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대는 운전 면허증 반납하고 대중교통 이용해야 하는 나이 아닌가요? 그러라고 지하철 요금도 무상 지원하는 거잖아요.”
“바퀴 달린 시한폭탄이 따로 없네요. 엄마와 아이를 동시에 잃게 하다니... 혼자 남은 엄마가 안쓰러워요.”
지난 22일 부산 수영구 수영팔도시장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를 둘러싸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이날 오후 80대 운전자가 몰던 차량이 돌진하면서 시장에 나들이 나왔던 60대 할머니와 18개월 손녀가 함께 숨졌다. 사고를 낸 80대 운전자는 브레이크를 밟았는데도 차량이 빠르게 질주했다면서 급발진을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안타까운 교통사고 사망 소식을 접한 시민들은 정부가 고령 운전자 관련 제도를 시급히 재정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노화로 신체 능력뿐만 아니라 판단력까지 떨어지는 고령 운전자 수는 앞으로 계속 늘어날 텐데, 이로 인한 교통사고 확률을 낮출 수 있는 정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는 지난해 기준 약 368만명이지만, 2025년에는 498만명으로 130만명 가량 늘어날 전망이다.
이웃나라 일본도 고령 운전자가 일으킨 교통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어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특히 지난 2019년 도쿄 이케부쿠로(池袋)에서 88세 고위 전직관료가 횡단보도를 건너던 모녀를 숨지게 한 사고는 파장이 컸다.
당시 31세 젊은 아내와 어린 딸을 잃은 남편은 기자 회견장에서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가족 두 사람을 한꺼번에 잃고 눈물을 흘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어 절망스럽다”고 말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엄마와 아이의 생명을 앗아간 이 사고는 일본 고령자들이 운전면허를 스스로 반납하게 만든 계기가 됐다.
일본 경시청에 따르면, 2019년 당시 전국에서 운전면허증을 자진 반납한 75세 이상 고령 운전자는 약 35만명으로, 1998년 제도 도입 이래 최대를 기록했다.
고령자 운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웠던 모녀 교통사고에 대한 재판 결과는 2년여가 지난 지난 9월 드디어 나왔다. 도쿄지방재판소는 지난 9월 통산성(현 경제산업성) 간부였던 가해자에게 ‘가속페달을 브레이크라고 잘못 판단한 채 운전한 과실은 중대하다’고 지적하고, 금고(禁錮) 5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전직 고위관료였던 90세 가해자는 “자동차(도요타 프리우스) 자체의 결함 때문에 생긴 사고”라며 무죄를 주장했지만, 법원은 가해자의 운전 미숙으로 인한 사고였다고 결론 내린 것이다.
일본은 75세 이상 고령 운전자의 교통 사고 원인 1위가 ‘운전 미숙’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브레이크인 줄 알았는데 가속 페달을 밟는 바람에 다수의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지난 23일에도 일본 도쿄에서는 60대 아들을 옆에 태우고 운전하던 80대 여성이 편의점으로 돌진한 사고가 발생했다. 운전자인 80대 여성은 “브레이크를 밟아야 하는데 가속 페달을 밟았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고령자가 면허증을 반납하면 현금을 선물로 주는 등 여러 당근책을 시도해 왔지만 큰 성과가 없었던 일본은 이제는 첨단 기술을 활용해 고령 운전자가 안전 운전을 할 수 있게 지원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내년 5월에 새롭게 도입하는 ‘사포카(サポカー) 한정면허’ 제도가 대표적이다. 사포카는 영어 ‘세이프티 서포트 카(Safety Support Car)’의 줄임말로, 정부가 고령 운전자 대책의 일환으로 내놓은 것이다.
사포카 한정면허는 고도의 충돌피해경감 브레이크(자동 브레이크) 등이 탑재된 승용차를 모는 고령자가 대상이다. 올해 11월에 의무화된 안전기준(주행 중 전방 차량 추돌을 막아주는 자동 브레이크와 페달을 잘못 밟았을 때 급발진을 막아주는 장치 탑재)을 만족한 신차여야 한다.
일본의 이 같은 정책 변화에 대해, 한국자동차연구원도 “일본처럼 한국도 운전 약자의 교통사고를 상시 예방하는 기술적 해결책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