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국내 증시에 데뷔한 129개 상장사 중 공모가 대비 주가 상승률이 가장 높았던 회사는 ‘자이언트스텝’이다. 자이언트스텝은 영상 콘텐츠 제작 기업으로, 지난해 3월 24일 상장했다.
2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공모가 5354원(증자 후 수정주가)에 상장한 자이언트스텝은 상장 후 1년 동안 842% 올랐다. 자슬라(테슬라를 뺨치는 높은 상승률)라는 애칭이 붙은 것이 이해가 될 정도의 저 세상 상승률이다. 2위 상승률(상장 후 176%)을 기록한 피엔에이치테크와 비교해도 차이가 크다.
코스닥 상장사인 자이언트스텝은 매출 331억원, 영업손실 29억원으로 적자 기업이다. 하지만 미래 성장성에 대한 기대감에 상장 후 주가는 연일 올랐고, 지난해 11월엔 시가총액이 1조9000억원에 육박하기도 했다(농심 시가총액이 약 1조9000억원이다).
특히 자이언트스텝은 메타버스 테마주로 개인들에게 인기였다. 작년 11월엔 장중에 주가가 8만6000원까지 급등했다. 네이버가 자이언트스텝 지분 6.6%를 보유한 2대 주주이고 하이브(BTS 소속사)가 지분 투자를 한다는 점이 개인 투자자들의 투심을 자극했다.
누가 봐도 2021년 최고의 신규 상장주였던 자이언트스텝. 그런데 요즘 자이언트스텝 소액 주주들은 “대주주 일가가 지분을 던지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나와야 한다”거나 “적자 회사 대주주가 주식 팔아서 먹튀하고 큰돈 챙겨서 떠났다”며 분노하고 있다. 왜 이런 말이 나오는 걸까.
상장 후 1년이 지나 대주주 보호예수(일정 기간 주식 의무 보유)가 풀린 지난달 28일, 자이언트스텝 최대 주주인 하승봉 대표의 배우자인 강연주씨는 시간외 매매로 주식 87만3362주를 처분했다. 주당 4만6965원으로, 금액으로 따지면 410억원 어치다. 강씨 지분은 13.5%에서 9.5%로 4%포인트 줄었다. 강씨 뿐만 아니라, 안민희 본부장(CFO)과 오해숙 총무이사도 각각 16억원 어치 주식을 현금화했다.
최대주주의 배우자와 임원진이 442억원을 현금화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당일, 자이언트스텝 주가는 전날보다 11.4% 급락한 4만4750원에 마감했다. 지난해 12월 유상증자 당시에 이미 대규모 현금화를 했던 대주주 가족과 경영진이 또다시 현금 챙기기에 나선 것이 악재였다.
자이언트스텝은 상장한 지 9개월 만인 작년 12월에 985억원 규모의 유상 증자(주당 7만8100원)를 진행했었다. 회사의 미래가 달렸다면서 결정한 유상증자였지만, 정작 최대주주는 배정물량의 30%만 참여했고, 최대주주 배우자인 강씨 등을 비롯한 임원진은 대거 유상증자에 불참했다. 자이언트스텝 경영진이 유상증자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인 신주인수권을 팔아 손에 쥔 현금은 약 193억원에 달했다. 최대주주 배우자인 강씨는 약 53억원을 현금화했다.
자이언트스텝 주주인 A씨는 “반포 사모님이 주식을 처분한 돈으로 땅을 사러 다닌다는 루머가 여의도에 돌고 있다”면서 “개인들은 적자 회사라도 경영진 하나 믿고 투자하는 건데 이렇게 대주주가 도망갈 생각만 하고 있다니 뭘 믿고 투자해야 하느냐”고 비난했다. 22일 자이언트스텝 주가는 3만3550원으로 마감해, 대주주 일가의 지분 처분 공시 이후 34% 급락했다.
공모주 투자 전문가 박현욱(필명 슈엔슈)씨는 “한국 증시는 횡령, 먹튀 등 악재가 너무 많다 보니 투자하면 안 된다는 얘기까지 나오는 것”이라며 “자이언트스텝은 적자 기업이라서 재무제표도 나쁜데, 오로지 메타버스의 성장성만 믿고 투자했던 개미들만 손해를 보게 됐다”고 말했다.
박씨는 이어 “상장 당시 시총 1000억원짜리가 지금은 7000억원이 넘는데, 보호예수 1년이 풀려 지분을 처분할 시점을 기다리면서 유·무상 증자를 하고 기업을 키워온 것처럼 보인다”면서 “상장 후 대주주 먹튀 사태로 개인 투자자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거래소가 신규 상장주의 대주주 일가에 대해서는 보호예수 기간을 지금보다 더 길게 늘려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