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연금 수익률이 100%나 된다고?”
중견 기업 부장인 50대 초반 김모씨는 최근 식사 자리에서 노후 준비에 대해 얘기하다 충격을 받았다. 직장 동료가 연금을 잘 굴려서 누적 수익률이 100%가 조금 안 된다고 자랑하면서 김씨의 연금 수익률을 물었기 때문이다. 그는 “연금은 연말정산을 위한 절세 용도로만 활용했지, 잘 굴려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서 수익률은 거의 1% 수준”이라며 “연금으로 수익률 격차가 이렇게 벌어질 수 있다고는 예상 못했는데 그동안 방치한 것이 너무 후회된다”고 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역대급 강세장이 이어지는 가운데 4050세대 연금 가입자들 사이에서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투자에 눈을 떠서 연금 계좌를 잘 가꿔온 가입자들은 고수익을 거두고 있지만, 그렇지 못한 가입자들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형편이라 투자 성적표가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연금 디바이드(양극화)’ 충격이 닥치는 것이다.
◇연금 디바이드 시작됐다
연금 디바이드는 개인이 직접 굴리는 개인형 퇴직연금(IRP)에서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IRP는 퇴직연금 종류의 하나로, 1인당 1800만원까지 넣을 수 있고 세액공제(최대 115만5000원 환급) 혜택도 있다.
5일 삼성증권이 최근 1년간 개인형 퇴직연금(IRP) 가입자 4만3980명의 계좌 현황을 살펴봤더니, 수익률 상위 5%인 연금 우등생들의 1년 수익률은 36.6%에 달했다. 반면 같은 기간 전체 가입자의 수익률은 8.9%에 그쳤다. IRP는 법규상 주식형 펀드와 같은 위험 자산에는 전체의 70% 이상 투자할 수 없는 데도 높은 수익을 거둔 것이다.
연금 부자들은 주식처럼 상장되어 실시간 거래되는 상장지수펀드(ETF)를 선호했다. 이주리 삼성증권 연금마케팅팀장은 “2년 전엔 연금 계좌에서 5%도 안 되던 ETF 비중이 최근엔 30.5%에 달할 정도로 크게 늘었다”면서 “최근에는 2차전지, 차이나전기차, 반도체 등과 같은 테마형 ETF를 모으는 것이 새로운 트렌드”라고 말했다. 개별 종목 등락에 영향을 적게 받으면서, 소액으로 매수 가능하고, 투자 대상도 다양하다는 것이 장점이다.
연금 고수들이 선택한 1위 상품은 피델리티운용의 글로벌 테크놀로지 펀드였다. 순자산 3조원이 넘는 국내 1위 공룡 펀드다.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술주에 주로 투자하는데, 최근 3년 수익률이 111%였다. 피델리티운용 관계자는 “최근 기술주가 하락할 때도 방어를 잘해내서 연금 투자자들의 선호도가 높은 편”이라며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삼성전자 등에 투자하고, 미국 테슬라나 대만 TSMC 등은 전량 매각 후 보유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는 베트남도 연금 고수들의 사랑을 받았다. 투자 상위 톱10 종목 중 3개가 베트남에 투자하는 상품이다. 한국투자운용 관계자는 “베트남은 중국을 대체할 차세대 글로벌 생산기지로, 장기 성장성이 매우 크다”면서 “투자 시계를 길게 보면서 노후 자금을 마련하려는 장기 투자자 입장에서는 베트남과 궁합이 잘 맞는다”고 말했다.
◇입구는 같아도 출구는 달라진다
역대급 상승장인 미국에서는 ’401k 백만장자’가 늘어가고 있다. 401k는 미국 근로자들의 퇴직연금 제도로, 회사가 퇴직금을 일정액 계좌로 넣어주면 근로자가 직접 운용하는 방식이다. 미국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401k 계좌 잔고가 100만달러를 넘어 401k 백만장자가 됐다”는 글들이 흔해지고 있다.
김진웅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장은 “한국 근로자들도 은퇴 후 연금 부자로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라며 “단순하게 계산하면, 매년 1200만원씩 적립하고 연 수익률 7% 운용을 가정하면 30년 뒤 11억원이 넘는다”고 말했다.
다만 연금은 근로자가 평소 투자금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성적표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연금 전문가들 사이에선 “IRP 입구는 공평해도 출구는 불공평하다”는 말이 돈다. 저금리를 극복하고 연금 부자로 은퇴하려면 긴 호흡을 갖고 펀드나 ETF 같은 실적 배당형 상품 비중을 늘리고, 주식·채권·리츠 등 여러 자산에 분산 투자해야 한다. 또 6~9개월 주기로 수익률을 점검하고, 부진한 상품은 리밸런싱하는 등 사후 관리에도 신경 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