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매출액 579억원인 회사인데, 자회사가 신규 수주로 1조6472억원 잭팟을 터뜨렸다면? 최근 매출액 대비 2845% 급증한 놀라운 공급 계약 공시가 등장하는 곳, 바로 대한민국 주식시장이다.

지난 2016년 한국 증시에 데뷔했던 중국 기업 로스웰은 2021년 주식시장 마지막 거래일인 30일 오후 아래와 같은 내용의 공시를 냈다. 로스웰의 자회사인 강소로스웰이 1조6472억원 규모의 중국 중흥통신(ZTE) 스마트홈 단말 시스템 공급 사업자로 단독 선정됐다는 내용이다. 사업 기간은 2022년 5월부터 5년.

지난해 12월 30일 올라온 로스웰의 전자공시.

로스웰은 자동차 전장부품 제조업체인 강소로스웰을 보유하고 있는 일종의 지주회사다. 본점은 홍콩. 칭다오대학 출신이라는 저우샹동씨 등 특수 관계인이 32.98%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공시가 나오자마자 30일 로스웰 주가는 바로 상한가로 직행했고 새해 첫 거래일인 3일에도 상한가로 마감했고 4일 오전 9시에도 상한가를 찍었다. 3연상(3거래일 연속 상한가)이다.

로스웰은 6년 전인 2016년 공모가 3200원에 상장했지만 주가는 계속 내리기만 하더니 10분의 1토막 난 상황에 거래되고 있었다. 지난달 29일 주가는 267원. 상장 이후 줄곧 실적이 나빠진 것이 주가 하락으로 이어졌다. 작년 로스웰은 매출 579억, 영업이익은 35억원 적자였다.

하지만 자회사의 1조원대 수주 공시로 주가가 치솟았다. 회사의 9월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자회사 강소로스웰은 아래 표에서 알 수 있듯, 차량용 전장 부품을 주로 만드는 곳이다.

로스웰의 9월 분기보고서의 일부.

로스웰 한국사무소 관계자는 “100% 자회사인 강소로스웰은 원래 차량용 단말기 등을 만들었지만 스마트홈 관련 가정용 단말기 개발에도 관심을 가져 왔다”면서 “계약 자체는 1조6000억원 안팎으로 공급 시점이 5월이라서 그때까지 생산시설 등을 새로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로스웰 관계자는 강소로스웰과 ZTE통신과의 계약 소식이 보도된 중국 ‘다수스쉰’발 뉴스 링크도 알려 주었다. 하지만 바이두(중국 유명 포털사이트)에서 이번 계약 관련 내용을 검색하면, 3일 기준 ‘다수스쉰’이라는 매체가 보도한 뉴스 한 건 말고는 없다. 또 다수스쉰이라는 매체가 보도한 기사는 바이두에서 2건만 검색된다.

최근 5년간 로스웰 주가 추이. 스키장 슬로프처럼 주가 그래프가 가파르다.

로스웰 수주 공시에 대해, 여의도 증권가 시선은 냉정하다. 최경진 한화투자증권 PB는 “중국 기업은 내부 사항을 정확하게 알기 어렵다”면서 “한국 증시에서 중국 기업이 거래 정지되거나 상장 폐지된 사례가 많은 만큼, 외국인이나 기관 수급에도 큰 의미를 두지 말고 매매를 한다면 신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그 동안 한국에 상장했다가 상장 폐지하고 짐 싸서 떠난 중국 기업은 13곳에 달한다. 지금도 현재 진행형인데, 코스닥 중국기업인 GRT가 이달 말까지 공모가(5000원)의 4분의 1 수준인 1237원에 공개 매수를 진행하고 있다. 자발적 상폐를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하지만 소액 주주들은 기업 청산가치 대비 공개 매수가가 너무 낮다면서 크게 반발하고 있다.

기업공개(IPO) 사정에 밝은 한 증권업계 인사는 “한국거래소가 국제화 일환으로 중국주 상장에 적극 나섰지만 다수 중국기업들이 허위 공시를 남발하고 먹튀하는 바람에 개인 투자자들은 폭망하고 국부(國富) 유출로 이어졌다”면서 “거래소 임원들은 성과급으로 수억씩 챙길 뿐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고 비난했다.

엘아이에스가 공시 철회를 하면서 본사 홈페이지에 올린 사과문.

지난 2020년 12월 왕개미연구소의 심층 보고서에 등장했던 ‘엘아이에스’도 코스닥에서 거래되는 중국 기업이다.

⇒관련 기사는 여기(태국선 계약한 적 없다는데, 미궁에 빠진 1조 마스크 수출)를 클릭하세요. 링크 연결은 조선닷컴에서만 실행됩니다.

엘아이에스는 매출 1400억원 가량인 디스플레이 장비업체인데, 지난 2020년 12월 갑자기 9820억원 어치 KF94 마스크를 태국의 더블에이 그룹에 수출한다는 내용의 공시를 냈다. 사업 다각화 차원에서 추진한 마스크 사업에서 대규모 계약을 따냈다는 것이다.

주당 8000원에 거래되던 주가는 수주 공시 전날 상한가를 찍으며 1만450원에 마감했고, 공시 당일에도 1만3550원까지 올라 52주 최고가를 찍었다. 공시를 믿은 개인들의 매수가 늘었고 거래도 폭발했다.

지난 2020년 12월 23일 엘아이에스의 공급계약 철회 공시.

하지만 1주일 뒤에 반전이 일어났다. 계약 상대방이라는 태국 더블에이 그룹이 1조원 마스크 물량 발주 사실을 부인했고, 급기야 회사 측에선 계약금 미입금을 이유로 단일판매·공급계약 체결 공시를 철회한 것이다. 호재 공시가 엎어지기 직전까지 기타법인의 순매도는 이어졌다. 호재 공시 전날인 15일부터 공시 철회를 한 23일까지 기타법인은 총 80억원 어치의 주식을 팔았다.

소액 개미들은 “인터넷 찌라시도 아니고 공시인데, 이것도 믿으면 안 된다는 것이냐”면서 “거래소가 직접 계약서 진위를 확인한 뒤에 공시를 했을 텐데 이렇게 허술하다니 황당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다면 호재성 계약은 없었던 일이라면서 1주일 만에 공시를 철회해 양치기 소년이 된 엘아이에스는 나중에 어떤 제재를 받았을까.

대규모 거래 계약을 철회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면서 소액 주주들은 패닉에 빠졌다. 하지만 불성실 공시에 대한 제재금은 단 3800만원이었다. 지난해 1월 19일 올라온 거래소 제재 관련 공시.

벌금 3800만원과 하루 거래 정지가 끝이었다. 공시에 나온 계약 금액(1조원)의 0.0038% 수준이다. 거래소에 따르면, 허위 공시를 낸 기업에 가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제재는 벌금 4800만원과 벌점 12점이다. 벌점은 15점 이상이어야 상장 적격성 실질 심사 대상이 된다.

소액 주주 김모씨는 “허위 공시를 내도 솜방망이 처벌을 받으니 한국 증시가 제대로 평가를 못 받고 신뢰도 떨어지는 것”이라며 “5000만원 정도 벌금만 내면 (한국에선) 주가 조작이 가능하다는 선례를 남기고 말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