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서울 성수동에서 만난 노순호 대표가 동구밭이 만드는 샴푸바(연두색)와 설거지바(베이지색)를 들고 웃고 있다. 비누에 새겨진 손가락은 ‘장애인을 고용해 품질 좋은 제품을 만들겠다는 고객에 대한 약속’을 뜻한다고 한다. 그는 “다른 일반 기업처럼 이익을 내고 품질도 인정받아 소셜벤처도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태경 기자

고체 비누형 주방 세제(설거지바)와 샴푸를 만드는 동구밭은 친환경 바람의 수혜를 받은 대표적인 스타트업이다. 2030세대를 중심으로 고체 비누 열풍이 불며 2019년 30억원이던 매출이 작년 110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제품 자체로 인지도를 높인 까닭에 이 회사가 처음부터 장애인 고용을 위해 만들어진 소셜벤처(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벤처)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현재 공장에서 일하는 직원 71명(전체 직원 85명) 중 35명이 발달장애인이다.

지난 14일 서울 성수동 사무실에서 만난 동구밭의 노순호(31) 대표는 “발달장애인이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비누를 선택했고, 비누 쓰임새를 넓혀야 사업을 키울 수 있을 것 같아 설거지바 같은 제품으로 확장했다”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소비자들 사이에 플라스틱 사용에 대한 경각심이 커진 건 우리도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이라고 말했다.

동구밭은 원래 노 대표가 2013년 사회 혁신 대학 동아리에서 친구들과 시작한 프로그램 이름이다. 발달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농사짓는 프로그램으로, 2015년 정식 기업으로 출발했다. 발달장애인이 취직하고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 프로그램을 시작했지만 장애인이 일자리를 얻는 게 생각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다. 노 대표는 “우리가 직접 장애인을 고용하고 돈도 버는 게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자는 쪽으로 2년 만에 방향을 틀었다”고 했다. 발달장애인이 할 수 있으면서 초기 자본이 적게 들고 제품 유통기한은 긴 제품을 찾은 게 바로 비누였다.

노 대표는 “당시 한 대기업에서 나온 고급 수제 비누가 3만원대에도 팔리는 걸 보고 이 시장의 가능성을 봤다”고 말했다. 일반 비누보다 좀 비싸도 취향이나 건강, 환경 같은 신념에 따라 제품을 선택하는 소비자가 있다고 판단했다. 처음엔 여러 업체에 납품하며 실력을 키웠고, 동구밭이란 독자 상표로도 상품을 팔고 있다. 현재 납품과 자체 판매 비율이 반반쯤 된다.

동구밭 공장에서 제품을 만드는 모습. /동구밭

대표 제품은 2017년 말 개발한 설거지바. ‘비누가 화장실이라는 공간을 벗어나야 승산이 있다’는 생각에 만들기 시작했다. 둥근 비누 형태로, 종이 포장지에 담아 팔기 때문에 플라스틱 용기를 쓰지 않는다. 이 제품이 친환경 바람과 맞물려 수요가 늘며 성공하자 샴푸, 린스, 세탁 세제, 섬유유연제도 고체 형태로 만들어 내놨다. 노 대표는 “액상 샴푸의 80%가 물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반대로 물 비율을 20%로 낮추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출발했다”고 말했다.

발달장애인 35명을 포함해 동구밭 전체 직원은 현재 85명. 노 대표는 “지원하는 모든 분을 채용할 수 있는 건 아니어서 ‘장애인을 고용하는 회사’라는 타이틀이 부끄러울 때도 있다”면서 “다만 고용 숫자에 목매기보단 오래 일할 수 있는 직장을 만들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회사가 커질수록 발달장애인 고용이라는 미션과 경쟁력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질 때가 있다”며 “하지만 발달장애인 문제에 대한 고민을 멈추는 순간이 회사의 존재 의미가 사라지는 상황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