연합뉴스

사우디아라비아의 실세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이끄는 국부펀드 ‘퍼블릭인베스트먼트펀드(PIF)’의 왕성한 투자도 주목받고 있다.

지난 2월 일본 증시에 상장된 넥슨 지분을 5% 가량 보유하고 있다고 처음 밝혔던 PIF는 3~4월에도 넥슨 지분을 4.12% 더 매입했다. PIF는 총 9.14%를 보유해 넥슨의 2대 주주에 올라섰다. 지분 확보에 쓴 돈은 약 2조4200억원. PIF는 올해 국내 증시에서는 엔씨소프트 지분을 9.26% 사들여서 김택진(12%) 대표에 이어 2대 주주에 올라섰다. 넷마블(8.9%)과 국민연금(8.4%) 지분보다 많다.

빈 살만 왕세자가 이끄는 PIF는 현재 약 5000억 달러의 자산을 운용하고 있다. PIF에 대한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지난 2월에도 사우디 정부는 아람코 지분 4%를 PIF에 800억달러(약 99조원) 규모로 양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