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그룹 이재현 회장의 모친 손복남(89) CJ그룹 고문이 5일 별세했다. 이날은 CJ그룹 69주년 창립기념일이었다.

고인은 안국화재(현 삼성화재) 사장과 경기도 지사를 지낸 고 손영기씨의 장녀로 태어났다. 동생이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이다. 고인은 1956년 고(故) 이병철 삼성 회장 장남인 고(故)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과 결혼했다. 이맹희 CJ 명예회장이 1976년 동생인 이건희 회장에게 후계자 자리를 내주고 집을 떠난 뒤에도 홀로 시부모인 이병철 회장 내외를 모시고 이재현·이미경·이재환 삼남매를 키웠다. 고인을 아끼고 신뢰했던 이병철 회장은 고인에게 안국화재 지분을 물려줬고 이 지분이 CJ그룹 설립의 토대가 됐다.

고인은 1993년 삼성그룹이 제일제당을 계열 분리하려 하자 안국화재 지분을 이건희 회장이 갖고 있던 제일제당 지분과 교환했다. 이어 1996년 제일제당그룹이 공식 출범한 후에는 아들인 이재현 회장에게 자신의 주식을 넘겨주며 힘을 실어줬다. 고인은 평소 아들 이재현 CJ 그룹 회장에게 “항상 겸손해라. 스스로 능력을 입증해라. 일 처리에 치밀하되 행동할 때는 실패를 두려워 마라”라고 말했다고 한다.

고인은 CJ가 문화 사업에 진출하는 계기가 된 제일제당의 미국 드림웍스 지분 투자(1995년) 당시 창업자 중 한 명인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을 집에 초청해 직접 식사를 대접할 만큼 중요한 순간마다 조력자 역할을 했다. CJ그룹 관계자는 “과거 삼성가와 CJ그룹이 소송을 벌이는 등 갈등을 빚을 때도 고인이 중간 가교 역할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재현 회장은 평소 “어머니는 CJ그룹 탄생의 숨은 주역”이라며 “내가 그룹의 경영자로 자리 잡는 데 든든한 후원자셨다”고 말했다고 한다.

빈소는 이재현 회장이 어린 시절 고인과 함께 살았던 집터인 서울 중구 필동 CJ인재원에 마련됐다. 이날 빈소에는 고인을 추모하는 정·재계 인사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가장 먼저 빈소를 찾은 사람은 이재용 삼성그룹 회장과 모친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이었다. 이들은 30여 분간 빈소에 머물며 유가족을 위로했다. 2020년 이건희 삼성 회장이 별세했을 당시에도, 이재현 회장이 친인척 가운데 가장 먼저 빈소를 찾았다. 재계에서는 정의선 현대차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솔루션 대표,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대표이사, 조동길 한솔그룹 회장, 김윤 삼양홀딩스 회장,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 등이 조문했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이기수 전 고려대 총장과 가수 하춘화와 비, 배우 송승헌, 이제훈 등도 빈소를 찾았다. 발인은 8일 오전 8시 30분, 장지는 경기도 여주시 선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