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인상기에 ‘피란처’로 주목받았던 탄소배출권 상장지수펀드(ETF)가 전쟁의 여파까지는 피해가지 못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원자재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유럽 지역에서 물가가 상승하는데 경기는 침체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 공급난과 경기 침체로 유럽 내 공장 가동이 줄어들 경우 탄소배출권에 대한 수요도 같이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 속에 이 ETF가 주로 투자하는 유럽 탄소배출권 선물 가격은 급락세를 보이고 있다.

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달 25일부터 지난 2일까지 3거래일 동안 ‘SOL 유럽탄소배출권선물S&P ETF’ 가격은 23.7% 하락했다. 유럽 탄소배출권에 투자하는 또 다른 ETF인 ‘KODEX 유럽탄소배출권선물ICE’는 23.6% 하락했다.

유럽뿐 아니라 미국 탄소배출권 등에도 투자하는 글로벌 탄소배출권 ETF도 약세를 보이고 있다. ‘HANARO 글로벌탄소배출권선물ICE’(-15.4%)와 ‘SOL 글로벌탄소배출권선물IHS’(-16.3%)는 두 자릿수 하락률을 기록했다. 이 4종목은 모든 ETF 중에서 ‘KINDEX 러시아 MSCI’(-30.9%) 다음으로 많이 하락했다.

그래픽=송윤혜

◇금리 인상기 ‘효자’였는데…

올 들어 우크라이나 긴장이 고조되기 전까지는 유럽 탄소배출권 선물 가격이 상승세를 이어갔다. 기후 변화 대응을 위해 앞으로 기업에 할당된 배출권이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탄소배출권 선물 가격도 올랐던 것이다. 탄소배출권은 기업별로 할당된 탄소 배출 권리다. 배정받은 양보다 탄소 배출이 적었다면 잉여분을 내다 팔 수 있고, 반대로 할당량보다 더 많이 배출했다면 탄소배출권을 구입해야 한다.

탄소배출권 ETF의 강세는 올해 금리 상승으로 글로벌 증시가 약세를 보이면서 더욱 돋보였다. 금리 인상 위험에 노출된 주식·채권과 대비됐던 것이다. 올 들어 지난달 24일까지 코스피가 11% 하락했는데, SOL 유럽탄소배출권선물S&P는 18.1% 올랐다. KODEX 유럽탄소배출권선물ICE도 17.5% 상승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상황이 달라졌다. 투자 정보 사이트 인베스팅닷컴에 따르면, 유럽 탄소배출권 선물 올해 12월물 가격은 지난달 25일 1t당 87.77유로에서 지난 2일 67.72유로로 22.8% 하락했다. 유럽의 경기 침체 가능성이 일차적으로 가격을 떨어뜨린 원인이지만,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원전’ 등 대체 에너지원이 부각될 수 있다는 우려도 반영됐다. 박수민 신한자산운용 ETF운용센터 부장은 “탈원전 계획을 갖고 있던 독일 등도 에너지 부족으로 관련 계획을 연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화석 연료의 대체재인 원전이 부각되면서 탄소배출권에 대한 투자 심리가 움츠러든 측면이 있다”고 했다. 러시아산 천연가스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던 유럽 국가들이 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리는 정책을 추진할 경우에도 탄소배출권 수요가 감소할 수 있다.

하지만 앞으로도 세계 각국이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탄소배출권 제도를 활용할 것이기 때문에 탄소배출권은 여전히 투자할 만한 자산이라는 의견도 있다. 삼성자산운용은 “예상하지 못한 리스크로 탄소배출권 가격이 조정을 받고 있는 것이지 배출권의 근원적인 가치가 훼손된 것은 아니다”라며 “현재 가격대가 충분히 매력적인 구간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고 했다.

◇사이버 보안 ETF는 ‘상승세’

전쟁 여파로 가격이 오르고 있는 ETF도 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의 TIGER 글로벌사이버보안 INDXX는 지난달 25일부터 지난 2일까지 가격이 16.2% 상승했다. 이 ETF는 사이버 보안 분야 글로벌 대표 기업에 투자한다. 안 그래도 코로나 사태 이후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정부와 기업 차원의 사이버 보안에 대한 투자가 중요해졌는데,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로 관심이 더 커진 것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글로벌 사이버 전쟁으로 확대된 상태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해커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자, 세계 각지의 해커들이 러시아 정부와 석유 기업, 은행 등을 상대로 사이버 공격에 나섰다. 러시아도 반격에 나서면서 “러시아의 사이버 공격이 우크라이나 외 다른 국가를 대상으로 진행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김남호 미래에셋자산운용 글로벌ETF운용팀장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국가를 초월한 ‘글로벌 사이버 전쟁’의 첫 사례로 부각되면서 사이버 보안의 중요성이 더욱 주목받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