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국과 미국 증시에 상장한 새내기 주(株)들이 올 들어 동반 약세를 보이고 있다. 신규 상장한 기업들 대부분은 현재 실적보다는 미래 성장성을 보고 투자하는 ‘성장주’여서 금리 인상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금리가 오르면 현재 가치로 환산한 기업의 미래 가치가 작아지기 때문에 성장주의 투자 매력이 줄어들게 된다. 전기차 업체 루시드 등 지난해 미국 증시에 상장한 ‘새내기 주’ 중에는 서학개미(해외 증시에 투자하는 국내 개인 투자자)가 많이 보유한 종목들이 상당수여서, 올해 주가 하락으로 손실을 보고 있는 국내 투자자들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코스피 시장에 상장한 게임 기업 크래프톤은 올 들어 지난달 28일까지 주가가 35.9% 하락했다. 지난달 28일 종가 29만5000원은 크래프톤의 공모가(49만8000원)보다 40.8% 낮은 수준이다. 미국 뉴욕 증시에서도 메타버스(3차원 가상세계) 게임 기업인 로블록스 주가가 올 들어서만 50% 하락했다. 서학개미들의 선호 종목인 전기차 기업들의 주가도 20~30% 하락한 상태다.
◇새내기 BBIG 주식 수난시대
지난해 국내 증시에 상장한 대표적인 주식들은 모두 BBIG(배터리·바이오·인터넷·게임) 업종의 주식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BBIG 업종은 ‘미래 먹거리’라고 불릴 만큼 앞으로 한국 경제를 이끌어갈 산업으로 분류되지만, BBIG 주식은 대표적인 성장주라 금리 인상기에는 주가가 약세를 보일 수밖에 없다.
지난해 상장한 백신 개발 및 위탁생산 기업인 SK바이오사이언스는 올 들어 주가가 35.1% 하락했다. 배터리 소재 기업인 SK아이이테크놀로지도 26.5% 하락했다. 금융 기업이면서도 동시에 인터넷 기업의 속성을 지닌 카카오뱅크(-18.6%)와 카카오페이(-14.3%)도 올 들어 두 자릿수 하락률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코스피가 9.4% 하락한 것과 비교하면 주가 하락 폭이 컸던 편이다.
2020년부터 불기 시작한 공모주 열풍의 여파로 지난해 상장한 대형주에는 개미들의 투자가 많았다. KB국민은행이 윤주경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 기준 카카오뱅크의 개인 주주는 79만명 수준이었다. 하지만 현재 카카오뱅크 주가는 4만8000원으로 지난해 8월 기록한 최고가(9만2000원) 대비 47.8% 낮은 수준이다.
◇새내기주 투자한 서학개미도 ‘눈물’
지난해 뉴욕 증시에 상장한 대표 종목들에도 개미들의 투자가 몰렸다. 지난해 말 서학개미가 보유한 전기차 업체 루시드 주식은 9억1948만달러(약 1조1000억원)어치로 서학개미가 보유한 해외 주식 중 열째로 많았다. 그런데 올 들어 주가는 23.8% 하락했다. 또 다른 전기차 기업 리비안 역시 서학개미가 관심을 보인 종목이었다. ‘테슬라의 대항마’가 될 수 있다는 전망 속에 서학개미는 리비안 주식을 2억7389만달러 순매수(순매수 21위)했다. 올 들어 리비안 주가도 34.8% 하락했는데, 현재 주가 67.56달러는 상장 초기였던 지난해 11월 기록한 최고가(172.01달러)의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이다.
지난해 뉴욕 증시에 상장한 국내 전자상거래 기업 쿠팡도 지난해 서학개미 순매수 30위 종목이었는데, 올 들어 주가는 9.7% 하락했다. 현재 쿠팡 주가(26.52달러)는 지난해 3월 기록한 최고가(50.45달러)의 절반 수준이다. 지난해 서학개미 순매수 31위였던 가상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 주가도 올 들어 24.4% 하락했다.
서학개미들의 고전은 앞으로 상당 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올 들어 미국 국채 금리 등 금리가 대부분 상승한 가운데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는 가파른 물가 상승에 대응하기 위해 기준금리 인상 등 유동성 축소 조치를 예고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러시아에 대한 제재가 본격화되면서 유가나 곡물 가격 상승이 물가 상승을 자극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통화 긴축 정책으로 돌아선 연준 등 각국 중앙은행들이 경기 침체에 대응하기 위해 정책 기조를 바꾸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는 전망도 나온다. 결국 한국과 미국 새내기 주들의 동반 약세는 ‘금리 상승’과 ‘전쟁’이라는 악재가 사라지기 전까지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