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브랜드 H&M이 올 봄 국내 아이돌 그룹 'ITZY'와 내놓은 복고풍 컬렉션./H&M

최신 유행에 맞춰 옷을 제작해 싼 가격에 판매하는 글로벌 패스트패션 브랜드들이 인플레이션(물가상승)에 백기를 들고 있다.

패스트패션 업체들은 저마진 제품을 많이 팔아서 이익을 남기는 박리다매 방식이기 때문에 가격 인상은 마지막 보루다. 소비자들이 싸게 사서 적당히 입고 빨리 다른 옷을 사줘야 하는데, 가격을 올리면 매출 직격탄을 맞을 수 있어서다. 하지만 원재료 가격과 물류비, 인건비 등 생산 비용이 모조리 오르면서 결국 가격 인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지난 달 31일 글로벌 패스트패션 브랜드 중 하나인 H&M의 헬레나 헬메르손 최고경영자(CEO)는 투자자 설명회에서 “원재료 가격과 물류 비용 상승 등으로 이미 경쟁업체들이 가격을 올리기 시작한 것을 알고 있다”면서 “우리도 역시 올해 가격 조정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나라별로 가격 인상은 다르게 진행할 예정이며, 경쟁업체보다 인상폭은 크지 않게 할 것”이라며 “기본 의류 아이템은 가급적 가격을 올리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H&M의 가격 인상 방침에 주가는 부정적으로 반응했다. 이날 스톡홀름 증권 거래소에서 H&M은 전날보다 13% 하락한 126.18크로나(SEK)에 마감했다. 1년 전만 해도 H&M 주가는 220크로나까지 급등했지만 유럽의 패션 친환경 규제, 중국의 불매운동 등이 겹치면서 주가가 흐르더니 지금은 2년 전 코로나 당시와 비슷한 수준으로 돌아갔다.

경제지 포브스는 “H&M 같은 패스트패션 브랜드들의 고객들은 가격에 예민한 소비자들인데, 이미 인플레로 각종 생활비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 관전 포인트”라고 지적했다.

최근 1년 동안의 스웨덴 H&M 주가 추이. 1년 동안 35% 하락했다. 1일 종가는 130.58크로나.

또다른 패스트패션 브랜드인 일본 유니클로 역시 지난 2월 일부 상품의 가격을 500~1000엔씩 인상했다. 신생아용 오버롤을 종전 990엔에서 1500엔으로, 신축성 좋은 스마트앵클팬츠를 2990엔에서 3990엔으로 올렸다.

유니클로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는 패스트리테일링의 야나이 타다시(柳井正) 회장은 “재료 가격과 해상 운임이 5~10배씩 올라 역대 최고 수준”이라며 “기업을 지켜야 한다는 의미에서 가격 인상을 할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

일본 닛케이신문에 따르면, 의류에 사용되는 폴리에스테르 장섬유 가격은 작년 말 1kg당 1.45달러 정도로, 전년 동월 대비 32% 상승했다. 또 폴리에스테르의 주원료인 고순도 테레프탈산과 부원료인 모노에틸렌글리콜도 작년 10월까지 1년간 가격이 70% 뛰었다.

그런데 시즌별로 500여개의 신제품을 내놓는 유니클로도 전제품 가격을 올리진 못하고, 10여개 품목 인상에만 머물러 있다. 가격 인상으로 인한 고객 이탈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2014~2015년 유니클로는 원가 상승과 엔저 등의 이유로 춘추 의류를 평균 10%씩 올렸는데, 매출이 급격하게 줄어들어 결국 2016년에는 가격을 다시 내릴 수 밖에 없었다.

유니클로가 러시아 사업을 일시 중단했다. 사진은 지난달 10일 러시아의 아트리움 쇼핑 센터 내의 유니클로 매장 앞에 줄서 있는 고객들. 지난 2010년 러시아에 진출한 유니클로는 러시아 전역에 50개 매장을 두고 있다./유니클로

그래서인지 오자카키 다케시(岡﨑健) 패스트리테일링 최고재무책임자(CFO)는 “기업이 스스로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만으로는 손실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면서도 “가격 인상은 소비자가 수용할 수 있는 상품에 한정하겠다”고 밝혔다. 일본 현지의 유니클로 점포 매출이 지난 2월까지 7개월 연속 전년 대비 감소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가격 인상 확대는 추이를 지켜보며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일본은 한국보다 국민소득이 높지만 옷이나 신발 지출은 검소한 편이다. 일본 총무성이 최근 발표한 2021년 일본 가계 조사에 따르면, 2인 이상 가구의 ‘의류·신발’ 소비지출은 월평균 9063엔(약 9만원)으로, 8년 연속 감소하고 있다(참고로 작년 한국의 1인 이상 가구의 ‘의류·신발’ 소비지출은 월 평균 12만6000원꼴이었다).

최근 1년 동안의 일본 패스트리테일링(유니클로) 주가 추이. 1년 동안 31% 하락했다. 1일 종가는 6만2270엔이었다.

한국 의류업체들도 인플레 압박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 이미 국내 최대 의류 도매 시장인 동대문시장이 7년 만에 가격을 10% 안팎 올렸다. 원자재 가격이 오르고 인건비가 올라도 마진을 줄여가며 제품값 인상을 억제해 왔는데, 더 이상은 버티지 못하게 된 것이다. 동대문 시장이 도매 가격을 올렸기 때문에 이곳에서 옷을 떼다 파는 인터넷 쇼핑몰과 소매점들도 줄줄이 소비자 판매가를 올릴 전망이다.

50대 주부 이모씨는 “후드티를 사려고 시장에 나갔는데 괜찮다 싶으면 5만원 이상이어서 깜짝 놀랐다”면서 “물가가 올랐다고 해도 너무 비싼 것 같고 이미 식비와 주거비, 세금 부담이 커서 옷은 앞으로 두 벌 사 입을 것 한 벌 사 입고, 1년 입을 옷은 2년씩 입으려고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