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설탕 값이 12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하며 생활 물가에 또다시 비상등이 켜졌다. 국제 설탕 값 상승은 시차를 두고 국내 제품 가격 인상으로 이어진다. 사진은 서울의 한 대형 마트에서 소비자가 설탕을 고르는 모습. /뉴시스

국내 식품업계가 초(超)비상이다. 저출산으로 내수 시장은 점점 쪼그라드는 가운데 2~3년 전부터 지속된 각종 원자재 값 인상은 진정될 줄 모르고 갈수록 태산인 셈이다. 특히 올 하반기엔 설탕 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는 소위 ‘슈거플레이션(설탕+인플레이션)’ 현상이 예고돼, “엎친 데 덮친 격”이라며 울상을 짓고 있다.

설탕 가격 상승은 전 세계 주요 설탕 생산국이 최근 심각한 가뭄과 이상기후로 설탕 수출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빚어진 현상이다. 이미 원유(原乳) 가격 인상으로 흰 우유 및 유제품 가격이 뛰는 밀크플레이션(우유+인플레이션)을 맞이한 데다, 밀가루·팜유·올리브유 가격도 작년부터 계속 오르고 있다.

국내 식품업계 관계자들은 “소비자 정서와 물가 안정을 강조하는 정부 입장을 생각하면 제품 가격을 동결하는 게 맞지만, 경영 실적을 생각하면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어 난감하다”고 호소한다.

그래픽=김하경

◇12년 만에 최고 찍은 설탕 값… ‘슈거플레이션’ 온다

3일 외신에 따르면, 지난달 26일(현지 시각) 런던국제금융선물거래소의 설탕 선물(先物) 가격은 t당 723.57달러로 12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설탕 가격은 지난 2011년 1월 800달러를 넘어선 이후 줄곧 하향세였다. 작년까지만 해도 t당 500달러 정도였던 설탕 값은 올해 초 다시 700달러를 돌파, 최근 720달러 선을 넘어섰다. 설탕 가격이 올해 다시 급등한 것은 전 세계 최대 설탕 생산국으로 꼽히는 인도가 가뭄으로 사탕수수 수확이 급격히 줄어들자 자국 공급부터 보호하려고 설탕 수출을 줄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인도는 태국·브라질과 함께 세계 3대 설탕 수출 국가로 꼽힌다. 미국 농무부(USDA)에 따르면, 작년 이 세 나라의 설탕 수출량은 전 세계 설탕 물량의 45.8%를 차지했다.

이달부터 국제 설탕 가격은 더 뛰어오를 전망이다. 인도가 10월부터 설탕 원재료인 원당(原糖)의 수출을 엄격히 제한하기 때문이다. 현재 국제거래소에서 팔리는 설탕 선물 가격은 보통 3~6개월쯤 지나야 국내 설탕 가격에 반영된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관계자는 “국내 유통되는 설탕의 80%는 호주와 태국에서 수입하는 원당이고, 수입 원당 가격에 따라 국내 도·소매 가격이 달라진다”고 했다. 설탕 값은 거의 모든 음식에 쓰이는 주·부재료인 만큼, 가격이 오르면 국내 주요 식품업체는 물론이고 자영업자들도 타격을 받는다. 본격적인 하반기 물가 비상이 우려되는 이유다.

그래픽=김하경

◇국내 식품 기업, “가격 인상 어쩔 수 없다”

초콜릿과 과자·빵·아이스크림에 많이 쓰이는 코코아 가격도 계속해서 오르고 있다. 최근 해수면 온도가 높아지면서 동남아시아와 인도의 가뭄이 심해지고 코코아 수확량도 크게 줄어든 탓이다. 런던국제금융선물거래소에서 거래되는 인도 코코아 선물 가격은 올해 9월 들어 t당 3500달러를 훌쩍 넘어섰다. 1977년 이후 약 50년 만에 최고치다.

커피도 브라질과 인도네시아 등지의 원두 생산량이 작년보다 크게 줄어들면서 가격이 계속 상승하고 있다. 코코아·커피 같은 기호 식품과 식품첨가물을 일컫는 소위 ‘소프트 농산물’의 가격 추이를 보여주는 스탠더드앤드푸어스 GSCI 소프트 지수는 올해 1월 3일엔 116.88이었으나 9월 19일엔 143.08로 8개월 만에 22%가량 올랐다.

국내 식품업체들은 하반기 경영 실적 걱정에 한숨 쉬고 있다. 국내 한 제과업체 관계자는 “설탕·코코아·우유 같은 원·부자재 가격이 이렇게 계속 오른다면, 아무리 정부가 물가 제한 정책을 펼치면서 기업들이 따라주길 바란다고 해도 결국엔 다들 제품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부에선 정부 눈치를 보면서 일부 인기 상품 한두 종목의 가격만 내리고, 나머지 제품 가격은 슬쩍 올리는 ‘꼼수 인상’ 전략도 쓰고 있다. 가령, 서울우유는 대형 마트에서 판매하는 흰 우유 1L 가격은 4.9%만 올리는 대신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가공유 가격은 11%가량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