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전망은 대선 후보들이 즐겨 쓰는 선거 구호 중 하나다. 주가는 유권자들이 경제 성과를 체감할 수 있는 대표적인 지표이기 때문이다.
코로나 이후 개인 투자자들의 증시 입성이 크게 늘어난 올해는 1000만 개미 군단 표심을 잡기 위한 경쟁이 더 뜨거울 전망이다.
‘왕개미’라고 알려져 있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이런 호기를 놓칠 리 없다. 이 후보는 지난 13일 경북 포항 죽도시장에서 “이재명에게 대통령을 맡겨주시면 주식 시장에서 주가 조작 사범들을 철저히 응징하고 공정한 주식 거래를 해서 코스피 5000 시대를 열겠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지난 달 유튜브 경제 생방송에도 직접 출연하는 등 주식 시장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해당 유튜브 방송에서 “한때 큰 개미로 불렸다, 주식으로 많은 돈을 벌어봤다”면서 “선물과 풋옵션도 다 해봤다”고 언급했다.
지난 달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국내 증시의 MSCI 선진국 지수 편입을 본격적으로 재추진하겠다”고 했을 때도 이 후보는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참으로 옳으신 결정, 7년째 제자리 걸음인 MSCI 선진국 지수 편입! 저 이재명이 하겠다”고 밝혔다.
이 후보는 IMF 당시 파생 상품 투자로 손실을 봤지만 이후 복구하는 등 1990년대 초반부터 성남시장 재임 시절까지 약 10억원을 주식 시장에서 굴렸다고 한다. 이 후보는 공매도(주식을 빌려서 파는 것)에 대해서도 의견을 밝혔는데 공매도 금지는 무책임한 발언이며, 그 대신 외국인·기관, 개인 간의 공매도 차입 기간 차별 문제를 개선하겠다고 했다.
이 후보의 코스피 5000 전망에 대해, 대형 증권사 관계자는 “예전에도 대선 후보들이 코스피 전망을 장밋빛으로 했지만 한 번도 실현된 적이 없다”면서 “지금 당장 3000에 안착하는 것도 힘겨워 보이는데 5000이 말이 되느냐”고 했다. 이 관계자는 오천피 시대가 열리려면 미국이나 일본 증시 만큼 높은 주가순익비율(PER)을 적용받거나 혹은 PER가 크게 오르지 않는다면 기업 이익이 지금보다 60% 이상 늘어야 하는데 단기적으로는 난망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대선 후보들의 코스피 장밋빛 전망은 이전에도 종종 등장했지만 현실화된 적은 없다. 지난 2007년 이명박 전 대통령은 한나라당 후보 시절에 “정권 교체가 되면 주가가 3000을 돌파할 수 있을 것”이라며 “나는 실물 경제를 한 사람이기 때문에 허황된 정치적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2012년 대선 직전에 박근혜 후보도 “5년 안에 코스피 3000시대를 열겠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던 2017년 5월에는 홍콩의 CLSA증권이 “2022년 코스피가 4000포인트에 도달할 것”이라는 낙관론을 폈다. 당시 CLSA증권은 ‘코스피 4000으로 향하는 길을 다지는 문재인 대통령’이란 보고서에서 “새 정부의 임기 말인 2022년쯤 코스피가 4000까지 도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CLSA증권 보고서 얘기가 나왔으니 하나 더. CLSA증권은 지난 9월 ‘Jae-myung who?(이재명은 누구?)’라는 보고서를 펴내서 또 한 번 여의도 증권가에서 화제가 됐다. 국내 증권사는 정치권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다 보니, 외국계 증권사처럼 대선 후보가 증시에 미칠 영향 등을 적나라하게 분석하기는 어렵다.
CLSA증권은 해당 보고서에서 이 후보를 ‘포퓰리스트’ 혹은 ‘한국의 버니 샌더스(미국의 진보 성향 정치인)’로 평가했다. 그러면서 이 지사의 정부발 지출 확대 정책이 (비록 장기적으로는 한국 경제에 부담이 되겠지만) 증시에는 단기적인 부양 효과를 낼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렇다면 역대 대통령들의 재임 기간별 코스피 성과는 어땠을까?
NH투자증권에 따르면, 고 노태우 전 대통령 이후 가장 주식시장이 많이 올랐던 시기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이었다. 재임 기간 코스피 상승률이 174%로 1위였다. 코스피 흐름이 가장 나빴던 시절은 고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로, -20%였다. 지난 2017년 5월 취임한 문재인 대통령은 어떨까? 지난 13일까지의 코스피 상승률은 31%로, 이 정도 수준에서 내년 임기를 마친다면 역대 2번째로 높은 성과다.
김병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과거 코스피는 대선 후에 상승하는 흐름을 보였지만 2000년 이후에는 오히려 글로벌 주식 시장과 더 높은 상관 관계를 보이고 있다”면서 “국내 시가총액 상위 기업들 대부분이 수출 경기 영향을 받기 때문에 국내 정치 이슈가 한국 증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